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족 내 살인과 처벌- 공분公憤과 사알私訐의 구별
[대명률]에는 부모가 자녀를 구살毆殺한 경우 장형과 도형에 그쳤을
뿐 사죄에 처하지 않았다 . 그러나 조선의 [속대전]에는 “부모로서 자녀
를 살해하고 형으로서 아우를 살해하여 그 용의用意가 흉참한 자는 모
두 투살률鬪殺律로 논죄한다”라고 하여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형
이 동생을 죽이는 데 악의가 분명한 경우 사형에 처했다. 또한 [속대전]
에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살해하고 형으로서 아우를 살해하여도 죄가
장·도형에서 그치게 한 것이 법을 제정한 (본의필자 주 [大明律]을 의미함)
이나 선조先朝에서 수교하여 일죄死罪로 정한 것은 대개 악을 징계하
려는 데서 나온 것이오, 그 아들의 목숨을 보상하려 는 것이 아니다”
라고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
‘범의가 흉참한 경우 ’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대명률]에서 사죄에 처하
지 않던 부모나 형을 조선에서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고 ‘자식의
목숨을 보상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사악한 범행은 엄벌 하겠다는 의
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국전은 ‘악 자체에 대한 응징’의
의지를 취함으로써 친친의 영역<가족 내>일지라도 흉참한 범행이라면 엄
벌 하였다 .
다산은 이를 조선의 주요한 입법 전통으로 강조했다. “[대명률]과 [속
대전]은 서로 다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인 경우는 그 정상이 만 가지로
하나로 논의하기 어렵다. 정상이 가여운 경우 죄가 도형 몇 년에 그치나
용의가 흉참한 경우 살인율로 처벌 하였다.( 중략) [속대전]의 의미는 재산
을 다툰다든지 간음하거나 혹은 후처에 미혹되어 자식을 원수로 여겨 모
살하려 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교명敎命에 한결같이 [대명률]을
따르되 사죄一律에 처할 경우는 수시로 아뢰어 결정토록 한 것이다”
다산은 악의적으로<凶慘> 가족을 살해한 경우, 이를 엄벌하는 것이
조선의 입법 취지를 고려한 법 해석이라고 이해하였다. 이에 술 취한 사
람에게 맞은 후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여 때려 죽인 이춘세에 대해, 다
산은 “부모가 자녀를 때려 죽인 경우,( 중략) 마음 씀이 흉악하고 잔인한
경우 임금에게 품지稟旨를 올려 결재를 받는다. 이춘세 같은 자는 고살
이므로 사납게 형장을 가해야 그 악행이 징계될 것이다”라고 하여 엄
벌을 요구 하였다.
1790년(정조 14) 4월 울산에서 오빠가 여동생을 살해한 사건도 마찬 가
지이다. 울산의 견성민은 개가한 누이 견소사가 고부 갈등으로 남편과
싸우고 시댁에서 쫓겨 친정에 돌아오자 여동생을 배에 태워 강물에 빠
뜨려 살해하였다. 초검관은 배를 타고 가던 여자가 물에 몸을 던졌고
남자는 구하지 않고 도주 하였다는 뱃사공의 증언과, 시신을 검험하니
구타 흔적은 없고 손톱에 진흙과 모래가 끼고 살갗이 흰색으로 변한
채 배가 팽창한 것으로 보아 견소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오빠에 의
한 타살이라고 보고하였다.
다산은 본 사건의 판례를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가령 견녀가 시어머니에게 불효하고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았고, 청상과 부
가 되어 음란한 행실이 있었다면 백악百惡을 구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
서 집안사람<家人>이 천살擅殺할 수는 없다. 비록 부모라도 도리어 죄가 되
는데 하물며 오빠가 여동생을 죽이겠는가? 청상과부가 수절하지 못한 게
본래 죽을 죄는 아니다. 따라서 죽을 죄도 아닌데 그녀를 죽였다면 어찌 사
죄死罪가 아니겠는가?
비록 여동생이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죽을 죄가 아니라면)
가인家人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게 다산의 주장이다. 다산은 수절하지 못
한 과부는 죽을 죄가 아닌데 이를 미워하여 죽였다면 ‘흉참한 악행’이
분명하며 부모도 허용되지 않는데 하물며 오빠는 더욱 그렇게 할 수 없
다고 보았다. 다산은 죽을 죄이거나 공분할 일이 아닌데도 악의적으로
가족을 살해한 경우 반드시 법으로 처벌할 뿐 정리를 고려하여 감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