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초와 삼복
明洗
삼초三哨,招는 특정 시간대에 특정 사건이 발생하여 일이 전개되는 상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삼복三伏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삼초의 시점을 분명하게 밝히시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하신 것과 달리 삼복은 구체적인 시점을 밝히지는 않으셨지만, 미리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일 뿐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 알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삼초三哨,招 중 1, 2초에 대해 갑오년(1894), 갑진년(1904) 등의 시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초哨,招’는 시점이 아니고 사건을 의미하므로 천지공사에 의미를 갖는 이러한 3초와 같은 특정 사건이 그 해 뿐 아니라 그 이후 시간대까지 지속되며 역사 상황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즉, 숨어서 은복隱伏된 상태를 미발未發이라 한다면 밖으로 꽃을 활짝 피운 이발已發의 특정 시간대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상제님은 삼초三哨,招 중 세 번 째 3초에 대해서는 당시로서는 미래의 일인지라 구체적 시점은 밝히지 않으시고 그 ‘초’를 맡은 주인공이 손 병희라고 밝히신 바 계십니다. 손 병희는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패망을 기대하고 보성사 내에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갑오 · 갑진 그리고 갑인(甲寅:1914)의 삼갑운동(三甲運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결국 기미년(1919) 3.1 만세운동이 점화됩니다.
상제님이 3초 사명을 말씀하신 바탕을 살펴보면 3초 사명 뒤의 대인출세(문왕 사명) 역시 갑을기두甲乙起頭라는 기제機制(작용원리)로 인사문제화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운산 성도사가 해방이후 2변 증산교대법사 20년 대휴게기 선포이후 74년(甲寅) 기두한 것이며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84년(甲子)에 공식적으로 증산도를 선포한 것입니다.
“갑을로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로 구비친다”는 말씀은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제님 천지공사에 있어 대국적인 마디와 절을 이루는 분기점에 있어 대국적인 천간의 기운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되며 대소사를 막론하고 천지 기운의 변화 흐름을 타고 진행될진대 상제님 대업과 같은 대대적인 사건이 변화 이치에 벗어나서 이루어질 리는 만무할 것입니다.
그래서 삼복도 역시 삼초와 마찬가지로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치를 관통했다면 바로 특정 시점과 사건을 연결시켜 정답을 선언적으로 밝힐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제 과거사로 남게 된 교운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갑을로 머리를 든 큰 사건을 찾아 의미를 따져 보아서 삼복의 시점을 찾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을유년 8.15 해방을 계기로 안 운산 성도사님이 우주1년 이치를 바탕으로 상제님 진리를 세상에 내놓은 사건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대형사건이었습니다. 성도사님은 어린 나이에 천지부모님의 숙구지 공사로 깨어나시어 천지 이치를 관통하시고 문무의 덕을 겸전하신 대인으로 역사에 전무후무한 발자취를 남기신 분입니다. 초인적인 열정으로 짧은 시간에 폭발적이고 경이로운 단체 성장을 이루셨지만 혼자서 대업의 끝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이치에 의해 현실적으로 이상호 이정립 형제라는 최악의 파트너를 만나 자신의 개척 결과물을 송두리째 빼앗겼을 뿐 아니라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려 귀양살이처럼 은둔의 삶을 사시게 됩니다.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능력을 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인물들이 역사에는 비일비재한데 성도사님 또한 그런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도사님이 어떤 능력자인지를 조금 맛배기를 보여주신 것이 2변 교운으로 알려진 증산교 대법사 판이었다고 봅니다.
일반적인 인생의 전성기 기간이라 할 수 있는 30~50대에 걸쳐서 무려 20년 동안이나 묶여지내신 성도사님이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나신 건 74년 갑인년이었습니다. 왕년의 증산교를 다시 찾으시어 단체 개창자로서 책임을 지려고 하셨지만 이미 이상호 이정립의 교단으로 완전 변질되어버린 상태라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으시고 60을 바라보는 초로에도 결코 퇴색되지 않은 개척 정신으로 새롭게 판을 개척하시게 됩니다.
은둔 기간동안 길러진 자식들을 보필로 하여 온갖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84년 갑자년에 증산도 체제를 출범시키게 됩니다. 이 때 여러 자식들이 증산도의 개척에 뛰어들어 함께 했지만 이 시기에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은 안경전 종정님입니다. 성도사님의 요약 함축된 진리 선언 말씀을 풀어, 문명화된 세상에 보편적인 문화사업을 펼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서적을 연속적으로 내놓으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종통관을 세워 후계 구도 경쟁에서 다른 자식들을 일찌감치 따돌리는데 성공했으며, 92년 도전 초판을 간행하는데 혼을 다 바쳐 성도사님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됩니다. 이미 70을 넘긴 성도사님은 단체의 정신적인 상징에 불과하고 실제적인 일은 종정님의 주도하에 돌아가게 되는 90년대 후반기부터 증산도 단체는 많은 문제를 야기해 나가다가 2012년 성도사님의 선화를 계기로 드디어 혁명 기운으로 터져나오게 됩니다.
이상에서 약술한 바를 토대로 살펴볼 때, 해방 후 지금까지 갑을로서 머리를 든 사건은 바로 45년 을유년 성도사님의 활동개시와 74년 갑인년 재기두 이렇게 두 번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삼복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45년이 초복, 74년이 중복으로 <운암강수 만경래 공사>에서 상제님이 말씀하신 ‘천하사 세 번’ 과 계룡산 ‘장 닭 세 홰’ 울음이 상호 간말하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복을 순수 시간 개념으로만 국한시켜 살림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다른 말씀들과 같이 풀어보면 충돌 현상이나 억지 맞춤식의 느낌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아들어간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운암강수 만경래 공사>에서 상제님이 말씀하신 ‘천하사 세 번’의 개념과도 맞아들어가며 계룡산 ‘장 닭 세 홰’ 의 개념과도 모순 없이 적용가능한 부분입니다. 다만 삼복을 살림으로 풀어서 초복 살림, 중복 살림, 말복 살림으로 적용하려고 하면 살림의 개념이 시간 개념과 다른, 단체 혹은 체제의 개념이기 때문에 초중복 동거 살림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풀이로 빠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다시 한 번 풀어보면 45년 초복을 맞이한 성도사님은 시절화로 피어나 증산교 대법사 판을 개척하시지만 때가 아직 이름을 아시고 은둔하셨다가 중복의 시간대에 재기두하시어 초복 때 벌려놓은 사업의 한계를 깨달으시고 새로운 개척활동을 도모하시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중복의 시간대에 펼쳐진 천하사의 결과물이 증산도 단체이며, 이 때 성도사님은 이미 초로의 연세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활동 주역들은 성도사님의 자제분들입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진리를 책으로 펴 내고 교리를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안 경전 종정님으로 중복의 시간대에 최고의 파워와 권위를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도사님의 선화를 계기로 안 경전 종정님이 공식적으로 종통을 물려받지만 그동안 누적되어온 문제가 표면화되어 “천하사 세 번” 진리혁명 기운으로 태동하게 되었고, 사오미巳午未 개명開明 도수의 2014년 갑오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 동안 교운사에서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았던 추수 도수 공사의 전모가 범증산계 <통합경전>을 통해서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던 교운의 대통합을 위한 “윷판 도수”의 발동이라 할것이며이 역시 갑을로서 머리를 들어 시작되고 있기에 2014년 갑오년은 새로운 천하사 판이 시작되는 분기점이므로 당연히 말복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풀어보면 삼복의 시점 문제와 단체 살림의 정합성이 맞지 않아 빚어지게 되는 모순적인 ‘동거 살림’이라는 표현은 필요없게 되며 여타 부수적인 개념들과도 충돌하지 않는 무난한 설명이 되리라 봅니다.
상제님의 공사 중 ‘패 석 장’을 펼치시어 판몰이를 하시는 공사에서도 패를 인물(카드)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패 석 장 공사’는 ‘추수 도수가 3명의 패(지도자)로 되어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판몰이가 된다’는 1차적인 풀이가 가능하며 이것을 굳이 세 살림으로 비약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오성산의 말뚝 공사에서도 말뚝은 지도자를 뜻할 뿐, 살림으로 연결하기가 어려우며 천지정리 무기토 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살림이란 말은 고수부님이 맡으신 일에서 차용한 개념인데 그 외의 어떤 공사나 도수에서도 세 살림이란 구체적인 표현은 없는 걸로 압니다. 그래서 역사적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살림이란 용어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 닭 세 홰’는 ‘패 석 장’처럼 인물이란 개념이 아니므로 사건(이벤트) 개념으로 봐서 삼복의 시간대에 그 시기의 운을 받는 인물이 대표적으로 부르짖는 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추수 도수의 완성으로 가는 흐름에서 1차적으로 성도사님이 우주 1년을 통해 교리의 기초 토대를 놓고 1945년 을유해방 이후 증산교 대법사 2변 교운을 개척한 것이 첫번째 홰라면, 안경전 종정님이 <증산도의 진리> <도전>책을 통해 2차적으로 교리의 틀을 잡은 것이 두번째 홰에 해당하며, 마지막으로 교운의 대통합을 위한 <통합 경전>이 세번째 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