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에 관해서 문학계가 들썩이고 있다. 책을 출판한 창비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독자'들에게 토론과 공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글과 함께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근본적인 표절 시비에 관해, 문학의 대 선배인 이문열
씨를 찾아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신 작가의 표절파문에 관해서 고견을 들어봤다.
소설가 이문열(67)씨가 최근 암수술을 받았다. 지난 6월 왼쪽 신장에서 암세포를 발견해 5분의 2 정도를 잘라냈다. 초기여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지만 정신적 충격이 있을 듯했다. 경기도 이천 자택에서 최근 만난 그는 수술 이전보다 야위었으나 혈색은 괜찮아 보였다. 담담한 어조로 병세, 집필 계획 등을 밝혔다. 우리 문학계의 현안인 신경숙씨의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그 역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일부라도 베낀 건 잘못이지만 절필 요구는 과하다고 했다.
- 심려가 크겠다.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 않았다. 그래서 항암치료도 안 받는다. 이달 말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을 다시 한다. 그때 가 봐야 전이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생각이 들었나.
“복부를 5㎝쯤 절개하고 네 개의 로봇팔을 집어넣어 암세포를 잘라냈다(이 대목에서 이씨는 윗옷을 걷어올려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한 열흘간 정신없더라.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이 들었다는 생각, 따라서 시간이 무한히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 이제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나 우선순위가 무척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받은 만큼 뭘 돌려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빠지고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 좋아하는 술을 마시지 못하겠다.
“한 100일 못 마셨다. 이달 말에 괜찮다고 하면 조금씩 마셔야지, 그것까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나.”
- 신경숙 표절 사태가 문단 안팎을 뒤흔들었다.
“문단의 표절 논의를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논의 방향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 문학적인 토론보다 많은 경우 표절 문제 제기가 흉기처럼 활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뭐가 문제인가.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로 60∼100쪽 정도 된다. 신경숙이 표절했다고 하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단편 ‘우국’은 좀 길다. 100쪽은 될 거다. 그중 여섯 줄을 베끼고, 소재와 구성에 유사성이 있다고 신경숙의 단편 ‘전설’ 전체가 표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부분 표절 혹은 인가(認可) 없는 인용 정도가 어떨지.”
- 그럼 어떻게 해야 표절인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문장은 성경에 나온다. 하지만 대개 그걸 밝히지 않고 사용한다. 윤동주 ‘서시(序詩)’의 한 구절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맹자의 ‘군자삼락’ 중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과 같은 뜻이다.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쓰였지만 윤동주가 표절했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인용 표시 없는 인용 사례는 문학에 얼마든지 있다. 표절은 분량도 문제다. 소 한 마리, 쥐 한 마리를 넣고 끓인 국을 쥐국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의도적으로 주제와 소재를 베끼고 단어 몇 개만 다른 경우라야 표절인 것 아닐까.”
- 그런 뻔뻔한 표절 사례가 있나.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현대소설에서 표절의 정확한 개념 정립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거다. 가령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비틀어 줄거리를 바꿨다고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신경숙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표절의 명확한 개념을 정립한 후 논의하자는 거다.”
- 부분 표절에도 사람들이 분노했다.
“표절을 용서하자는 게 아니다. 마녀사냥은 하지 말자는 거다. 작품의 주제가 같다고 표절이라는 식으로 엄격하게 하면 창조성의 죽음을 부를 뿐이다. 표절에 대한 정의가 어렵다는 합의 아래 문단 차원의 표절 기준을 만들고 상응하는 처벌 규정도 만들면 어떨까. 죄와 벌은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 97%가 다른데 3%가 같다고 작품 전체를 폐기하거나 작가에게 절필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표절의 낙인은 작가의 영혼에 대한 사형선고다.”
- 몇몇 문학 출판사의 권력화, 카르텔(담합) 문제도 불거졌다.
“ 한 신문사의 문학상 심사를 하며 답답한 느낌이 들곤 했다. 두세 개 부류에서 벗어나는 후보작 이 없을 정도로 요즘 한국 소설은 획일적이다. 출판사들의 카르텔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설익은 생각이다. 그 정도만 얘기하고 싶다.”
- 작품 집필은.
“지난해 여름에 공언한 대로 대하소설 『변경』의 후속작을 준비해 왔다. 1980년대를 다루는 작품이다. 사회적·역사적 기억의 신빙성을 건드려 볼 생각이다. 대다수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내용 중 이상한 대목도 있다는 점을 보이려 한다.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 기록 1만 쪽을 구해 읽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가령 80년 신군부의 출현을 ‘제국의 노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생각이다. 묘하게도 79년에 두 세계 제국이던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비틀거렸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는데 이게 불씨가 돼 훗날 제국이 와해됐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전 이후 도덕주의를 내세운 카터 행정부가 탄생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못마땅해 했다. 79년 방한 때 정상회담에서 언성을 높이며 한국의 인권 탄압을 비판했다고 한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돌발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고 보지 않는다. 일을 벌여도 미국이 가만히 있을 거라는 교감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이씨는 “좀 전에 본 영화 얘기를 하듯 새 소설 줄거리를 생생히 얘기할 수 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원한다면 4500쪽 분량의 소설 줄거리를 이틀에 걸쳐 들려줄 수 있다”고 했다.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달 민음사에서 나오는 네 권짜리 중단편 전집을 교정 보다가 ‘이만큼 썼으면 게을렀다는 소리는 안 듣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음은 신경숙 표절 논란 이후 주요 사건 일지.
▲ 2015.6.16 = 소설가 이응준씨,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기고문 통해 소설가 신경숙씨가 단편 '전설'에서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1925~1970)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
▲ 6.17 = 신경숙, 출판사 창비 통해 "(해당 작가는)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라며 표절 부인. 창비 문학출판부는 의혹 제기된 부분이 "일상적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며 가세.
▲ 6.18 = 창비, "(표절 의혹이 제기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강일우 대표이사 이름 사과문 발표.
▲ 6.18 =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 신경숙 소설가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고발.
▲ 6.23 = 신경숙,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발언.
▲ 6.23 = 창비, '전설' 실린 단행본 '감자 먹는 사람들' 출고 정지.
▲ 6.23 = 한국작가회의·문화연대 공동 주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 진행. 창비·문학동네 불참.
▲ 6.25 = 출판사 문학동네, '문학 권력' 비판한 권성우·김명인·오길영·이명원·조영일 평론가와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참여하는 지상(紙上) 좌담 공개 제안. 초대 평론가 거부로 무산.
▲ 7.15 = 문화연대·인문학협동조합,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주제 2차 토론회. 창비·문학동네 불참.
▲ 8.24 = 창비 계간 문예지 '창작과 비평' 가을호 출간. 백영서 주간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고 발언.
▲ 8.27 =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 페이스북에 "문제된 대목이 표절 혐의를 받을 만한 유사성을 지닌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이것이 의도적인 베껴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발언.
▲ 8.31 = 백낙청, "(문제의 문장이) 일부러 베껴쓰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문학관, 창작관에는 원론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발언.
▲ 9.1 = 문학동네 관계자, 10월 주주총회에서 강태형 대표와 1기 편집위원 퇴진할 것이라고 밝힘.
▲ 9.1 = 문학동네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 가을호 출간. 권희철 편집위원은 서문에서 "'전설'은 '우국'의 표절"이라며 "한 번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어떤 평론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사과.
신경숙 작가의 표절이 일어난 가운데 한국 문학은 소위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 지성이라는 3대 출판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고 충고 하고 있다.
이들이 표절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에도 절대침묵만을 지킨 것은 바로 한국 문학계가
비평다운 비평이 실종된 데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으로는 3대 문예지의 권력화에 있다는 것으로 집중된다. 이른바 이들끼리 쓴 소리는 빼 놓고 좋은 말만 늘어 놓는 이른 바 '주례사 비평'이라든가, 자기 매체에 싣는 작품 띄우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결국은 문학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자책을 받고 있다.
더불어 짬짜미라 불리는 것으로 문예지 끼리
현재 한국문학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비평다운 비평의 실종과 3대 문예지의 권력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나쁜 작품인데도 좋은 작품인 것처럼 포장한다면 그것은 비평의 이름으로 독자를 속이는 것이다. 쓴소리는 빼놓고 좋은 말만 늘어놓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도 비평이라 부를 수 없다. 신경숙 사건 때 독자들은 나쁜 작품을 좋은 작품인 것으로 잘못 알았다면서 배신감을 토로했다. 3대 문예지가 이런 식으로 자기 매체에 싣는 작품 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 결국 독자로 하여금 문학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문예지끼리의 짬짜미로 인한 폐해도 심각했다. 작가들은 3대 문예지를 돌아가면서 작품을 발표했고 문예지들은 같은 작가군을 놓고 서로 봐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세 문예지가 특별성과 독자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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