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유타대학의 인류학자 그레고리 코크란 교수와 헨리 하펜딩 교수의 공저서인 ‘1만년의 폭발’이라는 책을 요약한 것입니다.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거나, 과학지성을 갈고 닦는데도 도움이 될까하여 글을 올립니다.
<곡물의 탄생과 인구의 팽창 그리고 진화>
농경은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처음 출현했다. 기원전 9500년 무렵 최초 식물재배의 증거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밀과 보리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완두콩과 렌즈 콩이 나타난다. 기원전 7000년 무렵 쌀과 수수, 기장이 중국에서 처음 재배되었다.
동물들도 비슷한 시기에 중동지방에서 먼저 가축화 되었다. 기원전 1만 년 전 이란에서 염소가 길들여 졌고, 약 1000년 후에는 이라크에서 양이 길들여 졌다. 중동과 인도에서 기원전6000년 무렵 가축화 되었다.
식량을 찾아 다니는 것에 비해 1 에이커 당 10~100배쯤 많은 칼로리를 생산하는 농경은 인구증가를 가속화 시켰다. 농경은 식량의 생산은 늘렸지만 영양의 질은 수렵채집 인들보다 나빠졌다. 농경은 삶의 척도를 그리 높이지 못했다. 인구증가가 식량 생산의 증가를 금방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인구밀도, 영구 정착, 가축과 함께 사는 삶은 전염병을 크게 증가시켰다.
이런 변화는 진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선택압을 만들어 냈다. 인류는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이에 적응해야하는 선택압력을 받게 된 것이다. 진화의 속도도 빨라졌다. 인구의 증가는 그만큼 유익한 돌연변이의 공급을 증가시켰다.복권을 많이 사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초기 농부들은 탄수화물의 섭취가 세배쯤 늘어난 반면 단백질의 섭취가 양과 질적으로 나빠졌다. 비타민의 부족도 문제가 되었다. 수렵채집 인들은 각기병, 구루병, 괴혈병 등 비타민 결핍성 질환들을 거의 겪지 않았지만 농부들은 이따금 걸렸다. 이것은 골격증거에 의해 확인 되었다. 농경을 채택한 인간들은 쪼그라들었는데 평균신장이 거의 13센티미터나 줄어들었다.
가장 극적인 예는 우유에 들어 있는 당인 락토오스를 성인들도 소화시킬 수 있게 만든 돌연변이들이다. 포유류는 어린 시절에 락토오스를 소화시키는 락타아제의 생산을 멈춘다. 옛날에는 어머니의 젖이 락토오스가 든 유일한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를 기르면서 우유가 생겼고 락타아제는 성인들에게도 필요해 졌다.
락타아제를 계속 생산하게 하는 돌연변이가 약 8000년 전에 생겨 유럽인들에게 퍼져나가 현재 덴마크와 스웨덴인들은 현재 95%이상이 성인이 되어도 이 효소를 계속 생산한다. (8000년 이전 유럽인의 골격에서는 락타아제 관련 변종유전자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던 것이 3000년 전 유골에서는 25%가 되었고 현재는 80%에 이른다.)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돌연변이들이 동아프리카의 소를 키우는 몇 개 부족에게 흔해졌다.
피부색의 변화도 식품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식단은 비타민 D의 부족을 가져왔다. 이것은 피부가 자외선을 받아 생산한다. 적도로부터 멀리 떠나간 인류는 고기에 들어있는 풍부한 비타민 D를 섭취해 검은 피부로도 잘 살수 있었다. 그러나 곡물식단의 도입으로 이것이 어려워졌다. 그러자 피부색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자외선이 적은 북구에서도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도록 밝은 피부색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생겼을 것이다. 밝은 피부색을 유발하는 주요 돌연변이들 가운데 여러 개가 농경이 시작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소화과정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탄수화물의 큰 증가는 혈당조절을 방해하여 당뇨병 같은 대사 질환을 유발했던 것 같다. 이런 식단은 여드름과 충치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수렵채집 인들에게는 드문 질병들이었다. 이 두 질환은 감염매체생물들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지만 이 생물들은 고탄수화물 식단에서만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자 새로운 진화가 일어났다. 인슐린조절에 가담하는 유전자의 변종들이 나타나 당뇨병을 막아주게 된 것이다.
이런 변종 유전자들은 유럽인, 아시아인,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인들에게서 나타난 시기가 다른데 이것은 그들이 농경을 시작한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반면 호주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농경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도 당뇨병에 매우 취약하다. 호주 원주민들은 당뇨병 유병률이 4배, 나바호족(아메리카 인디언)은 2.5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