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인 간행본: 「황성신문」 연재·조선광문회본·신조선사본
[아언각비]는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차례 신식활자본으로 간행되었
다. 이때의 간행은 간행 주체가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에 따라 크게 두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조선인이 간행한 것을 보면, 첫 번째로 정
식 간행은 아니지만 1903년에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아언각비]의 일
부를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1912년 최남선이 조선광문회에서 간행하
고, 이후 1938년에 신조선사에서 [여유당전서] 「잡찬집」에 넣어 간행하
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의 간행을 살피면, 1911년에 토키오 슌죠(釋尾
春芿, 1875~?)가 조선고서간행회에서 간행하는데, 이는 현재까지 확인
된 최초의 연활자본 [아언각비] 간행본이 된다. 그리고 1922년에는 호
소이 하지메(細井肇, 1886~1934)가 자유토구사에서 [아언각비]를 일어로
번역한 책을 출판하다.
이때 주목할 점은 각 계열에 따라 서로 다른 저본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조선인이 간행한 책들은 정규 소장본 등 다산가
의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으며, 일본인이 간행한 책들은 당시 일본
인 장서가의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점에 집중하여
간행 주체를 조선인과 일본인으로 구분하여 그 간행 경위를 살필 것인
데, 이를 통해 근대 이후 다산 저술의 유전 양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1) 1903년 장지연의 「황성신문」 연재
근대에 이르러 다산을 세상에 알린 것은 1899년에 장지연이 자신이
주필로 있던 「황성신문」에 다산에 대한 논설을 기고한 것이 그 시작
이라 한다. 장지연은 「황성신문」 1899년 4월 17일, 18일자 논설에 <我
國의 經濟學大先生 丁茶山若鏞氏의 所述한 바를 摘要하노라>라는 논
설을 2회에 걸쳐 연재하고, 이후 같은 해 8월 3일, 4일자 논설에서는
<大韓經濟先生 茶山 丁若鏞氏의 所撰한 守令考績法을 左에 略記하노
라>라는 제명으로 [목민심서]를 요약·소개하다. 이후 그는 출판사 광
문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 간행도서로 다산의 저술 [목민심서], [흠흠신
서]를 선택하여 1902년 5월에 이를 신식활자로 간행하다. 이어 광문
사에서는 1902년에 [이담속찬]이 간행하으며, 1903년 8월에는 장지연
이 근무하던 황성신문사에서 [아방강역고]를 증보한 [대한강역고]를
출판하기도 하다.
장지연은 [아언각비]도 출판하고자 하다. 그러나 자금의 문제로 이 책은
출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1903년 12월부터 「황성신문」에 연재 되는
형태로 일부가 소개되었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1535호(1903년 12
월 2일)> 논설 <제아언각비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략) 지금 공(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후 80여년에 이르렀는데 공의 저술들
이 조금씩 세상에 간행되고 있다. [흠흠신서]는 玄采씨가 간행하여 배포
하고, [목민심서]는 양재건 씨가 간행하으며, [我韓疆域考]는 본 기
자(장지연)가 증보하여 金敎翼 씨와 함께 자금을 모아 인간하다. 본 기자
는 일찍이 다산의 현손인 주사 奎英씨와 교유하며 선생의 저술을 얻어 이
를 간행할 뜻을 두었으나, 자금이 궁핍하여 그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
다. 지금 이 [아언각비]라는 책은 비록 經世濟時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또한 학문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 근세에 오직 다산 선생
이 중국과 우리나라 여러 학자들의 설을 널리 상고하여 [아언각비] 한 책
을 저술하으니, 그 剖析辨明이 該博瞭晳하여 족히 학문의 도구로 사용
될 만하다. 이에 기자는 그 중 긴요한 것들을 뽑아서 장차 본지(황성신문)의
마지막에 매일 수록하여 제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니, 세
교에도 또한 보충이 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현대어역: 필자)
장지연은 [아언각비] 중에서 일부를 뽑아내어 「황성신문」 1903년 12 월
2· 3·4· 5· 7 ·12·14·15·16일자에 수록하다. 수록된 항목은 柏·檀·
檜·杉·蘆·杻·檟·楓·楡·海棠·山菜 등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때 저본으로 사용된 필사본이 다산의 후손 정규 소장본이라는 사실
이다.
위의 예문에 나타나듯이 당시 장지연은 정규과 친밀히 교류하면서
[아언각비]의 경우 그에게 얻어 간행할 뜻을 두었다고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때에는 이 책이 간행되지 못한다. 기록에 따르면 [아언각비]
는 1909년에 다산의 현손 규헌奎憲이 의진사義進社에서 발간하게 되고,
그것을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증보 산정하고 주석을 붙일 계획을 세웠
으나 후손의 반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현재 의진사에
서 간행된 [아언각비]가 확인되지 않아서 실제로 간행이 되었는지는 확
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 당시에 [아언각비]를 간행
하고자 했던 열의는 충분히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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