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언각비雅言覺非]의 이본異本과 유전流傳
노경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조교수
[아언각비]에 대하여
본고는 다산의 저술 [아언각비]의 필사본과 간행본 이본들을 분석하
여 다산의 [아언각비] 편찬 과정과 유전流轉 양상을 재구하고, 다산 저
술의 전승에 담긴 문화사적 의미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주지하
다시피 다산의 저술은 1938년 신조선사에서 [여유당전서]로 완간되기까
지 대부분의 저술이 ‘필사본’의 형태로 전승되고, 일부의 저술만이 목
판본 또는 근대의 연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그중에서 본고에서 다룰
[아언각비]는 다산의 저술 중에서도 [흠흠신서]와 [목민심서] 다음으
로 가장 많은 수의 필사본 이본이 전승되고 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
는 가장 빈번하게 신식활자본으로 간행된 서적이다.
현재까지 전하는 [아언각비]의 필사본 이본은 25종이다. 국내외에 현
전하는 다산 저술의 필사본은 모두 310여 종에 이르고 있다. 그중에서
다수의 필사본 이본이 전하는 저술을 꼽아 보면, [흠흠신서] 68종, [목
민심서] 61종, [아언각비] 25종, [경세유표] 19종, [민보의] 18종, [마과
회통] 14종, [아방강역고] 13종, [아학편] 10종 등이 있다. [흠흠신서]와
[목민심서]가 전국의 지방 관아에서 필사되어 널리 전승된 사정을 고려
하면, [아언각비]가 다른 자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자료가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1938년 신조선사본이 완간되기 이전에
장지연이 신문에 연재하고 최남선이 연활자본으로 간행하으며, 일본
인들이 간행한 판본도 2종류나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아언각비]는 다산
의 저술 중에서도 특히 그 필요성을 인정받고 널리 유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언각비]는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던 한자어 가운데서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을 골라 문헌을 상고하여 그 참뜻과 어원을 밝히고
용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대략 200 항목에 달하는 사물의 명칭의 어
원을 밝혀 놓았다. 이렇게 사전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저술이라는 점에
서 그 실용성을 널리 인정받았기에,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고 여러 차례
간행에 이르렀다고 추측할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아언각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1. ‘아언雅言’의 의미
[아언각비]의 제명에서 ‘아언’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일반적
으로 ‘正語’의 의미로 해석하여 ‘바른 말, 기준이 되는 말’로 보거나, ‘常
語’로 두어 ‘평상시의 말’, ‘일상용어’의 뜻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아언’
에 대한 최초의 용례는 [논어] 「술이述而」의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라는 구절인데, 이에 대해 공안국孔安國은 ‘雅, 正也’라 풀이하
고,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정호程顥의 ‘雅素之言’을 따라 ‘雅, 常也’라
하다. ‘覺非’의 뜻은 ‘잘못을 깨우친다’의 의미로, ‘雅言’을 ‘正言’으로
보면 ‘바른 말로 잘못을 깨우친다’가 될 것이며, ‘常言’으로 보면 ‘항상
쓰는 말에서 잘못을 깨우친다’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의 해석이든 [아언
각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있다.
여기서는 ‘雅言’의 뜻을 찾기 위해 다산의 정치적 후원자던 정조의
용례와 다산의 시에 나타나는 용례를 근거 자료로 삼고자 한다.
[아송雅誦] 8권 간본(1799(정조 23) 편찬)
‘雅誦’은 ‘雅言’과 같은 말이다. 너무도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말하게 된다.
몹시 좋아하고 항상 말하다 보니 다시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서 내가 늘상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항상 말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엮고 이 책을 [雅誦]으로 명명하게 된 이유
이다.
바른 말로 화려한 것을 깎아 버리고 雅言刪浮華
곧은 붓으로 살진 것을 대패질하며 勁毫鏟脆肥
담박함으로 부러워하는 마음 끊고 沖淡絶志歆 과묵함으로
그릇된 마음 질식시키네 訒黙鞱心非
첫 번째 예문을 보면, 정조의 경우 ‘아언’의 의미를 ‘너무 좋아하여 늘
상 하는 말’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 ‘상언’의 뜻에 좀 더 무게가 있는
듯하다. 단, 이때의 ‘常’은 ‘평상시’의 의미 보다는 ‘항상’의 의미가 더 강하
다. 또한 한편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말’이라고 하는 점에서, 단순한 일상
생활 용어라 보기엔 어렵다. 일상생활 동안 늘 읊조리면서 그 뜻을 되새
길만한 전범이 되고 있는 말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약용이 신작에게 보낸 시를 보면 ‘雅言刪浮華’라고 하여
부화한 것을 깎아 낼 수 있는 것으로 의미하는 바, 이때에는 ‘正言’의 의
미가 더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이 구절의 뜻은 ‘雅言覺非’와도 상통하
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용례를 볼 때 다산에게 있어 ‘雅言’의 의미는 바
르지 못하고 부화한 것을 바로잡고 깎아 낼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전범
이 되는 말’ 곧 ‘正言’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저술형태: ‘談’인가 ‘著’인가
다산은 자신의 저술에 대해 각각의 저술들의 성격에 따라 저술형태
를 구분하고, 이를 각 권 첫 부분에 저자 이름과 함께 적어 놓았다. 예
를 들면, [주역사전]· [춘추고징] 등은 ‘述’이라 하고, [상례사전]은
‘編次’, [경세유표]는 ‘撰’, [목민심서]는 ‘編’, [흠흠신서]는 ‘輯’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산의 구분법에 주목하게 된 것
은 근래에 다산 저술의 정본화 사업이 진행되고, 그의 고본 자료들이
수집되면서 부터의 일이다. 기존에 다산 연구의 기본 텍스트로 사용되
었던 신조선사본의 경우 이러한 구분법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 일괄적
으로 ‘洌水丁若鏞美庸 著’라고 표기하기에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관
심을 갖지 못하는데, 다산가 소장 고본들에는 이러한 구분들이 있었
기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후대의 전사본들은 고본의 저술 구분을 반
한 것도 있고, 반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著’나 ‘編’ 등의 보통의 구분
법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아언각비]의 경우 다산 제자 글씨로 필사된 장서각본과 다산 집안
소장본인 정규 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은 조선광문회본 모두 권1에서
는 ‘洌水 丁鏞 談’이라 하고, 권2~3은 ‘洌水 丁鏞 著’라고 하고 있다.
여 기서 다산의 의도는 권1을 ‘談’이라 표기한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현
재까지 확인된 것 중에 다산이 저술형태를 ‘談’이라 한 것은 [아언각비]
밖에 없다. 이때의 ‘談’이 어떤 의미인지, 다산이 왜 [아언각비]를 ‘談’이
라 하고, 그것도 권1만 그렇게 표기하고 나머지는 ‘著’라 하는지,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어쩌면 [아언각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
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에 대한 답은 추후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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