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주교 신앙의 한계
정약용이 젊은 시절 천주교의 일부 교리에 심취하였던 것은 사실이
지만 그의 천주교 신앙이 확고하거나 깊이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는 없
다. 그것은 아주 초보적이고 피상적 수준이었으며, 이는 그가 기독교 신
학에 직접 접한 것이 아니라 리치에 의해 유학화儒學化 된 기독교 신학
의 형태로 받아들인 점에서 당연했다. 실제로 정약용이 읽은 천주교 서
적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천주실의] 등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원
론적으로 밝힌 초보적인 책들 수준에 머물었던 것이다. 따라서 천주교
의 가르침에 대한 큰 의혹이나 난관에 접했을 때 그가 계속 신앙을 고
수하기 보다는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상제’ 개념을 두고 보아도, 그것이 인격적이라는 점
과 전능한 절대적 존재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약용의 ‘상제’는 기독교
의 신인 ‘천주’와는 크게 달랐다. 물론 정약용이 천주교 서적을 통해
정통 주자 성리학과는 다른 관념들에 접하고 그것들에 영향을 받아 주
희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천’· ‘ 상제’ 개념과 기
독교의 ‘신’ 개념은 분명히 다른 점이 많았던 것이다. 예컨대 정약용
의 상제는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이 아니었다. 또한 그의 상제는
‘계시’ 하거나 명령하는 신도 아니었으며, 예수로 태어나거나, ‘강림’해서
심판을 하지도 않았다 . 따라서 정약용에게 상제는 기독교의 신처럼 신
앙—사랑과 기도·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경외의 대상이었으며,
그는 상제에게 기도할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주장했다. 당연히 그에게 상제에 대한 신앙보다는 개인적 수양과
반성이 중요했고 따라서 그의 신앙은 내세지향적이기 보다는 현세 위주
도덕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유권종이 지적하듯이 정약용은 예禮의
근거를 상제가 아니라 “공자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서 찾고 있었다.
정약용은 그의 상제 개념이 기독교의 신(천주)과 달랐을 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 중 다른 여러 가지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그는 인
간 사후의 천당, 지옥에 관한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사생지설死生之說’이 원래 불교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고
만든 것 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양광선楊光先(1597~1669) 같은 극단적 기
독교 반대자들이 천당지옥설을 비판할 때 내놓았던 주장을 제시하기
도 했다. 영혼의 사후 불멸성에 대해서도 그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
실 그가 영혼의 불멸성을 받아들였다면 주자 성리학에서의 ‘혼백魂魄’
관념이나 ‘귀신’ 관념을 통해 얼마든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었을 것임에
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그렇게 하려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사
람이 죽은 뒤 혼과 육신이 분리된다고 보면서도 그렇게 분리된 혼이 소
멸하는지 영속하는지에 대해서 는 언급하지 않았다. 영혼이 불멸하는지
여부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신이라고 하여 천주교가 명백히 금지한 상례喪禮·제례祭禮에 관
해 정약용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논의했다는 사실도 그
의 천주교 신앙이 깊거나, 근본적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그는 상례·
제례에 대해 [상례사전喪禮四箋]· [상례외편喪禮外篇]· [상의절요喪儀節
要]· [제례고정祭禮考定] 등 네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이 네 권의 분량
을 합치면 [여유당전서] 전체의 10가 넘는다. [경세유표經世遺表] 에
서 그가 제례를 열 번째로 한 [주례周禮]를 비판하고 제례를 첫 번째
로 올린 데에서도 그가 제례를 중요시함을 볼 수 있다. ‘상제上帝’ 에
관한 그의 논의도 그 많은 부분이 제사와 관련된 맥락에서 이루어졌
다. 또한 그는 1792년 부친이 죽자 유가의 의례에 따라 사직하고 상喪
을 지냈다. 실제로 그는 신주神主를 세우고 절하고 음식을 차리는 일
등 천주교가 금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계속해서 지냈으며, 죽기 전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겨 자신에 대해서도
[상의절요]에 따라 제사를 지내도록 하면서 제사 절차를 자세히 적어
주었다. 이와 관련해서 그의 후손에게서 전혀 기독교의 영향을 볼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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