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과 현대적 한자자전을 편찬하다.
조선광문회에서는 자신들이 수집·간행할 목적의 고서들을 선정하
여 190여종의 서적목록을 담은 「조선광문회간행서목개략朝鮮光文會刊行
書目槪略」을 작성한 바 있다. 여기에 들어간 정약용의 저서를 보면 [아방
강역고我邦疆域考], [동국수경東國水經]([대동수경大東水經]으로 짐작된다),
[다산경론茶山經論], [여유당집與猶堂集] 등이 있다. 그러나 당시 출판계
의 불황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조선광문회에서는 1911~1918년까지 20여
종의 서적밖에 간행하지 못하다. 이들 서적은 일련번호 없이 모두 ‘조
선총서朝鮮叢書’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정약용의 저서가
다음 2종이 포함되어 있다.
* 1912년 2월, [아언각비雅言覺非](3권1책)
* 1914년 10월, [경세유표經世遺表](16권1책)
이때 [경세유표]의 저본이 된 것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고본稿本
[경세유표](古 5120-171) 필사본이다. 또한 [아언각비]의 저본은 다산의
현손인 정규 소장본이다. 여기서 최남선 역시 이들 자료의 간행을 위
해 다산가 소장의 고본을 널리 구하음을 알 수 있다. 정규은 앞서
1900년대 초반에 다산의 저술을 신활자본으로 간행한 장지연과도 교류
한 인물로, 당시에도 다산 저술을 간행하는데 저본을 제공한 바 있다.
정규의 활동을 통해 다산의 후손들이 다산의 저술을 간행하는데 얼
마나 노력을 들는지 알 수 있다.
조선광문회본 [아언각비]는 무엇보다 다산가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
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가장 완성된 형태
를 보이고 있다. 특히나 원책의 권차를 그대로 반하고, 「제아언각비
후」를 말미에 첨부하여 김매순·신작·홍석주의 서평을 모두 싣고 있는
점에서 원책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
다. 뒤에 나온 1938년 신조선사본의 경우 권차를 없애고 「제아언각비
후」를 빼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는 점과 대비할 때 더욱 그러하다. 다만,
목차의 경우 항목의 일부를 ‘기타其他’라고 표현하는 등 근대적인 용어
로 약간의 변형이 가해져서 원본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3) 1938년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 간행
1936년 다산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1934년부터 1938까지 약 5년
간에 걸쳐 정인보鄭寅普, 안재홍安在鴻의 교정을 거친 [여유당전서與猶堂
全書](154권 76책)가 외현손 김성진金誠鎭 편으로 신조선사에서 완간된다.
[아언각비]에 한하여 신조선사본의 특징을 살피면, 우선 이 책은 장서
각본(貴 D3B 241 27), 조선광문회본(정규소장본)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장서각 소장본은 신조선사본의 저본일 가
능성이 높다. 신조선사본은 말미에 첨부된 「제아언각비후」가 빠져 있
고, 원본의 권차 표기를 무시하고 권차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는 점에서 장서각본과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
들은 신조선사본의 편집 과정에서 이루어진 변형이라 볼 수 있으며 본
문의 내용과 기본적인 사항들에서는 장서각본과 모두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과연 장서각소장본이 그간 장지연과 최
남선이 저본으로 사용한 정규소장본과 동일본인가의 여부이다. 이
두 필사본의 동일성 여부는 현재로서 확증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나 내
용을 비교할 때 거의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