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가 저렇게 함으로써 혁명가님이 출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혁명가님이 욕심을 갖고 그런다고 하지만 정작 욕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기 역량과 기국을 알지 못하고 실정을 일삼고 있는 역사가 털보인 것이다. 상제님 천하사를 어찌 역사회복운동으로 변질시켜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아사달-
어리석고 욕심까지 많아 도정의 근본을 망각하니 이ㅈㅅ이나 오적같은 간신들에게 둘러싸이고 종국에는 그 간악한 여우새끼들에게 농락을 당하는것입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신의 욕심만 가득찬 그 그릇이 혁명가를 욕심있다고 하는것입니다.
“환단고기에서 명예를 얻으려는 저 몸부림 자체”나 그동안 보여온 수많은 옹졸과 졸렬함이 도정을 집행하는 지도자로서 이미 판안 핀밖의 천하사람들에게 폭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판밖의 말없는 천하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판안의 신도들이 진실로 주체적이고 주인의식을 가진 신앙인들이라면 무엇이 상제님진리의 당위성인지를 자각하고 노예신앙의 틀에서 벗어날텐데 지금의 판안은 오로지 개벽과 후천의 통행증에만 목매달린 100% 개인신앙인들에 불과합니다.이것이 통탄할일입니다.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보직간부 도장책임자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개벽의 노예가 되어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실적에만 급급하니, 어떻게 단체가 성장할수 있으며, 신도 개개인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인이 될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도장안에서는 서로들 어리석게 부푼 꿈을 꾸며 지금 굶어도 미래를 기대하며 환상속에서 사는것입니다.
도장에서 바깥으로 한걸음만 나와도 우리는 이미 사회부적응자요. 일반사회인들이 볼때는 개벽종말교 신도들에 불과한것입니다.이런 현실, 이것은 결코 상제님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어야 할 오류의 과정일수는 있어도, 상제님께서는 당신께서 던져주신 숙제를 이렇게 풀어가라고 천지공사를 보신게 아닙니다.
왜! 어느 누구 하나도 이런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것입니까. 윤ㅊㄹ성도님은 31년 신앙에 지금도 봉청수빠뜨리지 않고 태을주백만독을 채우려고 노력한다하시던데 그걸 자랑이라고 하시는건지, 강훈이라고 하시는건지 미안하지만 그것은 단연코 얼빠진 사람이 혼자서 독백하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같은 말씀입니다.
단연코 말씀드리건데 충의와 절개로 털보님과 태사부님을 신앙하는 일심신도는 될수있어도
대경대법한 상제님진리를 신앙할 자격은 없습니다.
지소선후면 즉근도의리라. 정확히 말하면 공도의 신앙인이기 전에 자신의 옹졸한 사욕으로 개인신앙을 하고 있는
즉, 인류와 증산도를 위한 공복(公僕)이 아닙니다.
“악독한 귀신이 무고히 인명을 살해한다.”
忠孝烈은 國之大綱이라 然이나 國亡於忠하고 家亡於孝하고 身亡於烈하니라
충효열은 나라의 큰 기강이니라. 그러나 나라는 충(忠) 때문에 망하고
집안은 효(孝) 때문에 망하며 몸은 정렬(貞烈) 때문에 망하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변통을 할줄 모르는 우매함과 무엇이 지소선후인지를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벌어지는
과항의 충(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삶의 밑바닥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것이 무엇인지, 모자란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도 그들에게는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벽기에 사람을 살리고 후천문명을 새로이 여는 주역이 될 일꾼이 될 사람들에게는 다릅니다. 과해도 안되고 부족해도 안되는게 충효열입니다.
정히 과하고 지극하려면 혼자 스스로 몸과 마음을 삼가히 하고 소리없이 하면 됩니다. 그 과항의 충의가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이 속한 단체나 천하만민에게 부담을 주거나 폐를 끼치게 된다면 그것은 벌써 즉근도의가 아니라, 도에서 멀리 떨어져나간 동상이몽의 흉측한 신앙인이 되는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걸까요. 그것은 어느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다 죽는 이 세상에 혼자 살고자 하는 몰염치하고 시커먼 욕심이 가득차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것입니다.
상제님을 신앙하기 이전에, 아니 털보님이나 태사부님을 믿고 따르기전에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양심을 바로세워야하는게 순서가 아닐까요.
왜 그렇게도 주체성, 스스로의 존엄성이 없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이대로 어느분말씀대로 31년동안 신앙하고 태을주 봉청수 성금잘내고 내일이라도 개벽이 오고 의통을 집행해서 나도 살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렸습니다. 후천의 복락은 둘째치고라도 그럼 그동안 그 인고의 과거를 되돌아보더라도 자기자신이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것은 어떤것입니까?
단순히 주문잘읽고 성금잘내서 후천넘어갔다 그 이상 그 이하?
천하사가 부지불식 6.25난리통에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대열에 끼어 천신만고로 배를 얻어타거나 남으로 가는 피란열차지붕에 벎떼처럼 타고 올라 단순히 피란하는 행렬에 불과한것입니까?
인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에 쫒기기만 하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인지요?
제가 시커먼 욕심이라고 하는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몰염치, 과항의 충의에 사로잡혀 오로지 개인의 안위만 염두에 두는 철저한 100%,1000% 개인신앙의 행태를 싸잡아 비난하는것입니다.
지금 단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악한 간신들이 단체를 공중분해시키고 있습니다.일반신도들은 증산도를 신앙하는게 아니라 오로지 지금은 다들 마음이 급해 솥에 물을 넣고 불을 적당히 지펴가는게 아니라, 우물가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익지도 않은 생쌀을 먹어대고 있습니다. 괴질이 도는 개벽이 오기전에 먼저 다들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생즉사 사즉생(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것이다)에 들어있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역설의 미학을 실천하는 공도의 신앙인이 왜 없는것입니까?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과 맹신은 지도자의 오판과 무능, 개개신도의 사욕이 함께 빚어내는 합작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실과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증산도는 상제님의 증산도,태사부님께서 창교하신 증산도가 아닙니다.
윤 ㅊㄹ성도님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신앙이라는게 살기 위해서 신앙하는거 아닙니까? 살기 위해서 신앙하는데 주인께서 뭐라고 그랬어요? 목숨을 바쳐라 이거예요. 목숨을 바쳐라.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주인의 말에 마지막 그 순간까지 순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주인은 누굽니까? 태사부님 사부님이시죠. 여기서는 상제님 태모님이 아니죠. 여기서는. 이제 태사부님께서 선화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도성덕립이 되는 그날까지 사부님의 명에 우리는 절대 순종을 해야지 사부님을 의심한다거나 끝나는 거예요 그건 사실은. 도의 세계라는 것은 뭐 사부님이 그런말씀하셨어요. 야, 0.1%의 의심만 가져도 그 사람은 주인에 대해서 0.1%의 의심만 가져도 그 주인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1%만 의심을 해도요 떨어져 낙엽이 되고 마는거예요.”
죄송합니다만 이따위의 설교는 신앙대상이 서로 틀리지만 어딜가나 난립한 한국 개독교교회의
개독목사들이 떠들어대'는 설교와 다를바없습니다.
신앙이 살기 위해서 한다고?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주님을 믿어야만 천국간다는 개독교의 논리와 똑같습니다.
상제님의 성구도 역설의 미학으로 풀어야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천하사신앙은 살기위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나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것입니다. 호도하지 마십시오.
순종하는건 좋은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태사부님,사부님이 아닙니다. 지나온 선천의 단 하루를 살아도, 후천의 단 하루를 살아도 주인은 내 스스로가 나의 주인입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0.1%의 의심도 가져서는 안된다. 주인에 대해서”
주체적인 자신의 주인도 모르고 태사부님 사부님을 주인이라고 하는 그런 얼빠진 개념자체가 자신을 속이는것인데 의심을 갖지 말라는 것은 동네무당이 자신의 점괘를 의심하지 말라는 말과 같음을 왜 모릅니까?
[미망 (迷妄):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
미망을 깨트려나가는데에는 끊임없는 의심을 잡고 나아가야하는데
어찌 자신의 주인도 모르면서 어리석은 중생을 미혹하는것입니까?
환단고기역사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현실은 “무슨 얼어죽을 역사”입니다.
비효율적이고 반응도 거의 없는 역사콘서트! 그것이 지도자의 명이라서!
콘서트를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사회사람들에게 알려서 민족의 국통과 역사를 알린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의도인 것 같은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들은 정상적인 사회집단이나 기업에서는 도저히 집행될 수 없는 무모한 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도자 개인의 명예와 비효율적인 고집을 위해서 오로지 위만 쳐다보는 간부들의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보고도 아직도 순진하십니까?
역사바로잡기가 얼마 안되는 신도들 닥달해서 억지로 끄집어모아 반갑지않은 동네 반상회하듯 그렇게 북콘서트 열어가며 해서 되는 일입니까?
역사바로잡기는 일개단체가 해야될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역사바로잡기를 하려면 이에 관한 최소한 한 국가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나가야 될 로비력이 있어야 하며, 아니면 국가정책을 만들어내는 브레인들을 공식,비공식적으로 접수해서 움직여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하고 우리는 못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유대인들이 미국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듯이 우리도 힘과 능력을 갖추어 그렇게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