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늘 우리곁에서 맴돕니다. 먹어서 행복하고, 입어서 행복하고, 집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내마음이 만족을 하는순간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욕심이 너무 커져 버리면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으로 불행해져 버립니다.
구도자의 길은 욕심을 조절하는 훈련이고 마음을 밝게 만드는 일입니다.
천명은 상제님께 물어보는 것이 아니고 나의 자아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자아가 천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입고, 어떤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지는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수신의 직업이 되는 것이고 직업은 올바르고 좋은 수신을 굳건하게 만들어 좋은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행복은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못했던 것은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느순간 자신의 자아를 놓쳐버리면 방황의 순간을 맞이 하게 됩니다. 방심하면 미친 자아가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브레이크 파열된 자동차와 같이 궤도 이탈을 하게 됩니다.
달마가 자신의 본성을 보게 된다는 것이 바로 내 자신의 자아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고 좋아하는지를 찾는 것이 바로 이 뜻일 것입니다. 천명은 자신의 본성을 찾는 일입니다.
획일화되어 있는 현교육 체계에서는 본성을 알수 없게 만들어 놓아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강제된 로봇의 교육으로는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찾을수 없는 것입니다.
혁명! 그것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하는 것도 힘들고 혁명하는 것도 힘들면 정말로 사는 재미 없을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 나의 할 일을 찾아서 혁명을 자신이 주체로 꾸며 본다면 재미있는 혁명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후천을 부르짖고 개벽을 찬양했지만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은 후천이 부럽지 않습니다. 상위 몇프로는 지금도 황제이상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과 도문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들도 개벽에는 콧방귀를 뀝니다. 그러나 지금 개벽을 부르짖으며 후천의 황제를 그리워하는 종정님은 아직도 선천의 노예적인 삶을 강요하며 후천의 노예제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행복은 자신을 찾아 주체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찾아 주체된 사람의 마음은 공허 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주체로 자유된 사람은 영원히 행복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곧 하느님을 찾는 것이고 그것은 내속에 하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제님 말씀에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동학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믿는자는 자신의 자아를 찾은 사람이고, 상제님은 자신을 찾은자를 믿는자라고 했습니다.
태모님 말씀에도 “나한테 내가 있다, 나를 찾아라.
내가 나를 못 찾으면 이 천지를 못 찾느니라.” 라고 주체된 인간을 말씀 하셨습니다.
타인들과 함께 누리는 행복도 있지만 첫째로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와 또다른
나의신 자아와 대화하고, 느끼고, 질문하고,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의 행복입니다.
내 자신과 자아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백, 하나는 흑으로, 긍정과 부정으로, 여당과 야당으로 둘로 쪼개어서 나에게 질문하고, 견제하고 통제하는, 하나면서 둘로서 생각하고, 끊임없는 자신과의 질문과 대화로 발전적인 수신으로 나아간다면 완성된 자신을 만들 수 있을것입니다.
행복은 자아를 찾아 주체된 나를 통해 나오는 것이며 모든일의 근본이 되며 근원이 되는데 이것이 행복의 정의인 것입니다.
나는 하나가 아닌 둘입니다. 둘이면 세상을 다시 만들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수 있어서 나는 재미있고 행복한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내가 둘이기 때문에 행복할수 있고 나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나를 잃어버릴때가 있는데 불행은 그때 찾아 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정님은 행복하지 못할것입니다. 왜? 그는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종정님의 자기는 없어진지 오래 되었는데, 진실한 자기를 버리고 천자의 자기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면 외롭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타인과 돈과 물질,명예를 찾으며 그것들에 의지하고 살게 되어서 결국엔 더 큰 외로움과 공허해짐과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결국에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상제님 말씀에 “죄악이 소멸되는 곳에 행복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죄악이 일어나는 근원이 바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종정님은 진실한 자신을 찾고 자기에게 충실하며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자기를 학대 하지 않으며, 고통스럽게 하지 말며,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종정님은 자신을 찾아 대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도를 찾는 구도자입니다. 구도자의 길은 버드나무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를 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구도자 길의 결말은 자신을 찾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부님은 버드나무에서 뛰어 내릴 것인지 버드나무에서 철수 할것인지 이제 결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사부님을 바라보던 많은 구도자들이 지금 당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숱한 시간 사오미를 외쳤지만 번번히 그날은 빗겨 나갔습니다.
버드나무에서 입폭정해서 총몰사 할것인지 버드나무를 베어 버리고 새로운 법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오로지 당신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믿어보라던 사오미년이 끝날 즈음에 꼭 선언해야할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다 거짓말이였어! 미안해! > 부디 올바른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은 자신 내면의 자기를 찾는 것이며, 자신과 자기를 수신하는 것이다.
수신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싶은 일을 시작으로 출발해서 성숙한 직업수신으로 가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성공은 행복한 자기의 수신으로 출발합니다.
돈을 쫒아가면 반드시 잘못된 수신으로 가게 되고 결국 패망하게 되며 괴롭게 되며 낭패당하게 되고, 돈을 목적으로 하는 수신은 앞선 성공자들의 공통적인 금기 사항입니다.
욕심으로 시작한 수신은 반드시 나쁜 수신자들을 만나게 되고 나쁜 조직을 만나 사악한 인간으로 변모 합니다.
성사재인의 증산도 혁명은 행복한 혁명이 되어야 하고, 행복한 혁명은 성공을 부르게 됩니다.
혁명의 일차적 성공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찾는 일이며 그것으로 행복해지는 일입니다.
자아를 찾은 일꾼의 행복은 상생의 실천으로 전달되어야 하며,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혁명의 이차적 성공은 정신적 행복과 물질적 행복 즉, 진리의 올바른 해석과 진법의 문화는 정신적 행복으로 자리잡게 되고, 천명(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직업의 수신이 자리잡히게 되면 물질적으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찾음으로 해서 진실하고 재미있는 혁명의 시작과 끝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행복과 물질적 행복을 얻음으로 해서 혁명된 증산도는 세상을 혁명하는 위대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혁명의 삼차적 성공은 행복으로 발판되어진 나로부터 출발해서 이어지는 화목에 있습니다.
화목해지는 세상에는 평화가 공존합니다. 우리 각자 혁명의 위대한 노력으로 재미있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 나간다면 세상은 상제님이 바라던 이상향의 세상이 될것입니다.
우리의 혁명은 벌써 성공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 트렁크 살인마 김일곤이 잡혔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이자도 결국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려서 생긴 일입니다. 악마의 수신으로 똘똘뭉쳐져서 이세상에서 필요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또 한사례는 강*석이라는 변호사입니다. 개그맨을 고소했다가 취소한 경력이 있고 광고 포스터에 삿대질하는 모습으로 ‘너! 고소’라는 문구로 세상에 회자 되었는데 이러한 자도 자신을 잃어 버린 자 중에 하나입니다. 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인데 저 미친 사위랑 같은 과입니다.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되지 감정이입해서 유치한 짓거리를 하는 것은 정말 못난 꼴불견 짓입니다. 고소한다는 정신구조는 너를 죽이겠다는 김일곤과 오십보 백보 차이입니다.
다음은 태모님 상제님 말씀입니다.
우리 공부는 용(用)공부니 남모르는 공부를 많이 해 두라.
마음은 성인의 바탕을 갖고 일은 영웅의 수단을 가지라.
대인을 배우는 자는 고금의 흥망에 밝고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하느니라.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느니라.
무엇을 하나 배워도 끝이 나도록 배워라.
세상에 생이지지(生而知之)란 없느니라.
천지에서 바람과 비를 짓는 데도 무한한 공력을 들이느니라.
너희들 공부는 성경신(誠敬信) 석 자 공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