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언각비]에 대한 마무리
[아언각비]는 1819년에 1차로 완성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증보되
고 산삭되는 개정을 겪었으며, 다산의 주변 인물들에게 보내어 서평을
받아 이를 반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에 초고본 이후로 새로운 고
본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정규 소장본과 현 장서각 소장본이다. 그러
나 초고가 완성된 이후 이미 널리 유통되기 시작하여, 초고 완성 이후
의 개정이 반되지 못한 사본들도 다수 유통되었고, 이에 현전하는 필
사본 자료들의 경우 개정의 단계에 따라 편차를 보이는 것들이 유전되
고 있다.
20세기 이후 다산의 저술은 신식활자로 간행되기 시작하는데, [아
언각비]의 경우 그 중에서도 특히 여러 번 간행되었다. 간행주체에 따
라 조선인 간행본과 일본인 간행본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 간행본
은 각각의 주체에 따라 저본이 공유되어 별도의 계열을 형성하다. 먼
저, 조선인 간행본의 경우 장지연의 「황성신문」 연재부터 조선광문회
본, 신조선사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산가 소장본과 관계 있는 자료를
저본으로 하다. 장지연과 최남선은 정규 소장본을 저본으로 사용
하고, 신조선사본은 다산가 글씨체로 필사된 장서각 소장본을 저본
으로 사용했다. 이때 장서각본과 정규 소장본은 내용상 차이점이 거
의 나타나지 않는 바, 동일본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렇게 조선인
간행본은 다산가 후손에게서 구한 자료로 제작된 것으로 가장 원본에
가까운 저본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일본인들은 다산가 후손들과는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서적 유통망을
형성하고, 자신들 인맥 안에서 자료를 구해 이를 저본으로 하여 간행하
고 있었다. [아언각비]의 경우 마에마 쿄사쿠의 동양문고본과 가와이
히로타미의 교토대본이 같은 계열을 이루고, 이들 자료를 저본으로 조
선고서간행회본이 출판되었으며, 후에 자유토구사본은 이 간행본을 저
본으로 하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조선 고서의 출판
사업이 각기 다른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시기 고서의 근대적 출판 작업의 한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것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 국민은행 474901-04-153920 성사재인(김갑수)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