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아나키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세속적인 권력과 대립 관계에 있는 종교야말로 예로부터 국가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종교가 국
가에 투항해서 국가 종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국가에 저
항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는 종교인도 많다. 흑인들의 민권
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이 그러했고, 인도 민중을 인도하
는 영혼이 되었던 간디도 그러했다.
또 다른 종교적 아나키스트로 러이사의 대작가 톨스토이LN.
Tolstoy를 들 수 있다. 국가를 장악한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을 일
으키는 원흉이라고 보았던 톨스토이는 기독교인이 전쟁을 거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각에서 볼 때 진정한 기독교인이
라면 인간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군대에 입대하면 안 된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을 기치로 내걸고 민족적 증오심을 불어넣는
대신에,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군인과 외교관, 정치인에 대한 혐
오와 경멸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정치 체제에 따라 사람
들을 나누고 법과 국경선을 나누는 짓을 미개함의 표시로 여기
도록 가르쳐야 한다"라며 어린 아이들에게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톨스토이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
히려 톨스토이는 불복종이야말로 능동적인 저항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강압적인 악에 굴복하라든지 한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도 대어주라고 말하지 않고, 명령받은 것을 실행하지 말고
형제를 죽이기 위해 자신에게 건네지는 총을 잡지 말라고 말했다.
아나키스트들도 때로는 고귀한 동기에서 비롯된 폭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폭력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제한되었다.
전쟁터에 떨어지는 폭탄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살해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의 폭력은 기업주나 정치인 같은 구체적인 인물을 향했
다. 이런 폭력은 추상적인 대의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쳐온 폭력에 물
러서지 말고 맞서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졌다.
아나키즘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을 들거나 목숨을 내놓으라는 국가의 부당
한 요구에 맞서, 도망을 치거나 둘 중 어느 행동도 하고 싶지 않
다고 말하는 것이 전쟁을 막는 방법이다. 또 전쟁을 반대하는 시
위를 조직하고 전쟁을 외치는 국가에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
요, 전쟁에 협력하지 않고 전쟁에서 도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희
생을 치르더라도 외부의 부당하고 강제적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내가 생활하는 조건에서 이루
어지는 구체적인 변화, 그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