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출두하라고 하니 죽을 맛이었을 게다. 부자 걸뱅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권력자가 법원에 가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쌓아둔 돈 풀어 해외로만 나돌더니 이제 법원에 가지 않은 길을 알아 몇 가지 소송을 취하했것다. 이로 인해 삶의 여유가 생겼는지 아님 아메리카에서 깎인 수염이 다시 길었는지는 모르지만 바야흐로 환단고기 콘서트를 한다는 소문이 춘신인양 날아든다.
환단고기 콘서트를 할양이었으면 태사부님 소상도 지나기 전에 종도사 자리를 꿰찰 필요성이 있었을까! 먼저 역사학계에 논문을 들고 나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털보는 세상이 무서워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온실 속의 화초가 이런 것일까! 신도들 앞에서만 큰소리치는 털보! 그러니 누구도 종도사 자리를 탐내지 않았는데 혼자서만 똥이 탄 것이다. 김정일이는 김일성이 죽고 난 후 주석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한 최고의 권력자였다. 이것은 털보의 배짱과 기국을 말해주는 여러 대목 중 한 대목인 것이다.
털보의 일머리라는 것이 항상 자기가 할 일, 밑에서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도정전체를 큰 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 고기콘서트의 경우 한 종교단체의 지도자가 들고 나와 떠벌릴 일이 아니다. 밑에서 하도록 미루어 내리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러나 털보는 환단고기 역주자의 명예를 놓지 못한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명예를 차지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마치 옛날 병자정축이 지나며 사오미가 가까워지던 때 혁명가님이 혹여 숙구지라도 열까봐 두려워 한참 성장하는 도정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듯이 말이다. 그리고 혁명가님의 조합을 짓밟았다.
다시 말하지만 털보는 종교지도자답게 언제까지나 상제님 태모님을 이야기해야 했다. 온 도정을 고기에 집중시켜놓고 정작 상제님 태모님 일은 딴전이다. ‘오환건국이 최고라~’를 전 신도가 암송한다고 해서 한민족의 잃어버린 뿌리 역사가 회복되어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다. 한중일의 역사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인가. 독도 위안부 문제만도 첩첩산중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털보 자신이 직접 역사 강의를 하러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상제님 태모님 도정에 치명적인 실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털보는 태사부님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셨다지만 털보의 하는 짓을 보면 상제님 태모님의 도정을 털보가 감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이다. 도정의 한 부분을 감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전체를 관장할 종통에는 그 심법이 미치지 못한다 할 것이다. 환단고기에서 명예를 얻으려는 저 몸부림 자체가 그동안의 조각난 모든 털보의 욕심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털보가 완역했다는-사실은 여러 신도들의 공동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를 읽다보면 국통을 이어온 혁명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색불루 혁명, 해모수 혁명, 고두막한 혁명 등등. 이 중 동명왕 고두막한 혁명을 들여다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제님 태모님 신앙혁명의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고두막한의 재위원년은 계유년이다. 이 때 북부여 고우루단군 13년이다. 임금께서는 사람됨이 호방하고 영준하며 용병을 잘 하셨다. 일찍이 북부여가 쇠하면서 한나라 도적이 불길처럼 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개연히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셨다. 이에 졸본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호를 동명이라 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분을 고열가의 후예라고 말한다. 재위 3년 을해년 임금께서 스스로 임금이 되어 격문을 돌리니 이르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 한 달이 채 안 되어 군사가 5천명에 이르렀다. 싸울 때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여도 한나라 도적이 스스로 무너졌다. 임금께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를 건너 계속 추격하여 요동 서안평이 이르셨다. 그곳은 바로 옛 고리국 땅이었다. 재위 22년 갑오년 이 해는 4세 고우루단군 34년이다. 임금께서 장수를 보내 배천의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고 유민과 합세하여 가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을 연달아 쳐부수었으며 그 수비 장수를 사로잡았다. 방비를 갖추어 적을 막기에 힘쓰셨다. 재위 23년 을미년에 북부여가 성읍을 바쳐 항복하고 왕실만을 보존시켜 주기를 여러 번 애원하였다. 고두막 단군께서 들어주시어 해부루의 봉작을 낮추어 제후로 삼아 차릉으로 이주해 살게 하셨다. (환단고기 중에서)>>
북부여가 쇠한 것을 보고 한나라에서 쳐들어오자 이것을 고두막한께서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북부여의 국통을 계승하였다. 이것을 보면 국통은 전수한다고 해서 전수 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보존할 기국과 역량이 되지 않으면 국통을 이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종통은 누가 전수할 수 있단 말인가! 상제님 태모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전수할 수 없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그 기국과 역량에 맞는 그 때 그 사람이 나와 그 운을 타도록 천지에 질정해 두셨거늘 태사부님께 대권을 받았다고만 우기는 자체가 천자노름이 아닐 수 없다.
향수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상제님 천하사 추수도업은 세 살림 도수입니다. 중복시절에는 천지공사의 얼개 전체가 드러나지 못하게 되어 잇습니다. 동지한식 백오제를 지나기 전에는 전체의 대국을 전혀 모르게 되어있었습니다. 문왕의 도수 책임자 까지도 이를 알지 못하게 돼 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욕속부달의 도정이 이루어질 수밖에는 없었고 경영의 실패가 연속되게 되었습니다.”
털보가 저렇게 함으로써 혁명가님이 출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혁명가님이 욕심을 갖고 그런다고 하지만 정작 욕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기 역량과 기국을 알지 못하고 실정을 일삼고 있는 역사가 털보인 것이다. 상제님 천하사를 어찌 역사회복운동으로 변질시켜버릴 수 있단 말인가! 상제님 태모님이 앉을 자리에 환단고기가 앉아 있는 꼴이다.
고두막한 동명왕이 북부여 대통을 계승한 때가 을미년이었는데 올해가 마침 을미년이다. 혁명이 완수되어 진정한 상제님 태모님 신앙문화가 역사속에 제대로 뿌리 내리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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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