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용 /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필자는 이론물리학자로서, 현재 카이스트의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나노’ 기술이나 ’반도체’ 기술이 아닌 문화기술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낯설게 받아들이는 분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러나 20세기 양자물리학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관찰했듯이 예술도 빛, 소리와 같은 자연 물체를 통해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곱씹어보면, 물리학자가 문화를 연구한다는 사실을 새삼 특이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물론 과학과 문화처럼 보통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분야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융합과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전에 "아, 핵융합을 연구하시는군요."라는 말을 듣던 때보다는 많이 변했지만.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게 과학기술을 기초로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물리학자는 물리학자대로, 음악학자는 음악학자대로, 계산공학자는 계산공학자대로 자신의 전문지식을 갖고 ‘문화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우리 대학원의 일상인데, 학교의 경계를 벗어나 실제로 문화 창작활동 영역에 들어가 협력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은 웹저널 <크로스로드>의 ‘APCTP 플라자’ 코너를 통하여 필자가 6개월 동안 초보 '건축가’가 되어 과학과 문화의 접점을 체험했던 기억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필자는 과학-건축-예술 분야의 3인이 공동으로 건축물을 만들어보는 '에뉴알레’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건축이라는 분야에 대해 평소에 관심은 있었으나 실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과연 내가 어떤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과학과 문화의 융합이라는 제목만 달고 있다면 일단 달려가서 부딪혀보는 것도 좋겠다는 패기 하나로 참여를 승낙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에는 우리 대학원에서 한 차례 콜로키움 연사로 모셨던, <건축학개론>의 건축을 담당했던 건축가가 해주셨던 말도 영향을 미쳤다. 바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건축가를 등장시키기 좋아하는 이유가, 건축가는 평일 대낮에 숲 속이나 섬에 갖다 놓아도 어색하지 않은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건축 일로 갔다고 하면 시청자와 관객에게 모든 게 용납이 될 테니 말이다(글 마지막에 이에 대한 나만의 결론을 적어놓았다). 또한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마음먹었던 때, 물리학과 천문학이 함께 있는 대학원에서 자기들 학교에 와서 천문학을 전공하면 공기 맑은 산에 올라가 별을 보며 연구할 수 있다고 하는 유혹에 며칠 고민을 했던 기억도 났다. 결국 원래 전공인 물리학을 선택함으로써 지금까지 쭉 컴퓨터 화면과 하루 종일 씨름하게 된 현실 때문에, 그 때 가지 못한 길을 잠시라도 느껴볼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시작한 '에뉴알레' 프로젝트의 주제는 바로 '제주도에 어울리는 융합설치미술’이었다. 필자와 건축가(국형걸님), 조각가(전병삼님) 세 사람으로 구성된 팀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하여 제주도를 방문한 뒤 제주도가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리게 한 세 가지 가운데 '돌’을 소재로 삼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제주도라는 섬 자체가 먼 옛날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처에 널린 현무암에 잘 녹아드는 건축물을 만들어 인공과 자연이 하나 되는 장면을 연출해보자는 것이었다.
현무암을 건축으로 표현하는 첫 단계는 현무암의 모양을 특징짓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玄武巖’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무암은 잿빛에 가까운 검은색의 돌이다. 용암이 화산에서 분출되었을 때 용암에 가해지는 압력이 낮아지며 그 안에 녹아있던 기체들이 분리되면서(콜라 병을 따면 공기방울이 터져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방울을 생성하게 되는데, 탈출하기 전에 용암이 굳어버리면서 기체 방울들이 있던 자리가 구멍이 송송 난 듯하게 보이는 현무암의 특징적인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성되는 기체 방울의 크기는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크기와 위치가 모두 다른 문양을 지니게 된다
돌과 함께 제주도에 많기로 유명한 또 하나가 바람이니, 오랜 시간 제주도의 바람을 맞아 약간 비규칙적으로 둥그렇게 풍화되고 그 표면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원들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는 인공 현무암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였다.
이후 몇 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구체적인 설계도면을 도출한 뒤 실제로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건축 작업의 기초를 전혀 잘 알지 못했던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사실 문화를 연구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그 때까지 결국 나와 비슷한 전문지식을 가진 특정 독자층에게 읽히기 위한 연구 논문 작성에만 익숙해져 있던 현실에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이며 이 설치 건축물을 감상할 제주도 올레길의 일반 관광객과 소통할 경험과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하지만 무릇 융합이란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이것도 하나의 배움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틈틈이 현대 기하학 건축의 대가라고 알려진 프라이 오토(Frei Otto)와 같은 건축가들의 작업에 대한 공부를 하며 조금이라도 소양을 넓혀보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것을 느꼈다. 우리 팀이 기획중이던 현무암 건축물은 모두 다르게 생긴 80여개의 평면 다각형 조각(메쉬mesh라고도 하며, 나중에 이들이 3차원적으로 연결되어 건축물의 표면을 이룬다)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메쉬들 각각에 다양한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려 넣는 과정이 대단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메쉬의 어느 부분에 어떤 크기의 원을 넣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어렵거니와(사람의 머릿속에서 난수를 발생시키는 매우 어려운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긴긴 시간을 들여 한 가지를 완성한다 하더라도 내내 '이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기 때문에 같은 조각에 여러 개의 문양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는 문제가 남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손으로 그리는 속도로는 프로젝트 기한을 도저히 맞출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필자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첫째, 사람이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므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둘째, 컴퓨터란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말했듯 단순 작업을 대단히 빠르게 반복하는 기계이므로 문양 발생 과정을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구성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메쉬에 새로운 원을 추가할 때 만족해야 할 다음의 조건 두 가지를 천명했다
(1) 새로운 원은 기존의 원과 겹치지 않아야 한다.
(2) 새로운 원은 위 조건을 만족하는 한 임의의 위치와 크기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무 원 안에도 속하지 않은 점을 잡아서 새로운 원의 중심으로 삼고 다른 원과 겹치지 않도록 반지름을 정한 뒤 그려 넣는(컴퓨터 코드라는 게 원래 이렇게 무미건조하다) 알고리즘을 만든 뒤 필자가 소지하던 일반적인 성능의 랩톱으로 돌려보니 전체 메쉬의 표면 디자인을 한 번 만들어내는 데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메쉬 한 장을 완성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보다 약 4000배 빠른 속력이었다. 우리는 이 속력을 이용해 많은 문양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 뒤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아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기술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판단에) 아름다운 결과물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을 뿐 대신 판단해주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마도 영원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람이 혼자서는 하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 또한 사실인데, 이 때 필자는 학창시절 주의 깊게 읽었던 "Thinking the Unthinkable(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라는 논문을 떠올렸다. 미국의 통계학자인 브래들리 에프론(Bradley Efron)이 쓴 이 논문의 요지는, 인간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연산능력을 지닌 컴퓨터에 힘입어 과거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가능해졌다는, 인간 활동의 영역이 한층 넓어졌음을 알리는 소박한(얼핏 읽어보면 상당히 건조한 학술논문이다) 선언문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역작이다.
학창 시절에 이러한 논문에서 배운 사고방식이 생각지 못한 영역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내게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 아르코 미술관에서 나의 이름이 나온 전시회도 갖고), 제주도의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하루종일 렌치를 들고 미술품을 조립하는 특이한 경험도
(사진, 맨 오른쪽이 필자. 작업은 해가 진 한밤중까지 계속되었다)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메쉬들을 하나하나 나사로 연결한 뒤 마지막으로 제일 큰 녀석을(우리는 그걸 crown, 왕관이라 불렀다) 올려 완성할 즈음, 제주 올레길을 걷던 한 관광객이 가까이 오시더니 "멀리서 보니 돌멩이 같더라" 하고 말씀 주셨다. 설계도 안에서만 존재하던 그림이 실제 세상에 자리를 잡고 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그리고 제주도 방언으로 쉬어가는 돌자리를 뜻하는 "팡돌"로부터 "팡도라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녀석은 사람들에게 작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건축이라는 분야의 매력을 생애 최초로 실감할 수 있었다.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경험은 필자에게 과학을 기반으로 한 융합 창작에 대한 많은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음에는 길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전문 지식과 사고방식을 사용할 기회를 부단히 찾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능력을 기르려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라는 직업에 한정하여 받은 교훈으로, 건축가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평일 어느 장소에 있든 어색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설계도만 들고 현장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멋지게 지시를 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들고 싶다. 건축가는 추운 제주도 1월 바람을 맞으며 직접 나사를 체결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러한 고생이 있었기에 마지막 완성의 순간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이라고 믿는다. 융합의 낭만은 멋지고 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고 힘들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
(팡도라네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1길 35-24 앞, 올레길 20코스 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POSCO의 후원으로 완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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