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行’의 두 층위 : ‘내행內行’과 ‘외행外行’, ‘명명지행冥冥之行’ 과 ‘소소지행昭昭之行’
‘ 선악은 행사 이후에 성립’된다는 정약용의 선악 이해에는 좋은 점과
곤혹스런 점이 있다. 좋은 점은 외재하는 도덕 법칙을 설정하기 않기
때문에 규범세계[天理]를 먼저 알려 애쓸 필요가 없다. 도덕적 행위가
도덕적 인식을 이끌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盡心]은 행함이다. 행하면 반드시 알고, 알면 반드시
행하니, 서로 밝혀 서로 닦는 것이다.
행동이 앎을, 앎이 행동을 서로 분발시킨다는 지행합일은 강력하면
서도 단순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래서 천리가 무엇인지 사색하거나 배
움이 없더라도, 고단한 일상 한가운데에서 덕을 이루려는 의지를 고취
할 수 있고,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인의예지가 일을 행하여[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힘써
부지런히 그 덕을 이루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주체가 한 그의 주관적 행동이 선한 것인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난제가 생겼다. 바로 도덕 척도의 문제이다. 선악은 행사 이
후에 성립된다고 했으므로 도덕척도의 차원 역시 주체의 내면에 설정되
고 해명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정약용이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본다.
정약용에게 있어 선악은 교제의 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교제에서 선하면 효도, 공경, 우애, 자애, 충성, 믿음, 화목, 화동和同이 되
고, 교제에서 선하지 않으면 어긋남, 거슬림, 완악함, 어리석음, 간사함, 사
특함, 원악元惡, 대대大憝가 된다. 우리의 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교제에
서 선을 행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나와 타자가 만나는 교제의 장에서 선악이 성립되지만, 정약용은 선
인지 악인지 평가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두지 않는다. 그 기준을 주체
의 내면에 설정했다. 내면의 동기와 외적인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지, 일
관적인지를 갖고 그 행동이 선한지 악한지를 평가한다. 우선 '논어고금
주'의 ‘내행內行’과 ‘외행外行’에 대한 정약용의 주석을 본다.
사람을 관찰하는 법은 밖의 행동[外行]이 비록 선하더라도 당연히 안의 행
위[內行]를 살펴야 한다. 신뢰와 공손은 모두 사람과의 접촉에서 하는 밖의
행동인데 밖의 행동이 이미 선하고 안의 행위까지 겸비되었다면 그 사람을
존중할만하다.
겉에 드러난 신뢰와 공손의 선한 행위가 그 사람이 앞에 있을 때만
이 아니라[外行] 없더라도 그렇게 한다면[內行] 존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있고 없고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면 비록 선한 행동처
럼 보일지 몰라도 진정성이 없는 그 행동은 위선(僞善)이다.
'맹자요의' 의 다음 구절을 본다. 정약용은 맹자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하
고 있다.
맹자가 스스로 말하다. ‘나는 부귀와 이익과 달을 구하지 않는다. 드러
나지 않은 행[冥冥之行]이 밖에 드러난 행[昭昭之行]과 다름이 없는데 나를
엿보아 장차 무엇을 하리오.
부귀와 달을 마음속에 두고 있지 않으며[冥冥之行], 겉으로 드러난
행동[昭昭之行]이 속마음과 다름이 없다는 구절 역시 행동의 일관성을
말한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이론을 적용했다. 우선 ‘드
러나지 않은 행위’를 이해하는데 현대의 인지론은 도움을 준다. 인지
론에서는 ‘행함(doing)’을 두 차원으로 구별하여, 몸소 하는 실제 ‘행동’
(behavior)과 정신적 ‘행위’(mental acts)로 나눈다. 외적 행동은 밖에서 목
격할 수 있지만, 밖으로 행동이 표출되기까지 마음(mind) 안에서 그 행
동과 관련한 추리, 판단, 평가, 행하려는 욕구 등의 내적 사태가 있다.
이 정신적 행위를 몸이 수행하면 실제 행동이 된다. ‘행함’은 정신적 행
위와 몸의 행동이라고 하는 두 차원을 모두 내포한다. ‘명명지행冥冥
之行’은 정신적 행위에 해당한다. 또 가치론의 맥락에서 보면, ‘드러나지
않은 행위’[冥冥之行]와 ‘밖에 드러난 행동’[昭昭之行]의 일관성을 주장하
는 것은 가치평가의 기준과 관련 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딴 행동을 하면 거짓이다. 동기가 확고하지 못하면 한 번의 선행을 할
수 있지만 늘 항상 그런 선행을 할 것이라고 보장하지 못한다. 당연히
꾸준하지 못하다면 척도, 기준이 될 수 없다.
‘외행과 내행’, ‘명명지행과 소소지행’은 '심경험'의 ‘행사’가 개념어
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중요한 점은 도덕준칙과 더불어
도덕척도로서 ‘행(사)’은 이론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이것은 외
재적 도덕률의 도식이 아닌 경우에 필히 고민하고 해결했어야 하는 과
제다.
이상으로 ‘체’의 ‘성-권형-행사’ 세 요소는 도덕실천에 있어 서로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론적 맥락에서도 셋 모두 필요한 개념
들이다. ‘성’, ‘권형’은 주관적 행위 원리인 도덕준칙과, ‘행사’는 주관적
행위의 평가 기준인 도덕척도와 연결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도덕실천을 체계적이며 정합적으로 이론화했던 것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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