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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12 17:54
152편「중국」 덩샤오핑14 - 탐욕스러운 4인방을 분쇄시키고 삶을 도모한 화국봉
 글쓴이 : 전설따라소설쟁이
 

152중국덩샤오핑14 - 탐욕스러운 4인방을 분쇄시키고 삶을 도모한 화국봉

 

권력은 잔인한 것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당대의 실세, 강청 

모택동의 후광을 받고 수상대리까지 오른 화국봉은 이제 정치권력의 밑천이었던 4인방에 관하여 고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모택동이 말하고 지시한 그 어떤 단 한마디의 교시는 무조건 옳다. 그의 말은 진리이고 전 인민은 무조건 그 교시를 받들어야한다라는 양개범시兩個凡是를 내세운 화국봉은 서서히 권력의 수장으로 눈치를 보는 입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인민들의 개화된 눈이 현실적인 정책을 펼치는 등소평 쪽으로 기울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등소평은 두 번째 천안문 사태에서 벌어진 인민 살상에 대한 책임을 홀로 뒤집어쓰고 (물론 4인방이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실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택동이 사망한 직후 화국봉이 전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등소평에게 결과적으로 천우신조의 기회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등소평이 실각과 동시에 복권의 길을 함께 열어 놓게 만든 숨겨진 비밀 카드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

 

그 비밀 카드는 등소평 스스로가 만든 긍정의 힘인민의 결속된 힘이었다. 등소평은 수많은 경제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 인민들이 모택동을 지지하는 것을 본 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성찰로 이어졌고, 그 긍정적 성찰은 모택동을 비판하기보다는 인민을 위해 현대화된 자본주의 개념을 이식 시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등소평의 긍정적인 사상이 결국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위대한 힘이 되었다. 등소평 스스로가 억울하게 당한 변명을 하지 않은 것이 썩은 정치권력을 바로 본 인민들의 눈에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등소평에게 더 가까이 다가 설 수 있는 길잡이가 된 것이다.

 

비생산적인 정책을 가지고 인민을 살찌운다는 거짓말이 비밀의 카드인 것처럼 선전했던 과거의 모택동 선동주의자들은 이제 개명된 무서운 민중의 힘 앞에 서게 되었다. 인민들은 그들이 조성한 여론의 힘으로 등소평의 복권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인민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카드로 제물을 원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침으로 인하여 등소평을 복권 시키려는 의중이었다. 이것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제물이 4인방임에는 인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화국봉은 이제 위대한 인민의 힘을 자각하고 모택동 교주 사상인 양개범시의 입장을 철회하고 4인방 체포 작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4인방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파멸

 


현대판 측천무후로 통했던 모택동의 부인 강청,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됐고, 결국 1991년 스스로 자살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4인방이 실수한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었고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모택동이 죽은 후에도 그 후광이 영원히 지속 될 줄 착각했다. 그러나 민심은 이제 4인방으로 인해 좌절되었던 등소평의 ‘4개 현대화 정책에 갈증을 느꼈고 희망을 찾고자 했다. 한번 이반된 민심은 4인방의 힘으로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모택동의 일인 카리스카에 의해 지배되었던 세상과 같은 달콤한 솜사탕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죽은 자의 힘은 현실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착각한 4인방의 위대한 실수였던 것이다. 물론 모택동이 살아있어 그들에게 계속 힘을 실어주었다면, 역사는 4인방의 체제로 권력이 승계 되었을 터이고, 등소평은 아침의 흰 꽃을 선물 받으면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마지막 가는 저승길에 발을 내 디딜 때 하늘은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그 어떤 방식으로든 예견케 한다. 모택동이 생명의 호흡을 하고 있을 때 까지만 해도 4인방에게는 권력의 에너지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에너지는 4인방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는 죽기 불과 몇 개월 전에 좌도 우도 아닌 화국봉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면서 세상을 떠났다. (모택동은 죽기 전에 조용하고 넌지시 4인방의 견제와 분쇄지시를 시기를 봐 가면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도 최근에 제기된다)  

 

이러한 모택동의 중도적 선택은 결국 중국의 미래에 대한 대안 책으로 등소평을 염두에 둔 것이다. 화국봉을 선택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죽고 난 이후 4인방의 예봉을 피해 나갈 수 있는 인물이 화국봉 밖에는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등소평과도 적대적인 권력 투쟁을 화국봉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속 깊은 인사정책이었다. 사실 모택동의 입장에서는 등소평이 그간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실각을 당하면서 까지 모택동의 사상을 전면에 나서 비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의 보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등소평이 공개적으로 모택동의 사상을 전 인민들 앞에서 비난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모택동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은 이후를 지켜 줄 사상적 동반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중국 전체가 불안한 정국 상황에 처 할 때, 4인방과 등소평의 문제를 중도적 입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선택한 중도적 대리인으로 화국봉이 결국 선택되었다. 권력을 승계한 몇 개월 동안 정국은 모택동의 생각대로 정확하게 흘러갔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택동에게 4인방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정권을 잡기 위해 중국 내부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갔다.

 

그 탐욕스러운 결과가 천안문 사태를 억지로 만들어 일만 명 이상을 살해한 것이다. 그러나 비단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4인방은 제단에 피 묻은 제물을 만들기 위해서 정신이 흐려진 모택동에게 정국상황을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 많은 거짓 진술을 자행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등소평이 모택동 사상을 짓 밝고 있다는 허수아비이론이었다.

 

모택동이 죽음을 앞두고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선택한 화국봉이 손에 권력을 쥐어주고도 스스로 움켜 질 수 없었던 이유는 실체적인 실권이 3조각으로 나뉘어 졌기 때문이다. 화국봉 자신은 사회주의 교조인 모택동의 후계자로 선택되었다는 점을 빼고는 특별히 권력과정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부족했다. 사실상의 권력은 4인방이 주도적으로 쥐고 있었다. 그러나 등소평에게는 인민의 위대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등소평과 뜻을 같이하면서 조용히 웅크리고 정국을 주시하고 있으면서 현대화 추진에 보조를 맞추려는 많은 군소 지도자가 따르고 있었다. 이것이 초기 등소평을 비난했던 화국봉이 스스로 4인방을 처단케 하는 동기로 작용한 것이다.

 

화국봉의 입장에서는 그 스스로가 4인방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그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을 집권하면서 알아차린 것이다. 화국봉은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 군대의 힘을 빌러 4인방 체포 작전에 나서 법정에 세웠지만 등소평의 입장에서는 실각된 백의종군인 입장에서 화국봉에게 탄원을 해서라도 복권을 해야만 했다. 국가와 인민을 위해서는 국가 조직의 직위가 등소평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그 권력에 서서 인민을 위한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비전과 현대화 정책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화국봉(좌) 등소평(우)이 1986년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체회의에서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진 

등소평은 결국 복권 되었고, 그의 신념대로 이제 중국을 개혁개방시키기 위해 일관된 조정정책을 펼쳐 나간다. 물론 정치권력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권력투쟁을 단계적으로 설정한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 화국봉을 중심으로 하는 범시파凡是派와 진운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와의 노선 투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



아사달 15-09-12 18:36
 
비생산적인 정책을 가지고 인민을 살찌운다는 거짓말이 비밀의 카드인 것처럼 선전했던 과거의 모택동 선동주의자들은
이제 <개명된 무서운 민중의 힘> 앞에 서게 되었다.
인민들은 그들이 조성한 여론의 힘으로 등소평의 복권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개명된 무서운 민중의 힘, 종정님께서는 <개명된 무서운 신도들의 힘>을 속히 느끼셔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9-12 18:41
 
3각 균형체제에서 4인방 세력을 군 수뇌부의 양해를 얻어 체포한 후 화국봉은 곧 바로 당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된다. 이제 화국봉은 정치적 견제를 해가면서 초기 등소평을 비판
하던 것에서 벗어나 대체적으로 등소평의 노선을 따라가게 된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9-12 18:42
 
1977년 7월 14일에는 등소평을 정식으로 복권 시켜 백의종군으로 있었던 그에게
당부주석, 당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및 군총참모장을 겸하게 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9-12 18:43
 
등소평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이 빠르게 회복됨과 동시에 현대화에 가속을 붙여서
1978년 2월 제 5기 전국인민대효대회 제2차 회의에서 경제발전 10개년 계획을 채택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비로소 농업, 공업, 군사, 과학기술 등 4개 현대화정책 조선을 확인케 된다.
멜론 15-09-12 19:45
 
민심은 이제 4인방으로 인해 좌절되었던 등소평의 ‘4개 현대화 정책’에 갈증을 느꼈고 희망을 찾고자 했다.
옥수 15-09-12 20:32
 
모택동이 사망한 직후 화국봉이 전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등소평에게 결과적으로
천우신조의 기회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등소평이 실각과 동시에
복권의 길을 함께 열어 놓게 만든 숨겨진 비밀 카드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
현포 15-09-12 21:52
 
"사실 모택동의 입장에서는 등소평이 그간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실각을 당하면서 까지 모택동의 사상을 전면에 나서 비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의 보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등소평이 공개적으로 모택동의 사상을 전 인민들 앞에서 비난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등소평의 마오에 대해 어찌 고뇌가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등소평은 필연적으로  마오를 거쳐가야만 하는 그 길을 수십년 백년의 짧은 길을 택하지않고 비록 우회하고 멀리 돌아가 천년이 걸리는 길일지라도 무엇이 옳은것이고 무엇이 국가대계를 위한것인지를 놓치지 않은 영민하고 영특한 지도자라고 생각됩니다.사회주의체제속에서 최고권력자인 마오의 견제와 그에 기생하는 부류들의 모함속에서도 그 시련을 묵묵히 감내하며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과정과 더불어 정치적상대를 대하는 등소평의 유연한 인간적능력도 눈여겨볼만합니다권력의 맛과 권력의 멋만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국가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과제나
대계를 추진할 의욕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알아줄 시기를 기다리며 모진 역경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때를 기다린 등소평의 위대함은 최고권력자로서의 위대함이 아닌 중국과 전 중국인민의 부흥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그 결실의 과정이 후대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위대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일전 중국 전승절의 열병식을 잠깐 보았는데 인상깊었던 장면은 시진핑주석이 퍼레이드카? 오픈카?를 타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젖히고) 사열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에서 지금 중국이 전세계에 보여주려는 자신들의 모습과 앞으로의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지를 보여주는 뜻깊은 장면이었던것같습니다.ㅏ
천안문 망루에 올라서 있던 후진타오, 시진핑, 장쩌민, 전현직 중국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도도하게 흘러가는 국제정세의 판도와 천지공사의 의미를 나름대로 유추해보는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섣불리 예단할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저 겸허하게 좀더 저보다 능력있는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차곡차곡 소화시키는 일이 더 중요할뿐입니다.
     
선유도 15-09-12 22:33
 
대계를 추진할 의욕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알아줄 시기를 기다리며 모진 역경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때를 기다린 등소평의 위대함은 최고권력자로서의 위대함이 아닌 중국과 전 중국인민의 부흥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그 결실의 과정이 후대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위대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포 15-09-12 22:20
 
등소평의 전기를 읽어본적은 없습니다.
전설따라소설쟁이님의 이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내면 아주 재미있고
쉽게 쏙쏙 볼셰비키혁명의 태동과 그것이 어떤 인간에게는 어떻게 변질되어갔고
어떤 사람의 손에서는 다수의 번영과 결실로 이루어졌는지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의지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그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반면교사로 삼는 좋은 책이 될것같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 극과 극을 달리는 인간심리구조의 복잡성과 편향성에 대한 심층적인 사고와 역사적안목에서 그 오류를 잡아낼수있는 많은 사유를 하게 하는 전설따라소설쟁이님의 글을 애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지대한 과오(무고한 인명살상, 박애와 인도주의가 결여된 폭압,폭정,기타 권력의 감투에 맛과 멋이 들어 타성에 젖은 무늬만 정치가인척 삶을 산 사람들)를 남긴 종자는 상제님께서 안록산을 불러 죄를 물으셨듯 개벽이 와도  후천이 와도 앞으로 수천년 수만년후라도 끝까지 쫓아가서 그 죄를 단죄해 결자해지로 갚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유도 15-09-12 22:34
 
제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지대한 과오(무고한 인명살상, 박애와 인도주의가 결여된 폭압,폭정,기타 권력의 감투에 맛과 멋이 들어 타성에 젖은 무늬만 정치가인척 삶을 산 사람들)를 남긴 종자는 상제님께서 안록산을 불러 죄를 물으셨듯 개벽이 와도  후천이 와도 앞으로 수천년 수만년후라도 끝까지 쫓아가서 그 죄를 단죄해 결자해지로 갚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유도 15-09-12 22:20
 
비밀 카드는 등소평 스스로가 만든 ‘긍정의 힘’과 ‘인민의 결속된 힘’ 이었다.
명유리 15-09-12 22:59
 
인민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카드로 제물을 원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침으로 인하여 등소평을 복권 시키려는 의중이었다.
이것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제물이 4인방임에는 인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사오리 15-09-12 23:38
 
한적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곧잘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에서 도피하여 고요함을 구한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 뜻을 두면
오히려 자신에 얽매이게 되고, 마음을 고요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동요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와 남을 하나로
보고 시끄러움과 고요함의 구분을 잊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혁명밀알 15-09-13 10:13
 
비생산적인 정책을 가지고 인민을 살찌운다는 거짓말이 비밀의 카드인 것처럼 선전했던 과거의
 모택동 선동주의자들은 이제 개명된 무서운 민중의 힘 앞에 서게 되었다.
인민들은 그들이 조성한 여론의 힘으로 등소평의 복권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게리 15-09-13 11:38
 
역사는 4인방의 체제로 권력이 승계 되었을 터이고, 등소평은 아침의 흰 꽃을 선물 받으면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각설탕 15-09-13 15:21
 
죽음을 눈앞에 둔 모택동에게 4인방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정권을 잡기 위해 중국 내부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갔다.
해오 15-09-13 16:53
 
화국봉은 이제 위대한 인민의 힘을 자각하고 모택동 교주 사상인 양개범시의 입장을 철회하고
4인방 체포 작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객1 15-09-13 17:50
 
주고 받는 관계가 아름답지 않것습니까 ~
호반도시 15-09-14 07:46
 
모택동의 중도적 선택은 결국 중국의 미래에 대한 대안 책으로 등소평을 염두에 둔 것이다.
겨울 15-09-14 17:06
 
등소평은 수많은 경제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 인민들이 모택동을 지지하는 것을 본 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성찰로 이어졌고, 그 긍정적 성찰은 모택동을 비판하기보다는 인민을 위해 현대화된 자본주의 개념을 이식 시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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