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도烏鵲圖27<닭 울고 개 짖으면>
이번 자중지란이 일어난 짬 사태는 요 몇 년 사이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누가 저들의 카톡 내용을 혁명위로 가지고 와 이런 코믹한 공연을 무대 위로 올렸는지 모르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사들이다. 저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허무가 뼛속 깊이 스며든다.
저 짬들은 필자에게, 상제님 천지공사 도수라는 것이 성사재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원을 위해 있다는 느낌을 강렬히 심어준다. 성씨 하나만 언급이 되어도 <저 안에 내가 한자리 하는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노구라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을 헤매고 있다.
수행 중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실상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자신의 사욕이 펼쳐낸 환상이다. 도공을 하다가 상제님을 친견했다느니, 태모님을 친견했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자기 마음속의 삿된 기운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 마냥 하늘을 동전만 하다고 생각한다.
도수를 깊이 연구하여 그곳에 빠져들면 자기가 만든 허상의 세계에 갇혀 왕후장상이 된다. 단주도 되고 대두목도 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다 될 수가 있다. 그러나 꿈이 깨고 나면 초라한 현실만 남는다. 옛날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길 가던 나그네가 귀신에게 홀리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날이 저물어 찾아들어간 곳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보면 그곳은 거미줄만이 가득한 폐가였음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귀신에게 홀려 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도수에 빠지는 것이 이것과 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나파와 짬들이 도수에 빠지는 것은 도깨비에게 홀리는 것이다. 도깨비에 홀리면 허상의 세계와 실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도깨비에 홀려 밤새 빗자루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는 옛말을 현대적으로 짬들이 재현하고 있다.
홍씨 사건도 현실로부터 유리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종교 조직을 위해 자기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절대 인정받지 못하는 패륜적 행위이다. 10여년의 세월 동안 법인이 잡히지 않는 것을 두고도 <하늘이 감추었다>는 등의 해석을 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 외면한, 황극이라는 달작지근한 말에 빠진, 환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쪽지문의 기술 앞에 하늘의 감춤도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범인은 결국 잡히고 말았다.
도수라는 환상의 끝은 허무다. 마약의 끝도 허무다. 초립동이라는 말에 빠져 결혼을 금지시킨 것도 도수 연구가 낳은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 도판에 장가도 못가고 50을 넘긴 노총각들이 어디 한둘인가. 혁명의 등불을 들고 지나온 도사를 돌아보았더니 초립동이도 황극제도 모두 해원을 위한 헛도수의 헛춤이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상제님의 도정이 도수에 빠져 현실과는 너무도 많이 동떨어져 버렸다.
초판에서는 <정의도>라고 하다가 개정판에서는 <오선위기도>라고 부르는 상제님이 쓰신 글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제목을 무엇이라 붙이든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짬 사태를 보고 있으면 이 그림에 도깨비가 꽉 잤다는 상제님 말씀이 떠오른다.
<<4월 11일에 공신의 집 상량보에 오선위기도五仙圍碁圖를 그려 붙이시고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안에 도깨비가 꽉 찼느니라. 도깨비로 인해 너희 집이 하루아침에 망할 것이니 일절 뜯어 볼 생각을 하지 말라.” 하시며 엄중히 단속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243:1~2)>>
종정님은 이 그림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의도는 상제님 일꾼들이 앞으로 <개벽상황>에서 해야 하는 인류구원의 과업 그 천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종정님)>>
이것은 초판 도전 정의도 그림 위에 메모해 두었던 내용이다. 종정님은 모든 것을 <개벽>에 맞추어 놓았다. 이 <개벽>이라는 말속에는 시두 전쟁 병목 지축정립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한때는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인줄 알았다. 개벽이 오면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살고 나서는 내 옆에 있는 저 사람보다 잘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마음이 쫓기며 쪼그라들었다.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서나파 일꾼들의 얼굴은 항상 근심에 절어 있다.
그러나 종정님이 얘기한 <개벽상황>은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었다. 이것은 개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개벽으로 가는 현실에 비로소 눈을 뜬 것이다. 앉아서 책 내고, 강연만 하고 있는데, 말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한 개벽이 온다는 것이 말장난이었다. 고작 한다는 일이 의통성금을 걷는 게 전부였다. 만인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의통성금을 받아 천륜파괴 공작금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과연 서나파는 개벽을 위해 무엇을 해놓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유치하게 마패를 만들었다고는 말하지는 않으리라.
종정님이 주창한 사오미 개벽설은 오선위기도의 도깨비에게 홀려서 밤새 힘만 뺀 헛씨름판이었다. 시두도, 전쟁도, 병목도, 지축도 정립도 오지 않는, 말라비틀어져 생명력이라고는 사라져버린 부지깽이 붙들고 헛 춤만 춘 것이다. 사오미도 지났는데 북에서 미사일을 쏘운 것은 오선위기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닭 울고 개짓는 도수인가. 얼쑤! 다시 헛춤 한판 놀아보세. 닭 울고 개가 짖으면 사람이 다닌다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요진사오미신유술해라고 하는 것이 생명력 없는 부지깽이요, 빗자루다. 이 안에서 개벽을 파악하고 진주와 대두목을 논하고 황극제를 논하고 있으니 밤새 빗자루 붙들고 씨름한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병신이 육갑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실속 없이 헛짓만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성사재인>은 이런 도깨비에 홀리지 않는 살아있는 실상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가당치도 않은 환상을 꿈꾸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실상의 세계, 객관의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성사재인은 출발한다. 정심이란 어쩌면 객관의 현실세계에 바탕을 둔 마음이다. 현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정심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인류구원이란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상제님 일을 하려거든, 상제님께서 일신수습중천금이라 하셨듯이 내 한 몸 수습할 수 있어야 한다. 밥 굶으며 성직자라고 폼 잡는 것은 양반이라고 노동을 하지 않고 냉수마시며 이 쑤시는 거나 다르지 않다. 잠시 도전을 덮고 상놈들의 경전인 벼룩시장을 펼쳐보자. 그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녹이 박하기는 하지만 불고가사하며 서나파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낫다. 서나파에 불고가사의 충성을 하면 내 가족을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환상이다. 종정님께는 그런 능력이 없어 보인다. 개벽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현실의 파도다. 이 파도에 휩쓸리는 것은 개벽 때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
닭 울고 개가 짖어 날이 밝으면 밤새 부지깽이를 붙들고 오선위기 씨름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닭 울고 개 짖는다는 것은 이제 <개벽의 환상>에서 깨어나 각자 집으로 귀가할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나파에서 해석하는 개벽의 카운트다운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집에는 노부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을 했다면 아내와 자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지난 12년 전 사오미 때에 집으로 귀가 했다. 그러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1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머리는 백발이 되어 먹고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돈 버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이것이 당면한 현실이며 진리다.
다시 말하지만 서나파에서 불고가사하는 것은 천하사가 아니다. 서나파의 사오미 개벽놀음은 도깨비에 홀려 내 몸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망해먹는 일이다. 한마디로 헛짓이다. 귀가하려고 서나파에서 나왔다가 짬으로 빠진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 종정님의 개벽장단에 헛춤 춘 게 억울하다면 귀가하여 직업을 구하고 혁명의 정도를 걸으면 된다. 헛춤 춘 게 억울하여 다시 헛짓으로 보복을 하려한다면 다시 헛춤을 추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피를 피로 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노구라와 물당구 그리고 약장사의 헛춤은 개콘을 방불케 하는 웃음거리다. 등에 땀이 흥건히 젖도록 실컷 추기 바란다. 여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저들은 낮이 두꺼워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무슨 변명들이 저토록 구차한가.
혁명은 정심을 바탕으로 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길이다. 현실에 눈 뜨지 못하는 자 어찌 혁명에 참여하리오. 혁명가님 말씀대로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사는 일이 혁명이다.
이글을 쓰는 중 <현포>님이 올려주신 <뜰 앞의 잣나무>를 읽으며, 그 글이 현실을 바로 보는 정심과 통해 있음을 보았다. 현포님을 만난 적이 없지만 이렇게 서로 마음이 통해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진리의 출발점은 <현실>임 분명한 것이다.
이제 모두 환상의 껍데기를 벗고 상제님 일꾼으로 거듭나기를 축원하는 바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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