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도烏鵲圖 4<닭 울음소리鷄鳴聲>
닭이 운다는 것은 날이 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깜깜한 밤이 물러가고 여명을 알리는 소리가 닭 울음소리다. 날이 밝아오는 것을 닭이 알고 있는 것이다. 1981년 1월 1일 경향신문 칼럼에 <닭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민속학자 임동권 교수의 글이다.
<(중략)사람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내고 있으나 시계를 차고 다니는 데서 그 밑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시계를 차는 것은 시각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도 알지 못하는 영장인 셈이다./ 수탉은 시계를 차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하게 시각을 맞추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닭울음소리로 시간을 판단하고 생활 활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닭은 깜깜한 한밤중에 시계를 보지 않고 첫째 둘째 셋째로 울어 주었다./소위 계명성鷄鳴聲이다. 우리 조상들은 첫째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자정이 지난 것을 알고 제사메를 지으러 부엌에 나갔고 셋째 닭 울음소리에 이제 곧 날이 샐 것을 알았다. 즉 닭 울음소리를 시보로 삼았다. 닭은 시계를 차지 않았으나 시간을 판단하는 현명이 있었다./ 사나이는 가족을 영도하는 가장이다. 시간의 흐름이나 세상의 돌아가는 꼴을 판단하는 현명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판단에서 비로소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끌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현명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패배자가 되어 가장의 구실을 제대로 못한 것이 된다.(중략)>
증산도를 추수도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태사부님께서 태전 땅으로 들어와 20년을 은둔하셨다가 상제님 태모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포교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태사부님께서 종통을 바루신 것이다. 이것은 대순의 역사에서도 없었고, 원불교의 역사에도 없었으며 오직 우리 증산도의 역사에서만 있는 독보적인 위대한 일이다. 태사부님께서 개창한 증산도에서만이 종통을 바루고, 태전 땅에 상제님 대업의 터전을 닦은 것이다.
더군다나 종정님께서는 책을 편찬하는데 정력을 쏟음으로 해서, 김호연 성도와 백복남 성도의 증언을 채록하는 길을 열었다. 각 종파에서 나름대로의 경전을 간행했지만 증산도 도전이 가장 잘 되었다고 자부하는 것은 바로 이런 독특한 증언을 경전 말씀으로 구성해 이제 비로소 상제님 진리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는 바탕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선매숭자 사명을 받은 김호연 성도를 증산도에서 만났다는 것은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이다. 이것은 여기저기로 흘려보냈던 상제님의 도맥의 물줄기가 증산도에서 다시 하나로 흘러들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상제님 종통의 계승자로 태모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위대 했는데, 상제님께서 쓰신 선매숭자를 증산도에 만났다는 것은, 증산도가 상제님 대도의 성사재인의 본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산도는 비약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함께하실 줄 알았던 태사부님은 선화하셨고, 종정님은 천륜으로 맺어진 형제들을 출교시켜버렸다. 모든 바탕이 갖추어져 이제 성장세를 탈만도 할 시기인데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날이 밝아지기는커녕 더욱 어두워져 버렸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서나동에 암탉이 울었기 때문이다.
서경書經의 <목서편牧誓遍>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절세가인 달기에 빠져 주색에 빠지고 호화로운 궁궐을 지어 백성들의 원망이 자자해지게 되자 周나라 무왕武王은 주왕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거느리고 은나라 목야牧野라는 지역으로 출정했다. 무왕은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왕정벌의 대의명분을 설파한다.
<옛 사람의 말에, 닭이 아침에 울 때 수탉이 먼저 울고 암탉은 그 뒤를 이어 울어야 당연하다. 암탉이 먼저 우는 것은 도에 어긋난다. 이제 상왕(은왕) 受(주왕)는 부인(달기)의 말만 중시하며 현자의 의견을 멀리했다. 또 주왕은 매일 유락에 빠져 왕으로서 중요한 제사를 소홀히 하고 천지 신들이 나라를 보호하고 있으나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정성이 없어 제사에도 등한시 하였다. 또 왕은 자기 친척도 보살피지 아니했다. 제弟는 부父의 제弟이나 그 가족을 멀리 하고 대우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죄를 범하고 그 땅에 있을 수 없어 사방에서 도망해 온 자를 신용해 중용하였는데, 대부 혹은 경사의 높은 지위를 주었다. 그러한 지위를 얻으면 그 지위를 이용하여 백성을 괴롭히고 개인의 즐거움만 구했다. 또 갖가지 간사한 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이러한 행위는 왕의 잘못으로 왕이 그러한 자들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악행이 이 정도이면 단연코 용서하지 못하겠으니, 나 발發은 하늘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형벌을 주려고 군사를 일으켰노라.(번역 몽촌)
古人有言曰호대 牝鷄는 無晨이니 牝鷄之晨은 惟家之索이라 하도다 今商王受惟婦言을 是用하야 昏棄厥肆祀하야 弗答하며 昏棄厥遺王父母弟하야 不迪하고 乃惟四方之多罪逋逃를 是崇是長하며 是信是使하야 是以爲大夫卿士하야 비暴虐于百姓하며 以姦究于商邑하나다 今予發은 惟恭行天之罰하노라>
여기서 무왕이 말한 암탉은 주紂임금 곁에서 요사스런 갖은 짓을 한 달기를 일컫는 것이다. 서나동 암탉은 사위님의 계략에 놀아난 사위님 부인을 지칭한다. 사위님의 사주를 받은 서나동 암탉의 도정농락으로 인해 증산도는 발전의 틀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약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약만 못한 것이 아니다. 여우는 종정님 주위를 간신배로 가득 채우는 농간을 부려 증산도를 이씨 집안의 곳간으로 만들어 나갔다. 신도들의 혈성이 저들의 사생활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아마 종정님께서는 이를 두고 당신님과 사위님이 창경원을 달린 쌍두마차 도수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곳은 한때 놀이공원이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하셔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저들의 농간에 도문을 떠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살아서도 나가고 죽어서도 나갔다. 살아서 도문을 떠난 사람들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상제님 일의 대사를 감당할 만한 다른 단체는 찾아보지 못했다. 증산도에서 종통을 바루었고, 선매숭자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의 끝에서도 상제님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며 불고가사로 인해 피폐해진 가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계명성鷄鳴聲이 들린 것이다. 그것은 담론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의 소식이다.
사위님은 더욱 치졸한 방법으로 혁명을 훼방하기 시작했다. 사위님은 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세상일에는 무뇌아였다. 세상 속에 뛰어들어 노동을 해보지 않았으니 세상일을 알 턱이 없었다. 법전이라는 책을 벗어난 일에 대해서는 그는 알지 못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송질은 장님 소송질이 되어 시행착오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쩌면 서나동에서 촉발된 모든 상극정책은 아마도 세상물정 모르는 사위님의 머리에서 나와 종정님 이름으로 시행되었는지 모른다.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전횡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여기에 대한 의심은 점점 짙어만 간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도뢰가 의심되는 것이다.
이제 저 암탉 같은 무리들, 사위와 오적들을 신성한 상제님 태모님 도정에서 정리해야 할 때다.(여기서 암탉을 얘기한 것은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혁명은 증산도 웅비를 위한 자정작용으로, 흐르다가 막힌 물을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터 주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위와 오적을 제거하는 것은 상제님 대도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이것은 상제님의 천명이다. 그래서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또 혁명은 상제님 대도를 세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세상 속에서 힘을 기른 사람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대사다. 태사부님과 종정님의 혈성으로 대업을 이룰 기반을 갖추었다면, 마지막 대업을 이룰 사람은 세상일에 도를 통한 인물이어야 한다. 세상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도정의 핵심 축이 되어야, 일의 선후를 잘 살펴 대사를 도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도정에 책머리와 세상머리를 동시에 갖춘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증산도 웅비의 조건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