‘백공기예百工技藝’를 ‘후출유공後出愈工’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태도 역시 도리와 물리의 분리에 입각해서 도출된 것이었다.
지려智慮와 교사巧思가 있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기예를 습득하여 스스로 자기의 생활을 꾸려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려志慮를 짜내어 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교사巧思로써 천착穿鑿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천만 명의 사람이 함께 의논한 것을 당해낼 수 없고,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아름다움을 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기예技藝는 더욱 정교하게 되고, 세대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기예가 더욱 공교하게 되니[世彌降則其技藝彌工], 이는 사세가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저 효도와 우애는 천성天性에 근본하는 것이며, 성현聖賢의 글에 밝혀져 있으니, 진실로 이를 넓혀서 충실하게 하고 닦아서 밝힌다면 곧 예의禮義의 풍속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는 진실로 밖으로부터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또한 뒤에 나온 것에 힘입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용후생利用厚生에 필요한 자료와 백공기예百工技藝의 재능은 뒤에 나온 제도를 가서 배우지 않는다면, 그 몽매하고 고루함을 타파하고 이익과 혜택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국가를 도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강구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 정약용은 효제孝弟·예의禮義로 표상되는 인간학(도덕학)과 이용후생利用厚生·백공기예百工技藝로 대변되는 자연학(기술학)을 구분하고 있다. 그는 ‘이용후생에 필요한 자료’와 ‘백공기예의 재능’은 ‘뒤에 나온 제도[後出之制]’에 힘입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이익李瀷 단계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후출유공後出愈工’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약용의 생각은 이용감利用監의 창설로 이어진다.
백공百工의 교묘한 기예는 모두가 수리數理에 근본한 것이다. 반드시 구句·고股·현弦과 예각銳角·둔각鈍角의 서로 들어맞고 서로 어긋나는 근본 이치에 밝은 다음에야 이에 그 법을 깨우칠 수 있다. 진실로 스승에게 배우고 익혀 오랜 세월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끝내 습득해서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배후에는 물질의 생산방식, 그와 연관해서 자연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관념이 깔려 있었다. 물리物理와 자연학에 대해 진전된 이해를 기초로 기술의 경험 축적을 통해 진보가 일어난다는 관념이 정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정약용은 ‘백공기예’가 수리數理에 근본하고 있다고 파악했는데, 이는 수학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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