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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13 22:36
여승
 글쓴이 : 옥수
 


여승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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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 16-02-13 22:42
 
송수권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 2005.08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2002.10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전임강사
1999.03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

1992
한국펜클럽 감사
해오 16-02-13 23:43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순수했고 아팟던 병앓이 때 처음본 여승의 모습에 첫 사랑의 잔상이 깊게 남아 있다?
만사지 16-02-14 01:23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오리 16-02-14 03:46
 
기생도 늘그막에 남편을 만나면, 이전의 화류계 생활은 장애가 되지 않
는다.
정숙한 부인도 만년에 정절을 지키지 못하면, 평생 애써 지켜왔던 절개
가 물거품이 된다. 옛말에 "사람을 보려면 그 인생의 후반부를 보라"고
한 것은 진실로 명언이다.
카오스 16-02-14 05:41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대포 16-02-14 09:45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눈에 아주아주 선하게 다가 옵니다 .
겨울 16-02-14 10:45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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