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본인 간행본: 조선고서간행회본·자유토구사본
(2) 1922년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자유토구사 간행
1920년에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1886~1934)가 경성에 자유토구사를 설
립하고 ‘통속조선문고’라는 시리즈로 조선 고서의 일어번역본을 출간하
다. 여기에는 2종의 다산 저술이 포함되어 있다. 그 목록을 보면 다음
과 같다.
自由討究社 「通俗朝鮮文庫」, 細井肇 編
* 제1집 [목민심서], 細井肇 譯, 1921
* 제10집 [아언각비], 細井肇 譯, 1922
자유토구사 간행 [아언각비]의 저본은 앞서 언급한 바, 조선고서간
행회본처럼 동양문고본과 교토대본 계열의 필사본이다. 다만, 일부 항
목들이 생략되어 있고, 번역의 과정에서 번역자의 의견이 추가로 서술
되기도 하다. 이 책의 저본이 조선고서간행회본과 같다는 사실은 목
차에서 ‘胡麻靑蘇’가 ‘胡麻白蘇’라 되었고, ‘杉’과 ‘榧’ 항목, ‘楸枰’과 ‘藜
笻’ 항목이 각기 별도의 항목으로 제시되었으며, 「범례凡例」에서 책의
제명이 원래 ‘疋言覺非’음을 언급하고 있는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
다. 그런데 이미 마에마 쿄사쿠는 1911년에, 가와이 히로타미는 1915년
에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1922년에 이들의 원본 자료를 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당시 이미 간행되어 유통되던 앞
서의 조선고서간행회본을 저본으로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자료를 통해 일본인들이 조선의 고서를 간행하는데 있어 자신
들의 소장본을 사용하여 간행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마에마 쿄사쿠, 가와이 히로타미, 아키오 슌죠 등이 서로
교류하며 자료를 교환하고 제공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었는데, 이는 당
시 일본인들이 경성에서 조선의 고문헌을 수집하고 활용하는 모습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20년대 호소이 하지메
의 경우 이러한 선배들의 활동을 참고하여 번역 작업을 하다. 이로써
‘동양문고본→경도대본→조선고서간행회본→자유토구사본’으로 이어
지는 하나의 계열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시 조선인이 간행한 것과 전혀 다른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인이 간행한 경우 정약용 후손가와의 교류를 통해 가장본을
얻어 그것을 저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자료는 다산가 소장본과
비교할 때 대표적으로 ‘일휘’ 항목이 삭제된 것이 반되지 않고, 홍석
주의 첨지를 싣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에서
당연하겠지만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조선 고문헌으로의 접근 경로에
차이가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핀 20세기 이후 다산 저술의 신식활자본 간행 상황을 연
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朝)1903년 장지연의 「皇城新聞」 연재
② (日)1911년 釋尾春芿의 조선고서간행회 간행
③ (朝)1912년 최남선의 조선광문회 간행
④ (日)1922년 細井肇의 自由討究社 일본어 번역판 간행
⑤ (朝)1938년 신조선사 [여유당전서]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