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잔인한 능지형 사진
전근대 중국의 사형 방식 중 하나. 가장 잔혹한 형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1] 이 끔찍한 형벌은 요나라 때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원나라가 중국을 통치하면서 한족의 형벌 중의 하나로 편입되었다. 대명률에는 능지처사라고 불렀다.
죄인의 살을 산 채로 회뜨는 형벌로, 말 그대로 뼈와 살을 분리시킨다. 교수형, 참수형, 요참형 등의 갖가지 사형의 형태 중에서도 반역죄 등 일급 중죄인에게 실시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송 때는 살을 뼈에서 발라낸다는 의미의 과형(剮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명나라 시대 형법의 기준이 된 법전인 대명률에서는 능지처사(凌遲處死)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식적인 형벌의 방식은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이었고, 그 중에서 사형의 방식은 여전히 참(斬)과 교(絞) 두 가지만 있었다는 점이다. 능지처사는 공식 형벌은 아니지만 특별 죄목에 대한 처벌방식으로서 개별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아래 단락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능지처사는 어지간히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시행되지 않았다.
원래 '능지'란 말은 힘을 안들이고 넘어갈 수 있는 완만한 언덕을 가리키는데, 이 말이 사람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는 뜻으로 변주되어 이 형벌의 명칭으로 굳어버렸다고 하거나 혹은 요에서 시행되던 형벌이 송대에 수입되면서 원래 있었던 단어인 '능지'로 음차되었다는 설도 있다. 별칭으로 백각형(百刻刑), 또는 살천도(殺千刀)라고 하는데, 이는 백 번, 천 번 칼질하여 죽이는 형벌이란 뜻이다.
흔히 한국에선 죄인의 팔다리를 말이나 소 등에 묶고 각 방향으로 달리게 하여 사지를 찢는 형벌을 능지처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형벌은 거열형(車裂刑)으로 본래 엄연히 다른 형벌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능지형으로 판결이 나와도 대신 거열형을 집행했고 이것도 그리 흔하지는 않아 대부분 참형에 처한 뒤 거열형에 처하듯이 사지를 절단하는 형태가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오해할 만 하다. 원래 능지처참이라는 말은, 능지형과 참형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는 책형이라는 형벌이 있었는데 이건 어떻게든 사람을 찢어죽이면 되는 거라 능지형도 거열형도 책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책형은 사형된 시체를 대중에 공개하는 기시의 의미로도 쓰인다.
참고로 날카로운 칼로 살을 발라내는 형벌은 중국이 원조(?)는 아니다. 아주 일찍이 고대 아시리아에서도 그 사례가 있었고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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