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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06 21:25
조선왕실 족보- 선원속보
 글쓴이 : 목화씨
 


선원속보 


조선왕실의 족보 중에 [선원속보璿源續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조선왕실 전주이씨의 대동입니다. 대동보로서 이만한 양의 족보는 아마도 세계에 그 유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방대한 양의 대동보가 작성된 이유는 그 이전의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이 대동보의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종친록][유부록][선원계보기략] 등이 갖고 있는 특징은 일정대수의 왕족만을 수록한다는 점입니다. 즉, [종친록]은 특정왕의 남계후손男系後孫을 9대까지 수록했으며, [유부록]은 특정왕의 여계후손女系後孫을 6대까지지만 수록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선원록류는 일반 가문의 족보로 판단하면 파보도 아니고 대동보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파보가 되려면 각 파조부터 족보가 작성되는 시점의 모든 대상자가 수록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대군이나 군의 후손들은 따로 파보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동보는 작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동보를 작성하려면 조선시대 전체의 왕을 수록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조선후기에 이르러 유수한 가문에서 대동보를 작성하는데도 전주이씨 전체를 포괄하는 대동보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전주이씨들이 대동보를 만들자는 청원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정조 14년에는 유학 이헌휘李憲徽 등이 상소문을 올려 전주이씨의 대동보를 작성하고자 요구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원계보기략]은 국가의 족보인데, 여기에 규정 이상의 모든 전주이씨를 수록하여 대동보로 만들고 이를 각 가문에 소장하도록 한다는 것은 국가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하여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실의 대동보로서 [선원속보]가 작성되기 시작한 것은 철종 11년에 이르러서입니다. 철종은 대동보를 작성해야 한다는 전주이씨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친족을 돈독히 한다는 명분으로 족보간행을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을 연속하여 만든 족보라는 뜻에서 [선원속보]라 했습니다. 

[선원속보]의 간행을 주관한 곳은 종친부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종 이전에는 종부시 宗簿寺에서 왕실족보를 작성했으나, 고종조에서 종부시가 종친부에 통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대한제국기에는 종친부의 후신인 종정원宗正院에서 왕실족보의 작성을 주관했습니다. 

[선원속보]는 각 파별로 파보를 만들고 이를 종합하는 대동보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수록범위는 전주이씨 전체로서, 각 파별로 파조派祖가 되는 대군이나 군 이하 당시까지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됩니다. 파보는 각 파의 문장門長이 주관하여 각 지역이 족파로부터 단자單子를 받아 근거자료로 이용합니다. 선원속보를 간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단자를 내는 사람들로부터 명전名錢과 책가冊價를 받아 충당했으며, 목활자木活字로 간행했습니다. 

체제는 범례가 맨 앞에 있고 이어 6단의 세보世譜가 차례로 실려있습니다. 범례는 15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작성원칙을 밝힌 것입니다. 족보의 매 장 마다 천자자호千字字號가 달려 있어 열람에 편하게 했습니다. 끝에 각 파의 족보를 책임진 종손, 문장, 유사 등의 직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원속보]에 수록되면, 공식적으로 조선의 국성國姓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국성이 되면 온갖 잡역을 면제받고 양반으로 인정되는 등 각종 혜택을 받기에 허위로 [선원속보]에 등록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각 파의 문장들이 돈을 받고 가짜를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철종 11년에 작성되기 시작한 [선원속보]는 8년 만인 고종 4년(1867)에 완성됩니다. 이때 [선원속보]의 양은 전주이씨 102파의 파보를 종합한 350권에 이릅니다. 그러나 [선원속보]가 간행된 것은 그 이후인 광무 4년(1900)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현존하는 [선원속보]는 대부분이 광무 4년과 광무 6년(1902)에 종정원에서 출간한 본입니다.

현재 [선원속보]는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다량 소장되어 있습니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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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씨 15-09-06 21:28
 
[선원속보]에 등록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각 파의 문장들이 돈을 받고 가짜를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꿈이였어 15-09-06 22:15
 
[선원속보]의 간행을 주관한 곳은 종친부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종 이전에는 종부시 宗簿寺에서 왕실족보를 작성했으나,
고종조에서 종부시가 종친부에 통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대한제국기에는 종친부의 후신인 종정원宗正院에서
왕실족보의 작성을 주관했습니다.
옥수 15-09-06 22:55
 
[선원속보]에 수록되면, 공식적으로 조선의 국성國姓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국성이 되면 온갖 잡역을 면제받고 양반으로 인정되는 등 각종 혜택을 받기에
 허위로 [선원속보]에 등록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각 파의 문장들이
돈을 받고 가짜를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사오리 15-09-06 23:46
 
산세가 높고 험준한 곳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으나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
는 계곡에는 수풀이 무성하고, 물살이 세찬 곳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지
만 깊고 고요한 연못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그러한 까닭에 군자는 지나치게 고상한 행동과 편협하고 조급한 마음을
깊이 경계한다.,
je양촌리이장 15-09-07 07:13
 
철종 11년에 작성되기 시작한 [선원속보]는 8년 만인 고종 4년(1867)에 완성됩니다.
이때 [선원속보]의 양은 전주이씨 102파의 파보를 종합한 350권에 이릅니다.
그러나 [선원속보]가 간행된 것은 그 이후인 광무 4년(1900)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현존하는 [선원속보]는 대부분이 광무 4년과 광무 6년(1902)에 종정원에서 출간한 본입니다.
호반도시 15-09-07 07:42
 
[선원속보]는 각 파별로 파보를 만들고 이를 종합하는 대동보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수록범위는 전주이씨 전체로서, 각 파별로 파조派祖가 되는 대군이나 군 이하
당시까지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됩니다.
된장찌개 15-09-07 11:27
 
조선왕실의 족보 중에 [선원속보璿源續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조선왕실 전주이씨의 대동입니다
게리 15-09-07 14:24
 
대동보를 작성하려면 조선시대 전체의 왕을 수록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조선후기에 이르러 유수한 가문에서 대동보를 작성하는데도 전주이씨 전체를 포괄하는 대동보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전주이씨들이 대동보를 만들자는 청원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동선 15-09-07 15:07
 
체제는 범례가 맨 앞에 있고 이어 6단의 세보世譜가 차례로 실려있습니다. 범례는 15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작성원칙을 밝힌 것입니다. 족보의 매 장 마다 천자자호千字字號가 달려 있어 열람에 편하게 했습니다.
끝에 각 파의 족보를 책임진 종손, 문장, 유사 등의 직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9-07 16:34
 
각 파의 문장들이 돈을 받고 가짜를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없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인원이 가짜 족보를 취득했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대한민국 4대 성씨가 씨를 잘 퍼트린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객1 15-09-07 17:42
 
출근하고 읽어 보것습니다
선플 땡기고 갑니다~
아사달 15-09-07 18:48
 
선원속보]에 수록되면, 공식적으로 조선의 국성國姓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국성이 되면 온갖 잡역을 면제받고 양반으로 인정되는 등 각종 혜택을 받기에 허위로 [선원속보]에 등록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각 파의 문장들이 돈을 받고 가짜를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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