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리학의 윤리학적 두 관점: 동기주의와 결과주의
주희朱熹(1130~1200)의 윤리학적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동기주의 혹
은 의무론deontology 이라고 할 수 있다. 주희는 일찍이 [서경]에 나오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 그 중中
을 잡아라”라고 하는 구절에 대해 「중용장구서」에서 인지 작용은 의무론cogini
tive activity으로서의 지각知覺 개념을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새롭게 설
명한 바 있다. 즉 인심이란 개인의 육체<形氣>로부터 생기는 욕구나 감
정을 말하고 도심이란 ‘본성의 명령<性命>’으로서 인지되는 일종의 의무
감 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본성의 명령’이란 공적인 원칙으로서의 천리
에 따라야 한다는 주관적, 당위의식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양심의 목소리이자 실천이성이라 하겠다. 도덕적 행
위란 곧 인심을 통제하고 도심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 의해 촉발된
행동을 말한다. 이는 행위에 있어 결과를 따지지 말고 내적 동기의 선
악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무론적 입장이다.
주희의 의무론적 입장은 진량陳亮(1143~1194)과의 의리義利 왕패王覇
논쟁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일찍이 이 논쟁을 동기주의와 결과주의
의 대립으로서 파악한 연구가 있긴 하지만 성리학의 윤리학설은 이
두 입장으로 양분 된다는 인식에 의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
든 그 논쟁에서 주희는 진량의 공리주의적 학설에 대해 “결과적 성패로
써 시비是非를 논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량은 이른바 “정의와
이익은 함께 행해지고<義利雙行>”, “왕도와 패도는 나란히 사용된다<王覇
竝用>”는 학설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전면에 공리주의를 내세우지 않
으려는 의도일 뿐 실상은 공리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공리주
의에 대한 주희의 비판은 [논어]의 “일을 먼저하고 이득은 뒤로 미루는
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구절에 대한 다음의 해설
에 잘 나타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일을 함에 이 일을 마땅히 해야 하는지,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것
인지는 논하지 않고 먼저 이 일에 어떤 공효가 있는지를 계산하고 비교한다. 이미
계산하고 비교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오로지 이익을 위하여 하는 것이니 마
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다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덕이라는 것은 이치가 나
의 마음에 얻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알아서 이익
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한 생각은 저절로 높고 원대한 것이다. 작은 이해利
害를 따지고 작은 편의를 찾으면 이러한 생각은 곧 비루하고 수준이 낮은 것이다.
이른바 ‘숭崇’ 이라는 것은 덕이 여기로부터 점점 높아가는 것을 말한다.
주희에 따르면, 결과적 이익을 따지는 마음은 저급한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의 당위적 의무감에 대한 자각은 수준이 높은 것이다. 전통
유학에서의 소위 덕이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당위 의식에 따르는 행
위를 함으로써 체득하게 된 마음의 상태나 경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서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똑같은 이치理를 부여받아 태어 나지만
나중에 어떤 사람은 덕 있는 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이익을 따지는
소인배가 되는데 이는 그 사람이 당위적 의무감에 충실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의해 갈리게 된 것이다.
다만 당위적 의무감의 실행 여부, 다시 말해 도심을 선택하고 인심을
통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앎으로부터 독립적인 의향意의 자의성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중용장구서」에서 말한 “정일精一” 공부, 즉 두
지각 내용 중 무엇을 택할지를 정밀히 살펴서 도심을 한결같이 유지하
는 “택선고집擇善固執”의 실천적 수양 공부가 요청된다. 성의誠意가 도
덕실천에 있어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실천에 있어 “택선”의 우선성을 인정하면서도 “명선明善”, 즉 도덕
적 원리들에 대한 이론적 해명을 중시했다는 점은 주희의 윤리학이 도
덕성에 대한 정당화 문제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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