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장한 남성 중심의 시민권
프랑스 공화국의 시민권은 시민의 덕성을 남성의 덕성과 동일시
했다는 점에서도 한계를 보인다. 즉 병역의 의무를 짊어진 남성
만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린 것이다. 여성은 프랑스 혁명 후 150
년이 지난 20세기 후반에야 온전한 시민권을 얻었다. 이러한 남
성 중심적 경향은 프랑스 혁명과 혁명전쟁의 영향으로 18세기에
시민권 제도를 도입한 서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주어
여성들은 온전한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북
유럽에서부터 여성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포함한 온전한 시민
권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편적인 시민 덕성의 기준은 여전
히 남성이었고 여성은 공적인 생활에서 불완전한 시민으로 여겨졌
다. 여성의 특성은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이솝 우화에서 늑대의 집에 초대받은 학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에
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온전한 시민권을 얻지 못했던 노동자나 빈곤층, 여성들은 사
회주의 운동이 발전하고 평등에 대한 욕망이 커지면서 남성 노
동자, 여성의 순서로 법적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시민권이 계
급, 성, 신체,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도록 요구한 이러한 운동들
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근대 시민권을 근본부터 변화시켰다. 특
히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 운동과 20세
기 초반에 일어난 폐미니즘 운동은 시민권 변화에 중요한 역할
을 했다. 이 운동들은 근대 시민권을 후기 근대 또는 탈근대 시
민권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동력이었다.
전 세계 시민권 제도의 급격한 확산
프랑스 혁명과 혁명전쟁으로 민주공화주의의 이념과 시민권 제
도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강력한 시민 계급이 성장하지
못해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이 지체되고 있던 독일도 1807년에
베스트팔렌 헌법을 제정했고, 1849년에는 시민권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통일 독일 제국 헌법을 확정했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이 지연되면서 이 헌법을 집행할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독
일인들이 시민권을 갖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벨기에도
1830년에 혁명을 통해 근대적 헌법과 시민권 제도를 만들었고,
오스트리아가 이를 모방해 1849년에 헌법을 제정하고 시민권을
보장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독일 제국이
성립한 1871년에야 비로소 시민권을 일부 보장하는 제국 헌법을
제정 집행했다. 하지만 독일이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권을 보장한
것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 제정 이후였다.
식민지 건설과 근대화로 요동치는 전 세계민족
17세기부터 유럽과 미국은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폈는데 그
영향으로 아시아와 이프리카, 신대륙까지 국민 국가가 나타나
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일본이 1867년부터 메이지 유신을 거쳐
1889년에 독일의 제국 헌법을 모방해 그들의 제국 헌법을 제정
하면서 입헌 군주제 국가를 세우고 제한적인 시민권을 보장했
다.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에서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
국을 세우고 근대적 시민권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의 결과 1919년 성립된 베르사유 체제에서 국민 국가를 세계 질
서의 기본 단위로 승인하면서 이것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근
대 세계의 질서에서는 특정 국민 국가의 시민이 되어야만 인간
으로서 권리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와 반식민지 민중들 사이에서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이 번져나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무렵까지 중국과 일본
을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은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였으며, 2차 세계대
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60년대 사이에 대부분 나라가 독립하
여 국민 국가를 형성했다. 형식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시민권을
보장하는 국민 국가가 이제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모든 사람
들은 특정 국민 국가의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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