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성리학의 윤리학적 두 관점: 동기주의와 결과주의
조선조에서도 동기주의 대 결과주의의 대립은 이른바 사단칠정과 인
심도심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그 윤곽이 드러난다. 즉, 이
황李滉(1501~1570)과 이이李珥(1536~1584)가 각각 두 입장을 대표하고 있다.
이황은 사단의 도덕감을 칠정의 일반감정으로부터 근원적으로 구분하
고 그 지각 내용을 각각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의 호발互發적 구조로써 설
명하였다. 이로써 이황이 주장하려는 바는 사단도심은 칠정인심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감각질료에 의해 촉발되긴 하지만, 그 지각 내용으
로서의 의무감은 결코 외부대상이나 그것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온 것
이 아니라, 오로지 내적인 인의예지의 성性의 발현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리理의 지각으로서의 사단(도심)은 당위적 의무
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도덕적 선악은 근본적으로 도덕이성의 발현
이냐, 아니냐라는 내적 동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반면, 이이는 이황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지각은 “기발이승<氣
發理乘>”, 말하자면 외부대상에 대한 감각질료의 촉발과 그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지각 원리의 결합이라고 하는 한 가지 경로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므로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은 형식상 근본적으로 구
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황이 사단(=도심) 칠정(=인심)으로
간주했던 것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칠정은 즉각적인 감정일 뿐이며 인
심도심은 거기에 “계산하고 비교하며 따지는<計較商量>” 의 意가 가해져
야 성립되므로 정과는 같지 않다고 한다. 선과 악 인심과 도심의 구
분은 내적 기준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외적 기준에 맞춰 “계산
하고 비교하며 따져서” 행한 이후에야 판가름이 난다. 즉 어떤 행위나
일의 결과를 예禮와 같은 규범에 맞는지, 그 중절中節 여부를 따져본 뒤
에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발이승” 이라고
하는 경험론적 지각론으로 인해,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의, 선험적인
구분을 부정함으로써 야기된 결과론적 입장이다.
이황과 이이 사이의 사단칠정, 인심도심의 이기理氣 논쟁은 단지 개
념 규정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이란 무엇인지
에 관한 윤리학적 근본 문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도
덕을 인식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의 문제인 것이다. 인식적
관점에서 이황과 이이의 두 입장은 서로 모순적인contradictory 것이므로
양립 될 수 없는incompatible 것이다. 한쪽이 맞으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
으로 틀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퇴계 학파에서는 이현일李玄
逸(1627~1704), 정시한丁時翰(1625~1707), 이재李栽(1657~1730)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이를 “틀렸다”고 비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이른바 “분개
分開와 혼륜渾淪의 종합”이라는 견해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이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상대 진영을 용인하는 이런 경향
은 율곡학파(낙론)에서도 일부 나타난다. 17세기에는 퇴계와 율곡 양 학
파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오류라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대세였지만
18세기에 들어와서는 두 학설의 양립가능성을 말하는 학자들이 많아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8세기에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싹트기 시
작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식(지각)과 도덕의 분열, 그에 따른 도덕
의 정당화와 실천이성에 대한 회의,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새로운 존재
론의 모색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전
통규범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성이 농후했다. 정약용의 윤리학은 이와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태동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