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논어] 주석서 전승에 대한 연구
박종천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서론: 다산의 [논어] 주석서 전승사 연구의 필요성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연구와
주석을 통해서 조선 후기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적 단초를
마련했다. 다산은 육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신의 식견을 넓혔으며, 사
서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실천의 가능성을 구현하려고 했다.
다산은 사서 중에서도 특히 종신토록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논어論
語]의 권위를 강조했다. [논어]의 중요성을 인식한 다산의 경학 연구는
1791년 정조正祖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논어대책論語對策」으
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학문적 결실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에서 이
루어졌으며, [논어고금주]를 일정하게 축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논어수
차論語手箚]를 통해서도 부각되었다.
이렇듯 다산의 [논어] 주석서에 대한 연구는 다산 경학經學 연구는
물론, 다산 사상의 전체 규모와 성격을 살펴보는 데서도 결코 빠뜨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논어수차]에 대해서는 버클리대학교 아
사미문고본과 규장각본을 일부 비교한 선행연구가 있었지만, [논어고
금주]의 전승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전무한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은
사상사적 위상이 높은 [논어고금주]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논어고금주] 필사본의 변화를 검토해 보면,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핵심에 위치한 다산의 사상 형성과 변화 과정을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논어고금주]는 일필휘지一筆
揮之로 단번에 써내려가서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 본인의 수
정과 제자들의 교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다산의 [논어] 주
석서 전승사에 대한 연구는 다산의 경학사상의 정수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 변화, 수정, 유통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데에도 중대한 의미
를 지닌다.
실제로 [논어고금주]는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와 규장각
본 [여유당집與猶堂集] 외에도 최소 2종 이상의 필사본이 더 현존하고
있으며, [여유당집]에 편제되지 못한 [논어수차] 필사본도 2종이 남아
있어서 필사본간의 관계를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런 점을 의식하여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다산 경
학의 중요한 사상사적 의미를 지닌 [논어고금주]와 [논어수차]의 전승
사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다산의 [논어] 저술이 속한 경
집經集의 전반적인 전승사적 특징들을 검토하려고 한다. 특히 「자찬묘
지명自撰墓誌銘」에서 분명하게 부각된 [여유당집] 체재를 중심으로 경집
필사본의 특징과 전승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기반 위에서 [논어
고금주] 필사본들이 지닌 특성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전승의 양상을
검토할 것이다. [논어고금주] 필사본의 전승사 연구는 경집을 포함한
다산 저술 필사본 일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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