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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08 19:52
회안대군 방간 후손들의 족보와의 전쟁
 글쓴이 : 목화씨
 

회안대군 방간 후손들의 족보와의 전쟁 


조선시대의 왕실족보는 왕족임을 증명해주는 보증서와 같습니다. 왕족은 출생하면서 3년마다 작성되는 왕실족보에 기재됨으로써 왕족으로 편입됩니다. 이를 근거로 국가에서는 왕족들에게 형사상, 행정상, 군사상, 경제상의 갖가지 특혜를 수여합니다. 특히 몰락한 왕족들의 경우 그들의 신분을 증명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왕실족보에 기재되는 것이 유일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친족집단은 혈연을 매개로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친족은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운명공동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친족 내부에 반역자나 범법자가 나타나 친족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게 될 경우, 그는 친족들에게서 가차없이 축출됩니다. 

조선시대에 특정인을 친족집단에서축출시키는 확실한 방법이 바로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족보에서 빠진 사람은 이제 어느 친족에도 소속될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파문된 사람과 같습니다. 그가 여태껏 기대고 의지하던 조상신과 친족들도 더이상 그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험한 세상에 이단으로 내몰려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족보에서 빠진다는 것은 곧 이 사회에서 생매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왕족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실족보에 등록된 왕족은 그의 신분과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실족보에서 빠지는 순간 그의 모든 신분과 특권이 박탈됩니다. 

등록된 왕족을 족보에서 빼버리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예컨대 반역에 연루된 왕족은 가차없이 빼버립니다. 또는 중범죄를 저지른 왕족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반역에 연루된 경우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반역자는 더 이상 같은 친족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족보에서 빠진 사람의 후손도 자연히 사회에서 생매장 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 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후손들은 조상을 신원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조상의 신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후손이 조상을 신원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은 효孝의 논리로 얼마든지 정당화되었으므로 가능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성공할 경우 조상과 자신들이 다시 족보에 수록되고, 후손들도 그에 걸맞는 신분과 특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의 후손들이 왕실족보 [선원록]에 다시 등록되기 위해서 벌인 300여 년의 노력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 합니다. 

회안대군은 태조 이성계의 넷째아들이며 태종 방원의 바로 위의 형입니다. 개국 후 태조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함으로써 커다란 혼란을 자초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공식적으로 아들이 8명이고 딸이 5명 입니다. 8명의 아들 중 여섯은 첫째부인 신의왕후神懿王后 소생입니다. 나머지 두명은 후처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소생입니다. 

조선을 창업하기 이전의 이성계는 본래 고려의 변방 동북면 지역의 장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고려말의 혼란기는 변방출신 장군이 출세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남쪽으로는 왜구가 창궐하고 북쪽으로는 홍건적이 들끓어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성계는 이들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무예와 전술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명장으로서의 주가를 올려갔습니다. 

동북면 지역의 무명장군에서 일약 출세하여 개경으로 진출한 이성계는 그곳에서 현지처를 얻었는데, 그분이 신덕왕후입니다. 출세 후 얻은 여인이라 신덕왕후는 인물이나 지성, 그리고 가문의 배경 등 모든 면에서 신의왕후보다 좋았습니다. 물론 나이도 신덕왕후가 젊었습니다.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가까이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처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선을 창업한 이후에도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총애했습니다. 그 총애가 지나쳐 자신의 후계자마저도 신덕왕후의 어린 소생 방석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기를 노리던 장성한 아들들의 불만을 폭발시켰습니다. 특히 개국과정에서 남다른 지모와 결단으로 이성계를 도왔던 다섯째아들 방원의 불만이 컸습니다. 방원은 결국 군대를 일으켜 방석을 살해하고 아버지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1차 왕자의 난입니다. 

그런데 회안대군 방간도 차기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기 동생 방원이 있었지만 순서로 보면 자신이 먼저였습니다. 또 권력에 대한 욕구는 누가 말릴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회안대군은 왕위를 놓고 자신이 동생 방원과 격돌을 벌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2차 왕자의 난인데, 이때 회안대군의 핵심참모가 박포朴苞입니다. 

회안대군은 방원과의 대결에서 처절하게 실패합니다. 당연히 패배자는 역적이 됩니다. 방원은 역적 박포를 사형에 처합니다. 회안대군은 비록 역적이지만 형이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충청도 서산으로 유배시킵니다. 물론 회안대군은 왕실족보 [선원록]에서 삭제됩니다. 살아는 있지만 왕족에서 축출된 것입니다.

회안대군은 유배지 서산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회안대군은 죽었지만 그의 피를 이은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회안대군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역적의 후손이 되었고, 당연히 [선원록]에도 등재되지 못했습니다. 

회안대군의 후손들이 [선원록]에 등재되기 위해 벌인 노력은 참으로 끈질기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대를 이어가며 상소를 올려 회안대군의 신원을 탄원했습니다. 회안대군이 신원되면 자신들은 당연히 [선원록]에 등재되고, 왕족으로서의 갖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회안대군의 후손들이 벌인 노력은 장장 3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결실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태종이 사망한 후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회안대군의 신원을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선조, 광해군, 인조, 숙종 등 왕이 바뀔 때마다 회안대군의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그들의 논점은 회안대군은 별 욕심이 없었는데, 박포가 꼬드겨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박포가 역적이고 회안대군은 오히려 희생자라는 것입니다. 

선조는 회안대군의 신원에 대해서 처음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즉, 선조는 회안대군과 방원의 대결은 전적으로 박포의 농간 때문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선조의 의견으로는 회안대군의 죄라면 박포의 음흉한 술수를 간파하지 못한 불찰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회안대군의 신원이 완결되지는 못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회안대군도 신원되지 못했고, 그의 후손들도 [선원록]에 등재되지 못했습니다. 

회안대군의 후손들은 좌절하지 않고 광해군, 인조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신원운동을 벌입니다. 드디어 그들에게 때가 왔습니다.바로 숙종이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숙종은 왕위에 오른 후 단종을 복위시켰습니다. 이런 신원은 세조가 취한 조처를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숙종 6년에 두번째 부인 인형왕후 김씨 仁顯王后 金氏를 맞이합니다. 

숙종은 인형왕후를 맞이하면서 왕실족보를 대대적으로 증수합니다. 우선 그 이전까지 [선원록] [종친록]의 세 가지로 나뉘어 작성되던 족보를 하나로 통합하여 [선원계보기략]으로 만듭니다. [왕비세보]도 새로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조치는 대체로 왕실세력을 새로 통합하여 왕권의 발판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회안대군의 후손들이 놓칠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숙종에게 대대적으로 회안대군의 신원을 탄원하는 상소문을 올립니다. 이들은 회안대군과 태종의 대결은 모두 박포의 죄악으로 돌렸습니다. 아울러 선조가 이미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진 왕실세력을 대통합하려던 숙종은 이 탄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즉, 새로 작성되는 [선원록]에 회안대군 및 그 후손들을 모두 조사하여 수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회안대군이 [선원록]에서 삭제된 지 실로 300여 년 만의 일입니다.

[선원록]에 등재된 회안대군의 후손들은 더이상 역적의 후손이 아닙니다. 어엿한 왕자의 후손입니다. 이제 왕자의 후손입니다. 이제 왕자의 후손으로서 그들은국가로부터 군역을 면제받고 형사상으로도 특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300여 년에 걸친 기나긴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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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씨 15-09-08 19:55
 
방간 후손들이 300년을 신원운동해서 얻은 결과로  200년 특권을 누렸으니 원은 없었겠습니다
정수리헬기장 15-09-08 21:25
 
[선원록]에 등재된 회안대군의 후손들은 더이상 역적의 후손이 아닙니다. 어엿한 왕자의 후손입니다. 이제 왕자의 후손입니다. 이제 왕자의 후손으로서 그들은국가로부터 군역을 면제받고 형사상으로도 특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300여 년에 걸친 기나긴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옥수 15-09-08 22:28
 
회안대군의 후손들이 [선원록]에 등재되기 위해 벌인 노력은 참으로 끈질기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대를 이어가며 상소를 올려 회안대군의 신원을 탄원했습니다.
회안대군이 신원되면 자신들은 당연히 [선원록]에 등재되고, 왕족으로서의 갖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호반도시 15-09-09 07:04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의 후손들이 왕실족보 [선원록]에 다시 등록되기 위해서 벌인
 300여 년의 노력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 합니다.
각설탕 15-09-09 09:56
 
회안대군은 태조 이성계의 넷째아들이며 태종 방원의 바로 위의 형입니다.
개국 후 태조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함으로써 커다란 혼란을 자초합니다.
게리 15-09-09 10:55
 
회안대군은 왕위를 놓고 자신이 동생 방원과 격돌을 벌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2차 왕자의 난인데,
이때 회안대군의 핵심참모가 박포朴苞입니다.
현포 15-09-09 13:13
 
300여 년에 걸친 기나긴 노력의 결실.
동선 15-09-09 13:57
 
족보에서 빠진 사람의 후손도 자연히 사회에서 생매장 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 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후손들은 조상을 신원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조상의 신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객1 15-09-09 17:49
 
회안대군은 유배지 서산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회안대군은 죽었지만 그의 피를 이은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회안대군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역적의 후손이 되었고, 당연히 [선원록]에도 등재되지 못했습니다.
칠현금 15-09-09 23:58
 
동각 잡기 상(東閣雜記上)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 무인년(1398, 태조 7) 정사(定社) 후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박포(朴苞)는 자기의 공이 많은데 도리어 여러 신하의 밑에 있다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무(李茂)는 비록 정사의 반열에 참여는 하였지만, 공(功)이 사람들의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고, 또 이랬다 저랬다 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니, 태종이 공정왕에게 아뢰어 박포를 죽주(竹州)에 귀양보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소환했으나 박포가 앙심을 품고 난을 일으키려고 꾀하였다. 그가 회안군(櫰安君) 방간(芳幹)의 집에 가서 장기를 두는데 이날 마침 비가 오므로 포가 말하기를,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겨울 비가 도로를 손상시키면 군사가 시가에서 교전한다.’하였으니 마땅히 조심하시오.”
하였다. 당시에 하늘에 붉은 기운이 나타났는데, 박포가 또 그 집에 가서 고하기를,

“하늘에 요망한 기운이 있으니 마땅히 조심해서 처신하십시오.”
하였다. 방간이 묻기를,

“어떻게 처신할꼬?”
하자, 박포가 말하기를,

“병권을 맡지 말고 출입을 조심하여 의관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신중히 하기를 전조의 모든 왕씨의 예와 같이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였다. 방간이 말하기를,

“다시 그 다음 것을 말하라.”
하니, 박포가 말하기를,

“형만(荊蠻)으로 도망해 가서 태백(泰伯)과 중옹(仲雍)처럼 하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하였다.

“또 그 다음을 말하라.”
하자, 박포가 말하기를,

“정안군은 군사가 강하고 여러 사람이 따라 붙는데, 공의 군사는 약하여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으나, 그를 공격하여 제거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였다. 방간이 믿고 그 말대로 하여 태종을 자기 집에 오라고 청한 다음, 난을 일으키기로 하였었는데, 태종이 가려는데 창졸간에 병이 생겨 가지 못하였다. 환자(宦者) 강인부(姜仁富)와 판교서감사(判校書監事) 이래(李來)는 모두 방간의 인척이었다. 방간이 그 두 사람을 보고 자신의 뜻을 말하니, 이래가 놀라며 말하기를,

“공이 소인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동기간(同氣間)을 해치고자 하니, 차마 그 말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더구나 정안군은 왕실에 큰 공로가 있습니다. 개국(開國)하고 정사(定社)한 것이 누구의 공입니까?”
하자, 방간이 성을 내어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인부(仁富)는 꿇어 앉아 손을 당기며,

“공은 부디 하지 마십시오.”
하였으며, 이래가 말하기를,

“그와 같이 하면 공이 대역(大逆)이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래가 나오는 즉시 태종에게 고하기를,

“회안군이 미쳐 날뜀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방비하소서.”
하였다. 방간이 군사를 일으키자, 의안군 화(義安君 和)와 완산군 천우(完山君天祐)가 태종의 집에 가서 침실(寢室)로 곧바로 들어가 변란을 고하고 응전하기를 청하니, 태종이 눈물을 흘리며 굳이 거절하고 나가지 아니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무슨 낯으로 외인(外人)을 보겠는가.”
하였다. 천우가 울면서 굳이 청하여도 따르지 아니하고, 즉시 방간에게 사람을 보내어 대의(大義)로써 타이르며 혐의를 풀고 서로 만나자고 청하였으나, 방간이

“나의 뜻이 이미 정해졌는데, 어찌 다시 돌이키랴.”
하였다. 화(和)가 태종에게 아뢰기를,

“방간이 이미 극도로 흉하고 험악하니 어찌 작은 예절을 지키려고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돌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화가 태종을 힘껏 끌어 외청(外廳)으로 나와 천우는 태종을 안고 화는 갑옷을 입혀서 억지로 말에 태웠다. 태종이 공정왕에게 아뢰기를,

“마땅히 대궐문을 굳게 지키게 하여 비상사태를 방비하소서.”
하였다, 이때에 공신들 중에서 다만 박포와 화산군(花山君) 장사길(張思吉)만이 방간을 따랐고, 그 나머지는 모두 태종을 따랐다. 승선 이숙번은 선봉이 되어 힘껏 싸웠다. 방간의 아들 맹종(孟從)이 평소 활을 잘 쐈는데, 이날은 병으로 활을 쏘지 못하였다. 방간의 군사가 패하자 태종은 방간이 피살될까 염려하여 친히 스스로 계속해서 외치기를,

“우리 형에게 범하지 말라.”
하고 또 사람을 시켜 전갈하여 타일렀다. 태종은 길가에다 말을 멈추고 소리내어 통곡하였다. 방간이 말을 달려 바로 성균관 뒷 동리에 이르러 활과 화살을 버리고 누우니 추격하는 군사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방간이 말하기를,

“나를 유혹한 것은 박포다.”
하였다. 당시 태조는 상왕이 되어 공정왕과 더불어 모두 송도에 있다가 방간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그 소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짓을 하였을까. 삼한(三韓)에 세족 대가가 많은데 내가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하였다. 박포는 처형을 하였고, 방간은 토산현(兎山縣)으로 귀양갔다. 뒤에 태종이 즉위하자 여러 신하들이 방간을 죽이자고 굳이 청하였으나 끝내 따라주지 아니하였고, 또 속적(屬籍)을 끊지 아니하였다.
사오리 15-09-10 00:03
 
기생도 늘그막에 남편을 만나면, 이전의 화류계 생활은 장애가 되지 않
는다.
정숙한 부인도 만년에 정절을 지키지 못하면, 평생 애써 지켜왔던 절개
가 물거품이 된다. 엣말에 "사람을 보려면 그 인생의 후반부를 보라"고
한 것은 진실로 명언이다.
겨울 15-09-10 08:56
 
등록된 왕족을 족보에서 빼버리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예컨대 반역에 연루된 왕족은 가차없이 빼버립니다. 또는 중범죄를 저지른 왕족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반역에 연루된 경우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반역자는 더 이상 같은 친족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멜론 15-09-11 00:31
 
조선을 창업한 이후에도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총애했습니다.
그 총애가 지나쳐 자신의 후계자마저도 신덕왕후의 어린 소생 방석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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