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과 국가 밖의 안티고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타국의 군사를 동원
하여 조국을 치러 온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하라는 크레온의 포고를
어긴 죄로 산채로 동굴에 넣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티
고네의 반항과 선택은 많은 해석을 낳아왔다. 철학적인 차원에서
가장 주목할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헤겔이다. 헤겔의 해석은 이후
의 해석에 있어 확고한 지평이 되었다.
헤겔은 『안티고네』의 주요 갈등을 신법과 인간의 법의 대립으
로 본다. 이 대립은 안티고네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세운 대립이기도 하다. 크레온은 “누가 자기 조국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를 아무 가치 없는 자로 여길 만한” 일이
며, “이 땅이 안전할 때, 그리고 바로 선 그것을 타고 항해할 때에
야 비로소 친구도 사귈 수 있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는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폴리스의 안정에서 찾는다. 한편 크레온이
자신의 포고를 알고 있냐고 묻자, 안티고네는 포고는 들었지만 그
포고가 “확고한 신들의 법을 넘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남
자의 뜻이 두렵다고 신의 법을 소홀히 하여 신들에게 벌을 받지는
않겠노라 결심했다.”고 대답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헤겔은 이 대
립이 친족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의 대립이며,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각각 친족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를 상대적으로 표상하고 있다고 파
악한다. 그런데 이러한 안티고네의 대답에 대해 크레온은 반론을
펴는 대신 그는 자신의 명령을 마음대로 어길 권리가 허락된다면
“내가 사내가 아니라, 이 아이가 사내일 것”, “다른 사람의 노예인
주제에 거만하게 굴 수는 없는 법”이라고 노여워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크레온은 자신의 포고가 신법에
어긋나지 않다는 변론을 전개하지 않는 것인가? 또는 헤겔처럼 국
가의 원리가 친족의 원리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고대 그리스 사회의 문화 내에서 여자나 노예가 사내나 주인의 말
에 무조건 복종하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라는
짐작은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소포클레스의 작품 내에서 조차
크레온은 백성들의 반감을 사고, 반대로 안티고네의 행동은 칭송 받
는다.
국가 권력은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내부와 외부, 공동체
에 소속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고 배제하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성차는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 이분법의 경계
에서 유동해왔다. 헤겔의 『안티고네』 독해는 그 한 예이다. 어쨌
든 헤겔이 촉발한 논쟁은 안티고네가 친족의 대표자인지(헤겔), 아
니면 타협하지 않고 개인의 욕망을 끝까지 밀고나간 숭고의 전형
인지(라캉), 아니면 가부장제의 권력에 여성주의적으로 맞선 영웅
인지(이리가라이) 등등의 다양한 안티고네 규정짓기 논쟁으로 진행
되었다. 지금 언급한 몇몇의 논쟁은 안티고네가 대표하는 것과 크
레온이 대표하는 것의 대립이 무엇인가에 대한 헤겔의 대답 즉 친
족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의 대립이라는 구도를 일단 출발점으로 삼
고서 전개되는 논쟁들이다.
J. 버틀러는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이 논쟁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검토 끝에 나온 버틀러의 안티고네 규정은 규정
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그 누군가이다. 우리가 지금부터 보고자 하
는 버틀러의 난감한 규정은 버틀러의 탓도 아니고 안티고네의 탓도
아니다. 그것은 친족이라는 것의 구조 자체 때문이다. 게다가 친족
은 국가와 대립하지도 않는다. 친족은 젠더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
고, 국가는 친족을 전제한다. 버틀러의 안티고네는 이상하고 우울하
다. 안티고네는 젠더조차 불분명하고, 그의 친족으로 말하자면 아버
지는 오빠이기도 하고, 그의 어머니는 할머니기도 한 이상한 친족
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국가의 지도자에 의해 산 채로 무덤으
로 들어가면서, 그 무덤을 신방이라고 부른다. 버틀러는 안티고네를
통해, 국가와 친족이 젠더 이분법에 기반해 있음을 보일 뿐만 아니
라, 그 기반이 불안정한 허구임을 보인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