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월적 지위는 누가 만들었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위와 권한은 매우 익숙한 개념입니다. 특정 지위에는 거기에 합당한 권한과 아울러 의무가 뒤따릅니다. 특히 국가나 사회의 공적 기구에는 각각의 지위와 그에 따르는 권한과 의무가 명문화되어 논란의 소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은 최고의 권력자로서, 그의 지위, 권한을 비롯하여 선출, 임기, 의무 등이 최고의 법인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에 대하여는 헌법을 근거로 논리를 전개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왕의 지위와 권한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선시대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의 지위와 권한에 대하여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조선시대 왕의 지위와 권한은 규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초월적인 신성한 지위와 이에 따르는 신성한 권한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왕은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등 세속적 권력요소들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사실 이 같은 세속권은 신성한 권한에 수반되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왕의 초월적 지위는 유교 지식인들에 의해 이론화되었습니다. 이들은 왕을 우주의 덕을 체현한 신성한 존재로 신비화했습니다. 이론적으로 하늘과 하늘의 덕을 체현한 왕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이의 구현은 왕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천일합일을 성취하여 왕이 된 역사적 인물들로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내지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 - 무왕武王등이 제시되었습니다. 우왕이나 탕왕, 문왕 - 무왕은 각각 하夏나라, 은殷(商)나라, 주周나라를 건국한 시조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늘에 비견되는 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성인 聖人이며 동시에 왕입니다. 성인이며 왕인 존재, 또한 인간이면서 하늘과 합치하는 존재, 이것이 바로 성인천자론聖人天子論과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의 내용입니다.
하늘의 명을 받은 건국시조는 그 후손들과 백성들에 의해 하늘과 동격의 신앙대상이 되어 종묘에 모셔집니다. 이들이 모셔진 종묘는 그 왕조의 최고신성지가 됩니다. 종묘는 하늘의 뜻과 그 하늘의 뜻을 체현한 건국시조가 계시는 신성지역으로서 왕조의 중요대사가 결정되는 장소입니다. 전국시조를 계승하는 후계자들은 종묘의 제사를 주관하는 대제사장의 기능을 독점하여 하늘과 인간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왕이 왕인 이유는 그가 하늘의 덕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존재근거는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 중에서 천명을 받을 인간에게 갖가지 우주현상을 통하여 그 뜻을 암시합니다.
조선의 건국을 예로 들어서 천명의 암시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하늘에 비견되는 덕을 갖춘 성인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천명이 내렸으며, 그 징조는 꿈이나 기타 신비한 자연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조선의 건국이 천명에 의한 것임을 노래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는 이런 사실들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해동에 육룡이 날으시어 하시는 일마다 천복이시니. 옛 성인聖人의 사
적과 부절을 맞춘 듯 꼭 같으시니(중략)
붉은 새가 글을 물어 문왕文王의 침실 지겟문에 앚으니, 이것은 성스러
운 아들이 혁명을 하실 것에 대해 천제가 내리는 복의 징조이셨다. 뱀이
까치를 물어서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것은 태조가 장차 일어나려 함에
아름다운 징조가 먼저 나타나신 것이다.(하락)"
왕은 하늘의 명에 의해 결정되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규정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경국대전]에 영의정 이하 노비에 이르는 조선시대 모든 인간들이 규정되어 있지만, 왕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경국대전]은 이전吏典. 호전戶典. 예전禮典. 병전兵典. 형전刑典. 공전工典 등 6가지의 전典으로 구성되어 있는 관계로 육전체제六典體制라 합니다. 이 같은 육전체제의 원형을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주례周禮]라고 하는 중국의 책에서 찾았습니다.
[주례]의 저자와 저술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이 책의 저자를 공자孔子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주공周公으로 믿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대성인 大聖人
주공이 저술한 [주례]에 이상적인 국가상이 함축된 것으로 보고, 이 책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알려진 정약용丁若鏞의 국가제도개혁론인 [경세유표經世遺表]도 [주례]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주례]의 육관체제는 우주를 구성하는 하늘과 땅(天地) 그리고 우주의 운행질서인 사계절(春夏秋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계절로 상징되는 우주와 그 자연질서를 인간이 국가조직 속으로 끌어 들인 것입니다. 즉, 우주의 자연질서와 인간의 국가질서를 일치시키려는 의도적 결과였습니다.
과거 조선이나 중국의 유교 지식인들은 우주의 자연질서를 보장해주는 하늘(天)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조화롭게 존재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현상의 배후에는 하늘의 오묘한 조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오묘한 조화가 바로 도道로서, 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의 갖가지 현상을 통하여 스스로 드러나며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우주의 자연질서를 보장하는 것이 하늘의 도라면, 인간의 국가질서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왕입니다. 하늘의 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왕은 글로써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가 우주의 배후에서 자연질서를 유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도 인간만사의 배후에서 국가질서를 지탱합니다.
[주례]나 [경국대전]의 규정들은 인간사회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들의 당위론적 집합물들입니다. 당위에 합치되는 인간사회의 현상은 적극적으로 장려됩니다. 반대로 당위에 배치된다면 이는 가차없이 제지됩니다.
인간 만사의 당위론적 현상을 규정한 이들 법전에 왕의 지위나 권한이 명문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은 규정의 대상이 아니라 규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주의 자연질서를 보장하는 하늘의 도처럼 인간의 국가질서를 보장하는 왕의 지위는 초월적 존재 또는 신성한 지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은 인간의 지위를 초월하여 하늘의 도에 합치하고, 이런 초월적 지위를 근거로 종교적 권위 및 세속적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 같은 왕의 지위를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보위寶位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배로운 지위,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지위로는 오직 왕의 지위만이 보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교 지식인들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