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志-기氣-혈血
도덕인식은 도덕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선을 행하기 어려운 이유
를 살피는 것은 원인을 밝혀 그 장애를 없애어 원래 목표인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인仁을 삼기엔 부족하다. 그러므로 문인 제자의 말
은 매번 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았지만, 공자의 답은 매번 선을
행하는 것을 전체공부로 여겼으니 성현고하의 등급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악에 대한 논의는 최종적으로 인仁,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의식이 실천의 단계로 나가기 위해 그는 마음과 몸[神形妙合]의
인간 조건을 검토했다.
사람이 이 온몸을 운용할 수 있는 까닭은, 명불매한 마음이 주재하여
수축시키거나 확장시킬 수 있어서이다.
신과 형이 오묘하게 합해 있어서, 그 발용 하는 데에는
모두 혈기를 필요 로 한다.
내면의 의식 작동과 외적인 행동을 신神과 형形의 조건에서 검토하
고, 이 둘을 혈기血氣로 연결한다. 마음과 몸, 신神과 형形의 인간 조건
을 언급한 것은 생존의 차원에서 보면 몸의 생리적 기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주체는 생존할 수 없고, 실존의 차원에서 보면 인간다움은 선
을 성취해 가는 데에 있는데 이때 수행하는 도구로서의 몸이 없으면 가
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 주체의 생존과 실존을 위해서 마음과 몸의
두 요소는 필연적이며 서로 보완적이지만, 둘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이 두 요소를 ‘혈기’를 매개로 하여 이해했고, 경전의
‘지-기-혈’의 기제와 연결해 설명했다.
원래 우리 인간이 나면서 자라 운동하고 지각하는 것은 오직 혈과 기 두
가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형질을 논하면 혈은 거칠고 기는 정하며 혈은
둔하고 기는 예리하다. 무른 희로애구의 발함은 모두 마음이 발해서 뜻이
되고 뜻이 이에 기를 부리며 기는 이에 혈을 부린다. 기는 혈의 우두머리이 다.
기氣가 물질인 혈血을 움직이고, 이 기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志다.
기질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하기 쉽다는 성리학의 관점에서는 악을 제거
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음이 기질을 단속하고 조절하는 소극적 태도에
서 ‘지-기-혈’을 다룰 것이다. 그러나 인仁, 선을 행하려는 실천적 관심
에서라면 선을 직접 행하는 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적극적이고, 긍정
적 차원에서 ‘지-기-혈’을 해석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지-기-혈’의 기
제는 혈기를 단속하는 소극적 관점에서도, 선을 행하는 적극적 관점에
서도 다뤄질 수 있다.
몸 그 자체는 선을 할 수도 악을 할 수도 있는 도구이며, 도구를 유
용하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해, ‘지-기-혈’은 의식과
실천, 마음과 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해준다. 이제
이 기제를 알게 되면서 기대하는 행동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방법도 갖추게 된 것이다. ‘선악과 무관한 기질’의 재해석, ‘몸은
도구’라는 평가에서 더 나아가 정약용은 몸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며 긍
정적인 발언을 한다.
사람의 형색이 만물 중에 가장 존귀하니 이 역시 천명이다. 오직 성인만이
능히 실천을 해 이 형形을 저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