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서 부치는 선지식의 편지
5. 고려 혜심 스님이 최우에게
앞서 설명한 공안(公案)이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지 자세히 참구해 보십시오. 무릇 남의 지도를 받거나 혹은 스스로 공부해 무엇인가를 얻더라도 그것을 보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꺼번에 놓아버리되, 놓아 버릴 것이 없는 데서 다시 놓아 버리십시오. 마치 밑 빠진 통에 한 방울의 물도 없이 당장에 말라 터진 것같이 (모든 집착과 번뇌를 끊게) 된 뒤에야 참된 깨우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침내 걸림이 없어야 생사의 바다에 드나들면서 중생을 건질 수도 있습니다. 부디 정진하고 정진하십시오.
(그대와 나는) 외모나 복식은 다르지만 깨달음을 바라는 것이 같기에 조정과 재야가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불연으로 맺어진 이웃입니다. 항상 눈앞에 대하는 듯이 하여 천리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간과 출세간, 더러움과 깨끗함, 선과 악 등에 대해 취하고 버리거나 사랑하고 미워함이 없으면 자연히 얽매임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일정한 경계가 없고 성인이 시비분별을 떠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고려 진각국사 무의자 혜심(慧諶, 1178∼1234) 스님이 훗날 무신정권 집권자였던 최우(崔瑀, ?∼1249)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스님은 최우가 “만일 화상의 훌륭한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영원히 불지옥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었을 것이니 그 때를 당해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은 그나마 이전의 헛된 욕심이 버리게 됐으니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수어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습니다”라며 법어를 요청해 온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스님은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이자 『선문염송』의 저자답게 장문의 편지를 통해 여러 경전과 선사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어떻게 화두참구를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참선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단박 깨우치면 한 마음의 법계가 환히 밝아지고 한량없는 이치의 문이 열림을 강조하고 있다. 또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 많은 백성들이 최우에 대해 대단히 칭송하고 있으며, 이는 불교를 공부한 덕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있다.
스님은 참선수행을 올곧게 하면 백성들을 저절로 따라올 것과 함께 초발심을 유지해 계속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혜심 스님이 최우를 만난 것은 지눌(1158∼1210) 스님이 입적하기 몇 해전인 1207년으로 추정된다.
수선사(현 송광사 전신) 중창불사가 마무리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중창기의 글씨를 쓴 인물이 바로 당대 명필로 소문이 자자했던 최우였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수선사와 인연을 맺은 최우는 1210년 혜심 스님이 제2대 사주로 취임한 이후 본격적인 정혜결사운동에 참여하는 등 마음의 스승으로 스님을 모시기 시작했다.
1219년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별감에 오른 최우는 자신의 재산 상당부분을 임금에게 헌납하고 아버지가 빼앗았던 땅들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등 백성의 인심을 돌리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최우는 동시에 스님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차, 향, 약, 법복 등을 보시했으며, 나중에는 두 아들 만종, 만전을 스님에게 보내 삭발케 했다.
혜심 스님과 최우의 관계가 아름다운 것은 몽고의 침략과 정치적 분열이라는 외우내환의 격동기를 살아가면서도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선 이상을 넘으려 하지 않았고, 제자는 스승의 뜻을 굳이 어겨가며 불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을 자제했다는 점이다.
이는 스님이 최우의 수차례 서울 초청을 거절하는 등 정치세력과의 밀착을 거부하고 오직 선풍(禪風) 진작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과 최우의 백성을 위한 정책 및 팔만대장경 경판 조성 불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스님의 편지를 비롯해 법어 등은 『진각국사어록』에 수록돼 있다.
6. 日 니치렌 스님이 토키 씨에게
법화경을 홍포했다고 문책을 당한 것은 내가 법화경을 확고히 믿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달은 기울어야 차고 바다는 썰물 뒤 만조가 됩니다. 머지 않아 옳고 그름이 분명히 드러나겠지요. 이 어찌 한탄할 일이겠습니까.
무사시현 군수에게 끌려가 13일 가마쿠라를 거쳐 사도 땅에 유배됐습니다. 지금은 혼마에 갇혀있고 앞으로도 4∼5일은 더 이곳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그대의 슬픔과 안타까움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 자신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결코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참수되지 않은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 법화경을 위해 과거에 목이 베어졌다면 이런 하찮은 처지에 머무르는 신세도 되지 않았겠지요. 법화경에는 말법시대에 이 경전을 널리 전하려는 자는 그 때문에 추방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으로 죄를 소멸하고 마침내 성불하게 되는지라 지금의 난관들은 오히려 크게 경사로운 일인 것입니다.일본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니치렌(日蓮, 1222∼1282) 스님. 일련정종(日蓮正宗)의 개조인 스님은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던 때인 1271년 9월 12일 독실한 신도였던 토키조닌(富木常忍) 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펴다가 기성종교와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혀 언제 참수형을 당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스님을 뒤따르던 수많은 신도들은 당황했으나 스님은 태연했다. 오히려 편지를 통해 스님은 자신이 체포된 경위와 법난에 의해 숙세에 지은 악업이 소멸되는 것이라고 지도하고 있다. 또 법화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강조하고 자신을 위해 근심하지 말 것도 함께 당부하고 있다.
니치렌 스님은 일본불교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로, 1222년 2월 일본 나가사군 도죠지방의 바닷가 마을인 고미나토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야 했던 스님은 12세 때 천태종의 명찰인 세이초사(淸澄寺)에 맡겨져 불교를 공부, 16세 때 정식 스님이 됐다. 이후 가마쿠라, 히에이산 등 여러 지역에서 진언종과 선, 정토종의 교리를 배운 후 자신의 사색과 체험을 통해 법화경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불교를 선언하고 마침내 1253년 개종(開宗)을 선언했다.
스님은 법화경지상주의적인 사상을 통해 개인의 구제뿐 아니라 사회·국가의 전체적인 구제라는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만큼 기존의 승단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염불은 무간지옥(念佛無間)의 길이고 선은 천마의 길이며(禪天魔), 진언은 나라를 망치고(眞言亡國), 계율의 나라의 도적(律國賊)”이라 하여 모든 불교를 철저히 배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수행과 해탈이라는 불교의 목적대신 권력에 영합하는 기존의 불교계에 대한 경고였다.
이러한 그의 언행은 곧바로 여타 불교종파와 막부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긴 고난의 세월을 걷게 된다. 더욱이 사람들이 법화신앙으로 회귀하지 않는다면 내란이나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임을 거듭된 유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1268년 때마침 몽고의 일본정벌계획이 가시화되면서 스님은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1271년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참수의 명령이 떨어지지만 불가사의하게도 커다란 광채가 출현하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고 전한다.
어쨌든 위의 편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스님은 1282년 61세의 나이로 입적하기까지 법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살았던 실천하는 불교인이었다.
그러나 ‘회통불교’를 강조하는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연유야 어쨌든 니치렌 스님의 독선적인 주장과 행동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정법수호를 위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후대 불교인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재 스님의 편지는 일본 릿쇼대에서 펴낸 『昭和定本日蓮聖人遺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편지자료는 일본 불교대학의 원익선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은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잡보잠경)
비록 부지런하더라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동쪽으로 가려고 하지만
서쪽으로 향하는 사람과 같다.
(발심수행장)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자기의 이목으로 삼아라.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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