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어린왕자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저 별들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에 꽃이 하나 살았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왕자 있었다네
꽃이여 내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어린왕자 그 한마디 남기고 별을 떠나야 하였다네
꽃은 너무나 슬퍼서 울었다네 꽃을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왕자의 눈물을 감추며 멀리 저멀리 떠났다네
한해 두해가 지난뒤 어린왕자 돌아왔다네
하지만 그 꽃은 이미 늙어버렸다네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요
꽃은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만 시들어버렸다네
어린왕자는 꽃씨를 묻었다네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왕자의 눈물을 받은 꽃씨는 다시 살아났다네
라 라 라 꽃은 다시 살아났다네 라 라 라
하늘가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어린왕자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따라 말했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선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내 장미꽃 한 송이가 내게는 수천 수만의 장미꽃보다 더 소중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로 보호해주고 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란다'
2000년은 어린왕자의 친구 생텍쥐베리의 탄생 100주년입니다
<어린 왕자>라는 결코 새롭지 않은 책을 2000년 벽두, 이 새로운 전환기에 또다시 출간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 왕자는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상실된 인간의 순결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희망찬 비전과 암울한 전망이 교차하는 전환기의 이곳에서 어린 왕자는 우리들에게 다시 무엇인가를 애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법정 스님은<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서, 자신에게 있어<어린 왕자>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經典)과도 같으며 누가 자신에게 지묵으로 된 한두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어린 왕자>를 고르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자신과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책을 읽고 난 반응으로 짐작할 수 있으니, 자신에게있어 <어린 왕자>는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尺度)와 같다고도 했다.
사실 <어린 왕자>는 단순히 동화나 우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깊은 상징과 은유들을 담고 있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내 장미꽃 한 송이가 내게는 수천 수만의 장미꽃보다 더 소중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로 보호해주고 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 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기울여 들어준 것도 그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장미꽃이기 때문이지." 우리에겐 이미 잊혀져버린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면서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라고 말하는 어린 왕자는 정원에 몇천 그루의 꽃을 가꾸면서도 자신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단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도 엄청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직하게 일깨워준다
한편,2000년은 어린 왕자의 '아저씨' 생텍쥐페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랑은 "나의 안내로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해야만 한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
현대인들은 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야 하는 걸까? 우리는 마치 훌륭한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서 들을 수 있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서 읽히도록 만들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왕자>를 스무 번도 더 읽어, 이제 새삼스래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이 책장을 훌훌넘기기만 해도 행간에 씌어진 사연이며, 여백에 스며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들을 수 있게 되었다던 법정 스님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어린 왕자>는 두고두고 우리의 서가에 꽂혀있어야만 할 영혼의 양식임에 분명하다. 20세기를 빛낸 그 수많은 명저 가운데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만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각각 다른 느낌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하여 혹자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우주의 근원을 넘나들듯 죽음을 맞이하는 어린 왕자에게서 불교적 향기를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구는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에게서 '굽어보는 자이기를 원했던 귀족적 엘리트의식과 영웅주의적 시각을 지적해내기도 하며, 고종석씨 같은 이는 생텍쥐페리를 강한 기질에 페니미즘이 결합된 행동주의자로 분석하기도한다. 이처럼 <어린 왕자>는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작가 또한 수많은 해석과 변용의 아우라를 지니는 세기의 명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