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담론방 > 자유게시판


 
작성일 : 15-09-22 23:00
조선왕실 개국이전 전주이씨
 글쓴이 : 목화씨
 


조선왕실 개국이전 전주이씨 


공식적으로 조선왕실의 뿌리는 시조 이한李翰부터 시작됩니다. 이한은 신라의 제46대 임금 문성왕文聖王 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문성왕이 재위하던 시기는 서기 839년까지로, 당시는 신라말의 혼란기였습니다. [태조실록]이나 [선원보략] 등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이한의 벼슬이 신라의 사공司公이고, 부인은 태종무열왕의 11대 손녀인 것으로 나옵니다. [완산실록完山實綠]에는 이한이 중국사람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조선왕실의 시조를 위대한 혈통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 및 신라왕실을 끌어들였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사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씨집단들은 신비한 시조설화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최초의 성씨집단이라 할 수 있는 3국시대의 왕실들은 모두 신비한 시조 탄생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이후 중국과의 접촉이 본격화되면서부터는 각 성씨집단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시조를 중국인으로 둔갑시키곤 했습니다. 고려왕실에서도 자신들의 혈통을 중국의 황실과 연결시키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조선개국을 전후하여 조선왕실의 혈통을 고귀하게 하는 과정에서 시조 이한과 그의 부인을 중국인과 태종 무열왕의 후손으로 윤색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은 조선왕실의 시조로 추앙되는 이한은 전주지역의 유력한 호족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에 지방호족들은 그 지역의 실제적인 지배자들이었습니다. 중앙집권화가 미숙한 당시에는 중앙 권력 대신에 지방의 실력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관할했던 것입니다. 

이한 및 그 후손들은 누대에 걸쳐 전주지역의 실력자로 군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전주이씨는 고려시대의 무신란을 계기로 지역의 실력자에게 중앙정부의 실력자로 일약 성장합니다.

고려초기 이래의 무신 천대는 당연히 군인들의 불만을 야기합니다. 특히 의종毅宗은 그 정도가 심하여 군인들의 표적이 됩니다. 의종 24년에 정종부鄭仲夫를 비롯한 무신들이 군대를 일으켜 문신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왕과 태자를 폐위시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이른바 무신란입니다. 

당시 정중부와 함께 무신란을 주도한 사람이 의의방李義方. 이준의李俊儀 그리고 이고 李高였습니다. 이의방, 이준의가 바로 전주이씨 출신으로서, 이들은 무신란을 통해 중앙권력을 장악하고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李隣이란 사람도 무예가 절륜한 군인이었는데, 그도 중앙으로 진출하여 왕의 측근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린은 태조 이성계의 6대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은 서로 반목과 질시를 거듭했는바, 이의방은 정중부 일파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무신들 서로간의 알력과 투쟁에서 패배한 쪽은 철저한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전주이씨들에게 이의방의 몰락은 바로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중앙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반대파 및 불평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의방이 제거되자  그의 본거지 전주에 있던 친족들이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전주이씨의 고난은 태조 이성계의 6대조 이린부터 시작됩니다. 형 이의방과 함께 중앙정계를 누비던 이린은 형의 몰락과 동시에 함경도 지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부인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린의 아들, 즉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李陽武도 고난의 세월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전주이씨 일족은 기어이 망명의 길에 올랐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이며 이양무의 아들인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지역의 일족을 데리고 북쪽으로 피난의 길에 오릅니다. 이들이 일차로 도착한 곳은 강원도의 삼척지역입니다. 그러나 고려의 권력이 미치는 삼척도 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고려의 영역을 벗어나 원나라의 권력이 미치는 함경도 지역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요컨대 해외망명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 이안사란 분이 추존 4왕의 첫번재인 목조穆祖입니다. 


목조의 해외망명을 조선시대의 왕실족보 자료에서는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목조가 망명하기 이전 전주에 살고 있을 때 사랑하던 관기官妓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주를 관장하던 관리가 이 지역을 순행하는 고위관료에게 그 관기를 억지로 수청들게 했습니다. 이 일로 목조는 전주의 관리를 미워하게 되었고, 결국 둘은 앙숙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전주의 관리는 사사건건 흠을 잡아 목조를 해치려 들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목조가 180여 가구를 이끌고 바다를 따라 강원도 삼척지역으로 피해갑니다. 

그런데 목조와 그 관리의 악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관리가 관동지역의 책임자로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목조는 다시 일족들을 이끌고 아예 함경도 지역의 원나라로 해외망명을 하게 됩니다.

이는 목조가 해외망명을 하게 된 사정을 어떤 관리와의 불화 때문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실은 중앙정부의 탄압과 감시에 못 견디고 망명을 한것으로 보야야 합리적일 것입니다. 

원나라에 망명한 목조는 원나라의 관직을 받고 이름도 개명합니다. 목조는 원나라의 비호와 자신의 능력을 발판으로 동북면 지역에 확고한 기반을 마련합니다. 목조 이후 익조 翼祖로 추존된 이행리李行里,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춘李椿, 그리고 환조桓祖로 추존된 이자춘李子春에 이르도록 모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전주이씨는 동북면에 자신들의 기반을 강력하게 뿌리내리게 됩니다.

전주에서 동북면으로 망명해온 전주이씨 일족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은 고려말의 동북아 정세의 변화입니다. 대륙에서 원을 대신하여 명나라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려의 공민왕은 이 같은 동북아의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반원정책을 기치로 내걸고 원나라에 빼앗겼던 북쪽의 영토를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당연히 동북면 지역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전주이씨 일족의 협조가 절실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부친인 이자춘은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그는 공민왕의 원나라에 빼앗겼던 쌍성총관부雙城憁管府(함경도 영흥지역)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합니다. 함경도 영흥지역은 바로 전주이씨 일족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기 직전 공민왕은 이자춘을 개경으로 불러 고려의 소부윤小府尹 벼슬을 주었습니다. 이자춘의 협조가 있어야 동북면 지역의 탈환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공민왕은 동왕 5년에 동북면병마사 유인후 등을 시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이자춘은 동북면에 있던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내응합니다. 이자춘의 협조로 쌍성총관부는 수월하게 탈환되었고, 이 공로로 이자춘은 종 2품의 영록대부榮祿大夫를 받고 동북면병마사로 제수됩니다. 원나라로 망명했던 전주이씨 일족이 다시 명예롭게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대륙의 불안한 정세는 동북면의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중요성을 높여갑니다. 동북면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고려에서는 이자춘 세력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는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성계는 무예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불안한 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의 실력자로서 무예를 갖춘다는 것은 바로 시대의 소명에 부응할 조건을 구비하는 것입니다. 이성계는 탁월한 무예와 전술을 기반으로 북쪽의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쪽의 왜구를 격퇴하는 등 장군으로서의 주가를 높여 갑니다.

고려말의 혼란상황은 이성계를 변방의 무명장수에서 일약 고려 제일의 무장으로 만듭니다. 계속되는 승전으로 이성계는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고, 이에 따라 벼슬도 올라갑니다. 군사력을 갖춘 신망받는 이성계에게 자연히 유교 지식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무장 이성계와 유교 지식인들의 만남은 바로 조선창업을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윽고 1392년 고령 공양왕의 양위를 받는 형식으로 이성계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개인 이성계가 아니라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인 것입니다. 이와함께 500년 조선왕실이 역사의 표면에 등장합니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목화씨 15-09-22 23:02
 
공식적으로 조선왕실의 뿌리는 시조 이한李翰부터 시작됩니다.
이한은 신라의 제46대 임금 문성왕文聖王 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람아구름아 15-09-23 00:17
 
조선왕실의 시조로 추앙되는 이한은 전주지역의 유력한 호족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에 지방호족들은 그 지역의 실제적인 지배자들이었습니다.
중앙집권화가 미숙한 당시에는 중앙 권력 대신에 지방의 실력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관할했던 것입니다.
사오리 15-09-23 01:04
 
속세를 떠난 자연에 은거하는 삶에는 영화도 욕됨도 없고 도의를 지키는
삶에는 변덕스런 세속의 인정이 없다.
겨울 15-09-23 09:00
 
역사적으로 한국사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씨집단들은 신비한 시조설화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최초의 성씨집단이라 할 수 있는 3국시대의 왕실들은 모두 신비한 시조 탄생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게리 15-09-23 10:01
 
당시 정중부와 함께 무신란을 주도한 사람이 의의방李義方. 이준의李俊儀 그리고 이고 李高였습니다.
이의방, 이준의가 바로 전주이씨 출신으로서, 이들은 무신란을 통해 중앙권력을 장악하고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李隣이란 사람도 무예가 절륜한 군인이었는데, 그도 중앙으로 진출하여 왕의 측근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린은 태조 이성계의 6대조에 해당합니다.
전설따라소설쟁이 15-09-23 11:09
 
시조설화에 대표로 발생하는 현상

무지개, 태양, 선녀, 향기로움. 눈 부신 빛,
특정 물체 안에서의 탄생, 동물을 통한 성장 등
해오 15-09-23 15:00
 
조선개국을 전후하여 조선왕실의 혈통을 고귀하게 하는 과정에서 시조 이한과
그의 부인을 중국인과 태종 무열왕의 후손으로 윤색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산백초 15-09-23 15:08
 
이는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성계는 무예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불안한 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의 실력자로서 무예를 갖춘다는 것은 바로 시대의 소명에 부응할 조건을 구비하는 것입니다. 이성계는 탁월한 무예와 전술을 기반으로 북쪽의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쪽의 왜구를 격퇴하는 등 장군으로서의 주가를 높여 갑니다.
된장찌개 15-09-23 17:42
 
고려의 공민왕은 이 같은 동북아의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반원정책을 기치로 내걸고 원나라에 빼앗겼던 북쪽의 영토를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당연히 동북면 지역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전주이씨 일족의 협조가 절실했습니다.
옥수 15-09-23 21:35
 
목조 이후 익조 翼祖로 추존된 이행리李行里,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춘李椿,
그리고 환조桓祖로 추존된 이자춘李子春에 이르도록 모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전주이씨는 동북면에 자신들의 기반을 강력하게 뿌리내리게 됩니다.
대포 15-09-25 19:24
 
즐추 보내세요...
 
 

Total 9,90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공지 1• 3 • 5 프로젝트 통장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70) 혁명위원회 09-12
공지 진법일기 70- 1.3.5 프로젝트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인가? (61) 이순신 09-19
공지 혁명을 하면서~ <아테네의 지성!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12) 현포 07-31
공지 히틀러,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15) FirstStep 06-23
공지 <한 지경 넘어야 하리니> (21) 고미기 07-28
공지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을 다루는 방법들 (32) 봉평메밀꽃 07-18
공지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27) 흰두루미 06-20
공지 소가 나간다3 <결結> (24) 아사달 03-20
3967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평범하게 생활하고 싶은데 신유의 은사 경험해 괴로와 (9) 게리 09-23
3966 미국 내 한인교회가 4천개가 넘억? (9) 게리 09-23
3965 제임스 랜디 이야기- 투시, 병고친다는 곳은 전부 사기집단 (9) 게리 09-23
3964 김병만의《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 김병만의 '적는 버릇' (10) 사오리 09-23
3963 조선왕실 개국이전 전주이씨 (11) 목화씨 09-22
3962 슬픈 영혼으로 사라질 때 (8) 옥수 09-22
3961 [현무경부록] 사기천관서/ 남관 주작칠수 (13) 칠현금 09-22
3960 2. 일본인 간행본: 조선고서간행회본·자유토구사본 (9) 선유도 09-22
3959 1. 일본인 간행본: 조선고서간행회본·자유토구사본 (9) 선유도 09-22
3958 <화장실에서 보는 책>뭐가 불만이야/ 이사님 이사님 우리 이사님 (10) 객1 09-22
3957 가을노래] 아름다운 것들 (11) 딴따라고사리 09-22
3956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가계가 어려워 십일조 생활 못해 고통 (9) 게리 09-22
3955 잠깐만! 그런가요? "유체이탈 후 사후세계 경험은 뇌의 활동 때문" 생각은 free~ (11) 게리 09-22
3954 감사드립니다. (10) 향수 09-22
3953 지나간 소소한 일, 스님과의 대화 (9) 게리 09-22
3952 엄마와 도시락 (10) 혁명밀알 09-22
3951 류해욱의《그대는 받아들여졌다》 * 사랑의 공간, 자유의 공간 (10) 사오리 09-21
3950 거듭나기 (9) 옥수 09-21
3949 2. 조선인 간행본: 「황성신문」 연재·조선광문회본·신조선사본 (9) 선유도 09-21
3948 1. 조선인 간행본: 「황성신문」 연재·조선광문회본·신조선사본 (9) 선유도 09-21
3947 <화장실에서 보는 책> 제발, 쓰다 버린 거라도/ 다음부턴 삐삐 쳐요 (11) 객1 09-21
3946 통합경전 계좌 번호 알립니다 (12) 혁명위원회 09-21
3945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성경, 개정되면 꼭 바꿔야 하나요 (8) 게리 09-21
3944 유럽 교회 쇠퇴 현황 (9) 게리 09-21
3943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살아 숨쉰다 (9) 게리 09-21
3942 프란치스코 교황,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동 (10) 각설탕 09-21
3941 언어도 허무는 대단한 마음의 단어 ‘교감’ (10) 혁명밀알 09-21
3940 안젤름 그륀의《머물지 말고 흘러라》 * 황무지 (8) 사오리 09-20
3939 [현무경부록] 사기천관서/ 28수 동관창룡칠수 (13) 칠현금 09-20
3938 좋은 땅 제대로 보는 방법 (8) 호반도시 09-20
3937 [현무경부록] 사기천관서/ 천황 지황 인황 (15) 칠현금 09-20
3936 간(間) (7) 옥수 09-20
3935 3. 이본 대교와 편찬 과정 재구 (10) 선유도 09-20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