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양 과학기술 지식
정약용은 구체적인 서양 역법 수학 지식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
다. 위에서 본 것처럼 정약전이 1780년 대에 이벽과의 교유를 통해 ‘역
수曆數의 학’을 전수받고 [기하원본]을 읽었는데 그렇게 얻은 지식을 정
약용이 전해 받았을 것이며, 이승훈이 중국에서 [기하원본]· [수리정
온] 등의 책을 가져오자 정약용은 이벽·정약전·이가환 등과 함께 이를
읽고 공부하기도 했다. 특히 정약용은 천문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
던 이가환과 가까웠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는데 거기에는 서양 천
문학 수학의 지식도 포함 되었을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정약용은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 [오례통고五禮通考] 등을 접하게 되었고 그
책들에서 일월식·치윤법置閏法·세실歲實·세차歲差 등 역법의 구체적 문
제들과 계산에 대한 서양의 천문학 지식을 받아들였다.
정약용이 생명체들 간에 일종의 위계位階—사람이 가장 위에, 다음
은 동물, 그리고 식물이 가장 아래에 오는—가 있다고 생각한 것도 서
학의 영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그는 식물은 생명[生]은
있으나 지각[知[은 없고 동물은 생명과 지각은 있으나 ‘영靈’이 없고 인
간은 지각과 영이 모두 있다고 구분했다. 물론 이와 비슷하게 인간,
동물 , 식물, 무생물의 네 등급을 나누는 생각이 [순자荀子]에 나오고 정
약용이 이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정약용이 쓰고 있는 내용이 [천주실
의]의 구절들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볼 때 리치의 ‘삼혼설三魂說’의 영향
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약용의 오행五行설 비판에서도 서양의 4원소설의 영향을 볼 수 있
다. 물론 그가 4원소설을 완전히 받아 들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
나 그는 태극太極양의兩儀4상四象8괘八卦로 이어지는 서열에서 4상
을 ‘천지수화天地水火’로 보고 “천天·지地·수水·화火란 것들은( 그것들만
이) 스스로 상象을 형성하며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는 것들이다”라고 이
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서양의 4원소와 비슷한 생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용훈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약용이 5행을 물질로
본 것도 4원소설의 영향이 었을 수 있다. 금장태는 각각 ‘천’· ‘지’· ‘ 수’·
‘화’에 해당하는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정괘四正卦’와 이 4정괘로부터 파
생된 ‘손진간태巽震艮兌’의 ‘4편괘四偏卦’로부터 만물이 생성된다는 정약
용의 생각에서도 4원소와의 연결을 찾는다.
당시에 꽤 널리 알려져 있었던 몇 가지 광학적 현상들에 대한 정약용
의 논의도 서양 과학 지식의 영향을 보여 준다. 그는 아마 이벽 같은 사
람으로부터 듣거나 방이지 方以智(1611~1671) 등의 저술을 읽어, 이 현상들
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그는 사람의 눈동자
도 렌즈와 같아서 그것이 볼록하면 시심視心이 가까운데 맺혀 근시近
視가 되고 평평하면 시심이 먼 데 맺혀 원시遠視가 되며 소년은 혈기
血氣가 날카로워 눈동자가 볼록해지므로 근시가 되고 노인은 혈기가 느
슨해서 눈동자가 평평해지므로 원시가 된다고 설명했다. 지평선 아래
있는 달이 보이는 현상을 진짜 달이 아니라 ‘적기積氣’에 의해 비추어져
떠오른 것이라는 그의 설명은 서양의 ‘청몽기靑蒙氣’ 설을 받아들인 것
이다. 또한 그는 맑은 날 밀폐된 방을 칠흑같이 어둡게 하고 문에 구
멍을 뚫어 볼록 렌즈를 대고 몇 자 떨어진 곳에 흰 종이를 놓으면 바깥
풍경이 종이에 거꾸로 비친다는 오늘날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고 알려진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