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산 덕 윤리학의 이론적 한계와 주자학적 연속성
정약용은 자신의 실천지향적인 덕 윤리학적 구상을 <논어고금
주>(1813) ,<맹자요의>(1814) 등의 저작을 통해 구체화한다. 그에 따르면
덕은 “인륜에 독실한 것”이다. 즐거움樂·용기勇·신의信 등과 같은 성
품에 관련된 것들도 덕에 속한다. 인의예지의 덕은 사단이라는 “마음
이 발현한 바[心之所發]” 덕을 좋아하는 성향을 행할 때 얻어지는 덕이
다. 다만 사단은 여러 의식 현상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덕이 인의예지에 국한될 필요는 없지만 모든 다양한 덕들이 인으로 통
일될 가능성이 부정 되지는 않는다.
덕의 개념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심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진 상태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는 덕에 대해 “곧은 마
음" 혹은 “본심의 곧고 바른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근본적
으로 덕은 그와 같은 마음을 행한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는 다
음처럼 말한다. “마음에는 본래 덕이 없다. 오로지 솔직한 성향만이 있다.
어서 나의 솔직한 마음을 행할 수 있는 것, 이것을 덕이라 한다. [덕이라
는 글자는 솔직한 마음을 행한다는 뜻이다] 선을 행한 뒤에야 덕의 이름이
이에 서게 되니, 행하기 전에 나에게 어찌 밝은 덕이 있겠는가”?
도덕적 선이란 리理와 같은 초월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승된 인륜의 실천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덕
은 그와 같은 인륜의 실천일 뿐이다. 이 점에서 덕은 공동체 구성원과
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효·제·자라는 혈연적 인륜으
로 귀착된다. 사실 효·제·자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유학의 전통적
규범일 뿐이지만 정약용으로서는 당시 무너져가고 있었던 윤리질서를
지키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결론이다. 그는 효·제·자와 같은 덕의
실천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 당시 윤리 정치적 위기의 근본 원인이
라고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요즘 사람들은 ‘덕’ 자에 대한 인식이 원래 분명하지 못해서 성인의 경전을
읽다가 ‘덕’자를 만나면 멍하니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서 다만 순후
하고 혼박渾朴하여 청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덕의德意가 있다
고 여겨, 이런 기상으로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다스리면 거의 만물이 저절
로 귀화 한다고 바라고 있지만, 어떤 국면을 당하고 일에 임해서는 어디에
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어찌 세상 물정에 먼 것이 아니겠는
가? 이것이 천하가 날로 부패하고 문드러져 새로워짐이 없게 된 원인이다.
덕이란 인륜에 독실한 것을 두고 명명한 것이니 효·제·자가 그것이다.
당시 성리학자들은 이기심성론에 몰두한 나머지 덕의 실천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덕을 모르면서도 단지 성품이 순박하기만
하면 그를 “덕을 실천할 의향”이 있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진실로 덕을 가질 수 없다. 성
리학자들은 규칙이나 원리에 대해 지각한 것을 의향으로써 실천하게 된
다고 설명하지만 의향은 자신이 목적하고 의도한 바를 택하기 때문에
안 것을 반드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지각 능력이 덕과 분리된
다면, 그것은 자의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쉽게 전락할 것
이다. 그와 같은 도구적 지각 능력과 의향의 자의성은 전통 규범의
붕괴 와 용인될 수 없을 정도 로 다양 한 가치의 확산 을 야기
할 것임에 분명했다. 따라서 지각과 의향이라는 마음의 기능을 대체할
덕을 알아서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적 심성 개념이 필요했다.
정약용이 의향 대신 ‘권형權衡’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은 아
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권형’은 일반적으로 [천주실
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자유의지’로 해석되어 왔지만, 그것이 자
의적인 선택과 의지를 의미하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정약용에 의하
면 인간은 상제와 존재론적으로 같은 차원에 있는 정신적 귀신[神]과
물질적 육체[形]의 신묘한 결합체이므로 그러한 결합에 의해 형성된 마
음, 즉 ‘영체靈體’에는 덕을 좋아하는 성향[性]과 육체적인 안락을 좋아
하는 성향이 공존한다. 도심이란 덕을 좋아하는 성향이 발현된 마음
이고, 인심이란 이기적인 성향이 발현된 것이다. 그런데 ‘영체’는 ‘영지靈
知’라고도 지칭되듯 사물의 이치를 인식하는 작용을 주로 하지만, 여
기에는 또한 도심과 인심을 저울질하여 한쪽을 택하는 ‘권형’의 능력이
부여된다. 도덕적 선택을 규율할 어떠한 원리도 내재하지 않기 때문에
‘권형’은 “선을 하려고 하면 선을 하고 악을 하려고 하면 악을 하도록 하
여 향방이 유동적이고 일정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 자체는 위험한 것
이다. 그것은 오로지 두 성향 가운데 강렬한 것으로 기울 따름이다. 그
러나 ‘권형’은 의향과 달리 ‘영지’ 안에 부여되기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
는 바 를 자각 함으로써 늘 ‘영지의 기호’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영
지’ 의 자각과 기호嗜好가 온전히 유지되는 한 ‘권형’은 “선(덕)을 좋아하
고 악을 부끄러워하는<樂善恥惡>” 도심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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