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노동 계급보다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이후의 사회를 구상했다(프루동 역시 프랑스의 가난한 농민 출
신이다). 물론 아나키스트들도 산업 혁명이나 과학 기술의 발달
로 인한 생산 양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지만 대규모 공장 체
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규모 생산 체제는 물건을 만드는 즐
거움을 빼앗고 살아 있는 인간의 노동을 컨베이어 벨트의 이동
속도에 종속된 죽은 노동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이 대규모
생산 체제는 한 개인이 한 가지의 단순한 노동만 하도록 해서 그
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은 근대의 산업 체제가 강요하는 농업과 공업의 분
리, 작업 능률을 강조하는 분업 제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
리를 거부하고, 농업과 공업의 일체화, 산업의 분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통합 등을 주장했다. 만일 노동자가 임금 노예제에
서 해방되어 유쾌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사회적으
로 더 유익한 작업을 위해 무기와 사치품 생산이 폐지된다면, 이
세상 모든 이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공황은 과
잉 생산 때문이 아니라 강요된 빈곤에 의한 과소 소비와 비생산
적인 일로 낭비되는 노동력 때문이다. 만일 상호부조의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고서도 최대한의 행복
과 즐거움, 종의 지속과 발전을 확보할 수 있다.
아나키즘은 근대의 과학 기술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
유용성을 인정한다. 바쿠닌은 과학자와 기술 전문가가 그들의
지식을 가지고 타인을 지배할지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과학에 대
항한 반란이 아니라 과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삶의 반란을 주장
했다. 크로포트킨 역시 근대 과학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특히 크
로포트킨은 최신 기술을 도입하면 작은 생산 단위로 전력을 분
배할 수 있고 도시와 시골의 이점을 결합한 '전원 도시'를 발전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의 과학 기술은 도시만이 아니라 시
골에서도 전기를 끌어들여서 생산력을 높이고 새롭고 빠른 소통
수단을 제공해 작은 공동체의 기술 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개 때
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농업에 기반한 소규모 공동체나 작은 전원 도
시야말로 인류가 만들어야 할 미래 사회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런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스스로 다스리고(自治) 스스로 삶을 유지
하는 것(自給 ) 이 가능하다.
아나키즘에 여러 가지 다양한 흐름이 포함되어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점은 자기 삶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점이다. 아무
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때로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능동적으
로 참여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자기 극복과 성장의 기회
를 타인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는
말이나 "너를 위해 내가 희생했다"라는 이야기는 아나키스트들
의 귀에 결코 아름답게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