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도(中道)
(2) 사성제와 팔정도
사성제(四聖諦) : 괴로움(苦), 괴로움의 집(集), 괴로움의 멸(滅),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
8고(八苦) :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인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음(五陰) 즉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고통인 오음성고(五陰盛苦)
(1) 연기법(緣起法)
어떤 것이 말미암아서(緣) 일어난다. 즉 생긴다(起)는 의미이다. '이것'이 씨앗이라면, '저것'은 열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因), '저것'을 과(果)라고도 한다. 또는 인을 짓는 의지적 작용을 업(業:karma)이라고 하고, 그래서 생기는 필연적 반응이나 결과를보(報:vipaka)라고 한다. 인과업보(因果業報)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
(1) 오온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독송(讀誦)하는 반야심경의 처음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모든 괴로움을 건넜느니라" 여기서 오온이 모두 공(空)이라고 했는데 오온은 무엇인가? 오온은 모든 존재이다. 따라서 '오온개공'은 '제법개공' 또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이다. 즉 오온이라는 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에 대한 인식, 모든 것에 대한 불교적 해석의 결과 생긴 이해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오온으로 구성되어 졌다고 한다.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오온 즉 다섯가지 측면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섯가지가 무엇인가? 색(色:rupa), 수(受:vedana), 상(想:samjna), 행(行:samskara), 식(識:Vijnana)이다.
① 색(色:rupa) 지(地), 수(氷), 화(火), 풍(風)의 네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을 색이라고 한다.
② 수(受:vedana) 느낌, 감각이다.
③ 상(想:samjna) 생각, 表象이다.
④ 행(行:samskara) 행위, 작용이다. 무명이 드러남인 맹목적인 의지이다.
⑤ 식(識:vijnana) 식별, 분별, 의식이다.
어떤 존재도 이 오온의 화합(和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다른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오온개공(五蘿皆空)의 의미이다.
(2) 십이처설 (十二處說)
십이처설은 오온설과 함께. 불교가 세계를, 일체를, 현실을, 존재를 인식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경전에 의하면 한때 생문(生聞)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을 했다.
"일체(一切)라고 하는 그 일체는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일체는 십이처(十二處)에 포섭되는 것이니, 곧 눈과 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의지와 법이다. 만일 이 십이처를 떠나 다른 일체를 시설코자 한다면 그것은 다만 언설(言說)일 뿐 물어봐야 모르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왜냐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
눈·귀·코·혀·몸·뜻을 여섯가지 감각기관이라 한다. 육처(六處),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색·소리·냄새 ·맛·촉감·법(法)이 여섯가지의 인식대상이다. 모든 존재는 이 열두가지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처(處:ayatana)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이다. 십이처설은 6근이 6경을 인식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6근에 의해서 인식되는 6경 이외의 어떤 존재도 성립할 수 없다. 인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논리이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리서 神이라든가 하는 초월적 존재는 가상(假想)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 십이처설로써 해멸될 수 없다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불교의 입장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십이처설이야말로 불교의 우주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 이외의 어떠한 존재도 허용치 않는 이러한 십이처설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심외무물(心外無物)의 대승사상을 낳게 된다.
삼법인 [三法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1) 일체무상(一切無常)
흔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인생과 자연의 이치를 관찰할 때에 변화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죽는다(死). 세계안의 다른 존재는 생하고(生), 머무르다가(住) 달라지고(異), 없어진다(滅).
(2) 일체고(一切苦)
흔히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도 한다. 변화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이라면 괴로울 것도 없지만, 있다가는 없어지고, 건강하다가는 병들어 죽는 이 현실의 인생이 어찌 괴롭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다. 미운 것과 만나고(怨憎會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愛別離苦),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求不得苦)은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蘿)은 괴로움이다. 이것이 사고 ·팔고(八苦)이다.
오취온고라는 것은 결국 앞의 모든 고통이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다는 결론이다. 오취온고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오음은 오온과 같은 말이다.
(3) 일체무아(一切無我)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도 한다. 우리는 이미 연기설을 설명하는 가운데에서 인연으로 화합된 존재에는 자성(自性)이나 실체(實體)가 없고 따라서 무아(無我)임을 언급했다. 그래서 불교를 무아주의(無我主義:anatmavada)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1) 업설(業說)
업(業 karma)은 원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부터 통용되던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업이란 행동·행위를 의미하고, 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도 의미한다. 이를 세분해서 말하면, 업은 원인, 보(報)는 결과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업과 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의 성질 또한 통일성(同一性)을 띄게 된다. 업이 선(善)이면, 보도 선(善)이고, 업이 악이면 보도 악인 것이다. 이른바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인과율이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잘 살고,나쁜 일을 많이 하면 못산다는 것이 업설의 요지인데, 실제 우리 둘레에는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데도 일생을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극악한 일을 저질렀는데도 잘살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이론이 삼세업보설(三世業報說)이다. 현재에 업인이 있는데 그 과보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와 과보가 있는데 그 법인이 현재에 발견되지 않을 경우의 둘로 갈라진다. 이러한 두가지 경우에 대해서 업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자는 현재 업인의 과보가 현세(現世)의 이후, 즉 내세(來世)에 있다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 업인이 과거 전세(前世)에 지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삼세업설(三世業說)은 필연적으로 육도윤회설을 가져오게 된다. 천(天) ·인(人) ·수라(修羅)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의 여섯가지 갈래를 윤회한다고 한다.
(2) 오계 (五戒)
오계는 재가 신도들이 받아서 지녀야 할 윤리적 덕목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 질서이다.
①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不殺生)
②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不愉盜)
③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④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⑤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1) 육바라밀(六波羅蜜)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로는 paramita이다. '피안(彼岸)에 이르른 상태'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피안에 이르기 위한, 피안에 이르게 하는 여섯가지의 수행방법이 육바라밀이다. 참으로 보살이 되기 위해서 수행해야할 여섯가지 덕목이다.
① 보시바라밀 (布施波羅蜜 :dana-paramita)
②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sila-paramita)
③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ksanti-paramita)
④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virya-paramita)
⑤ 선정바라밀(禪定擴羅蜜:dhyana-paramita)
⑥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Prajna-paramita)
1 닦음과 됨
그러면 수행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수행이라는 단어의 ‘수(修)’자에 주의하여 ‘닦음’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무엇을 닦아야 할까. 경전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전한다. “우리의 마음은 빛나고 찬란한 것이다. 단지 바깥에서 들어온 때에 의해 더러워질 뿐이다(南傳 增支部 <一法部)).” 이 가르침은 우리의 마음을 닦아야 할 대상으로 보게 한다.
이처럼 불교의 수행은 단순한 닦음이 아니다. 그것은 바뀜이요, 됨인 것이다. 범부 속에 성인이 있어 범부를 닦아 내어 성인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범부 속에 성인은 없다. 단지 범부를 성인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아가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전환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알에서 나비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알에는 나비가 없다. 그러나 나비는 그 알에서 나온다. 그리고 알에서 바로 나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그 번데기에서 끝으로 나비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알을 그냥 둔다고 전환의 과정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알에 적절한 온도와 습도라는 여건을 충족시켜 줘야 알이 전환되기 시작할 뿐이다.
이처럼 알 속에는 알만이 있듯이 범부 속에는 범부만이 존재한다. 굳이 성인이 있다고 한다면 성인이 될 성품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성품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일 뿐이다. 따라서 범부 속에 성인은 없다. 금광석 속에 금이 숨어 있는 것처럼 범부 속에 그렇게 성인이 숨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알 속에 나비가 없듯이 범부 속에 성인은 없다. 그럼에도 알이 애벌레로 번데기로 결국 나비로 바뀌게 되듯이 범부도 선한 자로 바른 자로 참된 자로 그리고 결국 깨달은 자로서의 부처님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도와 습기가 알을 애벌레로 바뀌게 하듯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수행도들이 범부를 선한 자로 내지 깨달은 자로 바뀌게 한다.
6근(六根)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6경(六境)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육근 [六根]
육식(六識)을 낳는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근원.
6근(六根)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육경 [六境]
1. 色 : 눈(眼)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객관계의 모든 현상.
2. 聲 : 귀(耳)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3. 香 : 코(鼻)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
4. 味 : 혀(舌)로 맛볼 수 있는 모든 맛
5. 觸 : 몸(身)으로 접촉하는 대상 즉 굳은 것, 더운 것, 축축한 것 등
6. 法 : 뜻(意)으로써 헤아릴 수 있는 모든 것
신구의 삼업 [身口意 三業]
신(身) : 몸으로 짓는 업, 신업(身業)
살생 殺生
투도 偸盜
사음 邪淫
구(口) : 입으로 짓는 업, 구업(口業)
망어 妄語
기어 綺語
양설 兩舌
악구 惡口
의(意) : 마음으로 짓는 업, 의업(意業)
탐애 貪愛
진애 瞋碍
치암 癡暗
사람은 몸과 입과 생각으로 업을 짓는다. 이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즉 신체적인 행위로 인한 업은 신업(身業), 언어로 인한 업은 구업(口業), 마음으로 인한 업은 의업(意業)이라고 한다.
팔정도 [八正道]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팔정도(八正道)는 사성제 가운데 마지막의 도제에서 가르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취해야 할 8가지 바른 자세'를 말한다.
정견 (正見) : 바르게 보는 것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하는 것
정어 (正語) : 바르게 말하는 것
정업 (正業) : 바르게 행동하는 것
정명 (正命) :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
정근, 정정진 (正勤, 正精進) : 바르게 정진하는 것
정념 (正念) : 바르게 기억, 생각하는 것
정정 (正定) : 바르게 삼매(집중)하는 것
마음으로써 선을 행하라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