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서 부치는 선지식의 편지
3. 고려 의천 스님이 宋 정원법사에게
의천이 생각하옵건대, 강산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늘에서 바늘을 떨어뜨려 겨자씨를 맞히듯 극히 드문 인연이 있었기에 고려에 있을 때부터 한 몸처럼 생각해주는 스님의 은덕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은 절강성에 와서 그 같은 은혜를 다시 입으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 만큼 기꺼우며, 말세의 법을 중흥할 것을 서원하며 스님을 따라서 전등(傳燈)을 돕겠습니다.
스님의 덕을 사모하여 귀의할 바를 알게 되니 지극히 경사스럽고 뛸 듯하며 감격스런 마음을 누를 길 없습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한결같이 구법(求法)과 전등(傳燈)을 위해 살았던 대각국사 의천(1055~1101) 스님. 11세에 출가자의 길을 선택해 불교경전은 물론 제자백가의 사상 및 역사서에 이르기까지 학문에만 전념하던 스님이 송나라로 구법여행을 떠난 것은 그의 나이 31세 때인 1085년 4월이었다.
당시 중국의 대학승이었던 정원법사(1011~1088)와 편지로 교류를 하던 스님은 왕과 어머니의 만류를 뒤로한 채 결국 송나라로 떠났다. 19세에 이미 “동아시아에 흩어져있는 불서들을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스님을 왕명이나 모정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님은 그 옛날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았던 신라의 구법승들처럼 수만리 험난한 길을 오로지 배움을 열정으로 헤쳐나갔다. 그렇게 한 달여 뱃길 끝에 송 판교진에 도착한 스님은 당시 수도였던 변경에서 황제 철종을 만나 입국하게 된 경위를 밝혔고 황제는 선뜻 고승들을 소개해 주었다.
스님은 황제의 든든한 후원 속에 화엄학의 대가였던 유성법사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에게서 교학을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 만난 종본 선사가 갓 서른을 넘긴 스님을 일컬어 “이 세상 그 누가 만리의 높은 파도 타고, 불법 위해 몸 잊고 선재를 본받았던가? 생각건대 염부제에서는 참으로 희유한 일, 마치 우담바라가 불 속에서 핀 것 같네”라고 칭송한 것도 스님의 삼장(三藏)에 대한 박식함과 남다른 구도 열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변경에서 몇 달을 보낸 스님은 항주로 발길을 돌려 드디어 영원한 마음의 스승 정원법사를 만난다. 이역만리 먼 땅에서 편지만 교류하다 실제 만나게 된 스승과 제자의 감회야 오죽했을까. 스승 정원법사는 고려 승통에 대한 예를 갖추며 아침저녁으로 화엄의 정수를 전하려 갖은 애를 썼고, 제자 의천은 그런 스승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하나를 들으면 열을이해해 나갔다. 그렇게 어느덧 반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스승은 마침내 이국의 젊은 승려에게 화엄교의 정수를 전달해주었다.
이 편지는 의천 스님이 나루터까지 배웅 나온 늙은 스승을 떠나오며 보낸 것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이 글에는 스승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불법을 후세에 잇겠다는 야무진 서원, 그리고 무엇보다 스님의 구도열정이 행간마다 고스란히 묻어난다.
14개월의 구법여행 동안 50여 명의 선지식과 교유하고 3000여 권의 불서를 구해 본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이후에도 정원법사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특히 의천 스님은 정원법사가 머물던 혜인사에 화엄교장 설치를 위한 관련서적과 경비를 지원하는 등 화엄중흥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나라 말 폐불사건으로 인해 쇠락의 길에 들어선 교학이 다시 부흥하기를 바라는 마음 외에도 어쩌면 자신에게 참된 길을 일러준 스승에 대한 보은의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의천 스님은 편지에서 정원법사에게 약속하고 있듯 20여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동아시아 첫 장소(章疎)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간행해 불학연구의 토대를 다졌으며, 천태종을 개창해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정원법사가 답장에서 의천 스님의 구법정신을 부처님에 비교해 칭송하고 있듯 스님은 그렇게 잇따른 과로로 병을 얻어 47세의 나이로 입적할 때까지 한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은 것이다.
현재 『대각국사문집』에는 의천 스님의 보냈던 편지들을 비롯해 정원법사 등이 보낸 편지가 수록돼 있다.
4. 송 대혜 스님이 증시랑에게
"보내온 편지를 꼼꼼히 읽어보니 일상생활 가운데에 (수행이) 잠시도 끊이질 않아 공적인 일과 번잡한 용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는구려. 세간의 시끄럽고 잡다한 일들 가운데에 항상 스스로 더욱더 성찰하여 자못 게으르지 않을뿐더러 도를 향한 마음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견고해짐을 알았으니, 이 산승의 마음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번뇌는 불처럼 치열하게 타오르는 것이니, 어느 때 끝나길 기다리리요. 다만 시끄러운 가운데 있더라도 마땅히 대나무로 만든 좌판과 창포로 만든 방석 위의 일을 잊지 말아야 하오. 평소에 마음을 아주 고요한 곳에 머물게 하는 것은 단지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사용하기 위할 뿐임을 잊어서는 안되오. 시끄러운 가운데 힘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일찍이 고요한 가운데 있어서 공부를 짓지 않음과 똑같습니다."
중국 보리달마 스님에 의해 싹튼 중국 선(禪)불교는 육조 혜능 스님에 이르러 만개한다. 그의 문하에 청원행사, 남악회양, 영가현각, 남양혜충, 하택신회 스님 등 선불교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되고 이들에 의해 선은 가뭄에 들불 번지듯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즉 석두희천, 마조도일, 백장회해, 남전보원, 황벽희운, 위산영우, 조주종심, 용담숭신, 덕산선감 동산양개, 앙산혜적, 임제의현, 설봉의존, 운문문언, 법안문익 등 걸출한 선승들에 의해 선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흐르지 않는 것은 썩을 수밖에 없고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를 애써 저어 오르려는 노력 없이는 퇴보란 불가피하다.
이는 살불살조(殺佛殺祖) 가풍의 선불교도 예외일 수 없었다. 선은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면서 선의 요체를 직접 체득하기보다는 입으로만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구두선의 폐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또 동산양개 스님에 의해 시작된 조동종은 굉지 정각 스님에 이르러 임제선풍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다.
선불교의 중흥조이자 간화선 체계를 확립한 대혜(大慧宗 , 1089∼1163) 스님의 시대적인 고민과 사명감은 이로부터 기인한다. 임제선 계통의 선사이며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극근 스님의 제자였던 대혜 스님은 그 옛날 임제 선사가 그러했듯이 인간이란 어떠한 사물에도 어떠한 사람에게도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서만 참 삶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까닭에 대혜 스님은 그토록 존경했던 스승 원오극근 스님의 저술을 손수 불태우며 스승이 마지막으로 부촉했던 올바른 선수행법을 보급할 것을 서원했다.
송, 요, 금의 대립과 갈등으로 전란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대혜 스님은 바른 수행법의 보급만이 불교를 중흥시키고 참나를 깨닫도록 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세간법과 불법이 하나이며 승속을 가리지 않고 각자 사회적 본분을 실행하는 그 장소가 바로 깨달음의 도량이라 외치며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부응하는 선수행법으로 간화선을 주창했던 것이다.
모함에 의해 의발과 계첩을 체탈당하고 16년 간의 긴 유배생활을 보내야 했던 스님이지만 이러한 외부적인 조건은 더 이상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스님은 송나라말 고위관직에 있는 사대부들이 편지로 법을 물어오면 선의 요체와 수행방법에 대해 법문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수행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그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정성스럽게 지도했다.1134년 대혜 스님이 증시랑에게 보낸 것도 이러한 여러 편지 중의 하나다. 스님은 증시랑을 가르치기 위해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자유자재로 이끌어 오는 한편 팔만대장경 속의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들을 거침없이 활용하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지도했다. 특히 스님은 '무(無)'자 공안은 '생사의심을 부수는 칼'이며 '수많은 나쁜 지식을 꺾는 무기로서 모든 공안 가운데 가장 간명하고 날카로운 조사방편으로 제시했다.이런 탓에 스님의 편지 62편이 담긴 『서장』은 조선 초부터 지금까지 전통강원의 교재로 읽혀오고 있으며, 사교입선이나 불립문자를 지향하는 선방수좌들의 바랑에서 빠지지 않은 필수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사귀거나 따른다.
자기의 이익만을 아는 자의 마음은 깨끗하지 않은 추한 사람이니
무쏘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숫타니파타)
열매를 얻으려거든 씨를 뿌려라.
선을 심으면 복을 얻고 악을 심으면 재앙을 얻는다.
종자를 심지 않고는 과실을 얻지 못하나니 그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면
복은 스스로 그 몸에 돌아올 것이다.
(견의경)
몸은 달라도 마음이 같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몸은 같으나 마음이 다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불경)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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