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료로 보는 칠천량해전(2)
※ 《선조실록》 ※
선조 : 그래, 그 말이 옳다! 적의 수가 극히 많다니 애당초 바람에 표류했다는 말은 역시 거짓말이고, 저항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난 것임이 분명하다. 한산의 형세는 아주 좋은 곳일 뿐더러 바다 길목을 끊어 막아 지키기에 적당한 곳인데, 거기를 내버리고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이다.
원균이 일찍이 절영도 앞바다로 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하더니 이제 과연 이렇게 되었다!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저 놈들이 6년 동안이나 버티고 있는 것이 어찌 명나라로부터 책봉한다는 문서 한 장을 받으려는 것 때문이겠는가. 그리고 또 적선들이 그 전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실인가?
김응남(좌의정) : 그러하옵니다.
김명원(형조판서) : 그것은 모르겠으나, 김식(선전관)의 말을 들으면 왜적들이 우리 배 위로 육박해 올라왔기 때문에 장수와 군졸들이 손쓸 도리도 없이 모두 죽었다고 하옵니다.
정광적(좌승지) : 우리 군사는 다만 총 7자루밖에 쏘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옵니다.
선조 : 평수길이 매양 말하기를, 먼저 우리 수군을 깨뜨린 뒤에라야 육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 한다더니, 과연 그렇군!
노직(상호군) : 9일 싸움에 병졸들이 겁을내어 화살 하나 못 쏘았다고 하옵니다.
선조 : 이미 지나간 일이야 의논해서 무엇 하겠는가. 한편으로는 통제사를 임명해서 곧 남은 배들을 거두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도독부에 보고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명나라 천자에게 주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항복을 보고) 전군이 몽땅 다 깨졌나? 하지만 도망해서 산 자도 있겠지?
이항복 : 바다에서는 설사 패했다 하더라도 도망쳐 살아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하옵니다. 좁은 목에서 머물고 있다가 갑자기 적을 만나 황급히 상륙한 것이므로 아마도 전군이 다 없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선조 : (바다 지도를 꺼내 이항복에게 보이며) 물러나올 때에 미처 견내량까지는 오지 못하고 고성 땅에서 적을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패한 것인가? 저리로 갔다면 한산으로 빠져 나가기가 쉬웠을 텐데 이리 오다가 그렇게 패했다는 것인가?
왜군들은 각본에 의한 준비된 기습전을 감행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원균의 본 함대가 한산도로 되돌아갈 길목을 차단했고, 그 때문에 원균은 불가피하게 적진포 쪽 춘원포에 상륙했던 것이다. 그러나 배설은 야습을 우려해서 달아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왜선단의 접근을 확인하자 곧바로 한산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선조실록》 ※
이항복 : 그러하옵니다.
유성룡 : 만일 한산을 잃어버린다면, 남해는 본래 중요한 길목인데, 그곳을 그만 적이 점령하고 만 것입니다.
선조 : 그럼 영의정(유성룡)은 남해를 걱정하는 것인가?
유성룡 : 어찌 남해만을 걱정하는 것이겠습니까.
선조 : 이게 어찌 사람의 계책이 잘못되어서 그리 되었겠는가. 천명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김명원 : 만일 장수를 파견한다면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습니까?
이항복 : 오늘 할 일은 오직 여기(통제사 임명)에 있사옵니다.
선조 : 원균도 처음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더군! 남이공의 말을 들으니, 배설도 “비록 군법에 저촉되어 나 혼자 죽을망정 어찌 병졸들을 모두 죽을 땅에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던데.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그때의 정세를 살펴보고 나서 해야 하는 법이다. 또 요해지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것이 제일인데도 도원수(권율)가 원균을 독촉해서 이렇게 되었다!
권율이 원균을 독촉한 것은 선조의 어명 때문이었고, 이 같은 선조의 어명은 평소 원균을 비롯한 윤두수, 김응남 등이 부산 쪽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맞장구를 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부산 진출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자 선조는 슬며시 발을 빼면서 갑자기 책임을 권율에게 돌리고 있다.
선조는 성품이 포악하거나 잔인한 임금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쟁의 시대에 40년간 보위를 지켰기에 정치적 책임 회피나 붕당들을 견제하고 제어하는 데에는 천재적일 만큼 노련했다.
※ 《선조실록》 ※
이항복 : 적이 만약 광양과 순천으로 향하게 된다면 양원 혼자서 수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성룡 : 명나라 군사도 이제는 믿고 의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배들을 거두어 강화 등지를 수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차츰 살펴보겠지만 ‘강화도 수비론’은 곧 ‘울돌목 수비론’ 이다.
※ 《선조실록》 ※
윤두수(판중추부사) : 비록 남은 배가 있다손 치더라도 군졸을 얻기 어려울 테니 일단 통제사는 임명하지 말고 각 도 수령들에게 명령해서 그 고을 군사들을 거두어 모아 각자 제 고장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니시를 중심으로 하는 6만군과 가토를 중심으로 하는 6만군이 집단적으로 몰려올 것이므로 제고장 지키기로 대응 한다면 개전 초처럼 360여 고을들이 도미노로 무너질 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런데도 선조가 제갈량처럼 믿고 있던 윤두수의 군사 작전 수준은 이렇게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아니, 윤두수는 자신들이 공모하여 원균을 통제사로 앉힌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서도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앉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선조실록》 ※
유성룡 : 혹시 명나라의 산동 수군이 나온다 하더라도,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반드시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 이옵니다.
당시 함대의 겨울 출동은 흔치 않은 경우였다. 진린 도독의 함대가 조선으로 온 것도 이듬해 여름(1598년 7월)이었다.
※ 《선조실록》 ※
선조 : 명나라 군사가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적들이 어찌 두려워할 리가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명나라 군사만 나오면 왜적은 물러갈 거라고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자,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어봐야 성패에 아무런 이익이 없으니, 어서 대신들은 먼저 도독과 안찰사에게 가서 보고하고 또 한편으로 수군을 수습하도록 하라.
이것 말고는 다른 좋은 방책이 없다. 내 말이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명나라 장수들이 전에 늘 우리 수군을 신뢰한다고 했는데 이제 이 꼴을 보고 혹시 물러갈 염려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수군이 없으면 제해권을 빼앗기게 되고, 한반도의 수은이 모두 막히게 되어 나라의 존립 자체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명나라 군대가 오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