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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20 21:32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닌 양반 집안 출신의 광대
 글쓴이 : 흰두루미
 



고수 김명환 명인은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닌 양반 집안 출신의 광대입니다.

그는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무창리에서 만석꾼부자인 김용현의 막내아들로 1913년에 태어났습니다. 옥과보통학교를 나오고 동경에 있는 고세이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부잣집 막내도련님으로 호사를 하며 살았을뿐,국악과는 전혀 인연을 맺지 않았습니다. 13781D184BDC4FCA5E.jpg


그러다가 17살이 되었을 때 능주에 사는 조금안이란 색시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처갓집에 놀러 갔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일이 북을 배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놀이판이 벌어졌는데 저마다 소리도 허고 북도 침서 노는디 나보고 북을 쳐보라고 헌단 말이여. 못 친다고 혔더니 바보 같은 사람이 북도 못치냐고 놀려먹드란 말여. 그리서 두고보자 내가 너희들보다 북을 잘 치고 말 것이다. 허고 선생을 찾아서 북을 배운 게 평생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 내 신세를 그르칠라고 그런 것이제. 공부나 착실히 했더라면 지금쯤 박사나 교수나 그런 것이 됐을틴디 그놈의 북에 미쳐 갖고 불효막심하게 이 모양 이 신세가 되고 말았어.”

불효막심한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는 그 길로 옥과에 살고 있던 장판개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장판개 선생은 얼굴이 살짝 얽었었는디 북으로나 소리로나 당대 명인이었어. 그때 마흔도 넘은 양반이 내가 가면 서방님 왔다고 존대를 깎듯이 하면서 북을 가르쳐 줬지. 나는 양반의 자식이고 자기는 광대니, 그때는 그 차이가 옛날 미국에서 백인하고 흑인 차이 나듯이 차이가 났응게. 그런디 치면 칠수록 북이 재미가 나. 그리서 어디에 유명한 선생이 있다 하면 몇 백리라도 찾아 가. 돈을 얼마든지 써서라도 배워와야 직성이 풀리지 안 그러면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뎌.”

부잣집 서방님이었기에 가능했던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는 고흥의 오성삼, 곡성의 신찬문, 능주의 주봉현과 같은 이름 높은 고수들을 만나 북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혼자서 연습을 할 수 있지만 북은 소리 없이 혼자서 연습이 안 됩니다. 

소리꾼들을 따라다니면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름난 소리꾼들은 초보 고수한테 여간해서 소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식 대접하고 돈을 주어 가면서 소리를 청하고 그 대가로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20살이 되었을 때는 서울에 올라가 '조선 성악 연구소'에서 명창들의 소리판에 끼어 북가락을 익혔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녀. 아직 미숙한 솜씬디 누가 소리를 해줄라고 허간디? 그 덕에 돈이 많이 깨졌지. 어찌됐든 송만갑, 이동백 같은 대명창들의 북을 쳐 본 사람으로 지금껏 살아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이렇듯 저돌적으로 북에 매달린 탓에 서울 온 지 얼마 뒤에 북 잘 치는 부자 한량이 나타났다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난 바둑도 못 두고 장기도 못 두고 화투도 못 허고 마작도 못혀. 돈 있는 집 자식들이 대개 술과 노름과 계집질에 가산을 탕진허는디 나는 오로지 북 때문에 탕진헌 사람이여. 내 평생에 죄라면 북 친다고 자식 노릇 못 허고 부모 노릇 못 허고 재산 다 날린 죄밖에 없네. 내가 죄인은 큰 죄인이지.”

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눈빛은 열정으로 빛났습니다. 그러나 고생담을 이야기할 때는 금새 슬픔에 가득찬 충혈된 눈빛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북에 미쳐서 그 고생을 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지. 그래서 뼈저린 지난 날을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불이 일어나. 해방되고 마누라가 병으로 죽으면서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지.”

그 전부터도 가세는 기울고 있었지만 만석꾼이라 불리던 부잣집이라서 남보기에는 번듯했는데 해방이 되자 형이 친일파로 몰려 가산을 몰수 당하고 사방에서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조카가 반란군에 잡혀갔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큰아들이 월북하는 통에 한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른 놈들은 친일하고도 잘만 사는디 우리 집안은 쑥밭이 되도록 당했어. 그래도 나는 북치고 노래부르는 거 밖에는 모르는 놈이라고 봐줘서 변은 안 당했어. 마누라 죽고, 조카 잡혀가고, 큰아들 북으로 가서 소식을 모르고, 가산은 다 날려서 파산선고를 해버리고, 수중에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살아 갈 길은 막막허고 미치것대. 그때 누가 아편을 허면 고통이 잊어진다고 그려. 그리서 아편을 시작혔지. 내가 그 아편 때느라고 고생헌 생각을 허면 지금도 치가 떨려.”

딸 둘을 여동생 집에 맡기고 이집 저집 떠돌아 다니며 돈을 얻어서 아편 주사 맞고 구걸하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그를 보고 모두들 폐인이 됐다고 하며 멀리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지 예술이 훌륭해. 내가 살아난 것이 예술 덕분이여. 아편을 하고 남들이 나를 페인 취급하니까 내 속에서 오기가 생기더란 말여. 내가 이대로 죽어서는 안되지. 내가 알고 있는 북가락이 내가 죽으면 끝나는 것 아니냐. 어찌됐든 살아야겠다. 이렇게 독허게 마음을 먹고 딱 끊었지.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내가 오죽 허면 몸을 칼로 북북 그어버렸겄어. 아편 생각이 날 때마다 이런 놈은 죽어야 된다고 칼로 그었어. 그 흉터 자국이 지금도 있어. 내가 지금도 광주에 가면 대접을 받네. 북 잘 치는 고수로서가 아니라 아편쟁이가 아편 끊고 장수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그 일로 대접을 받아. 다른 아편쟁이는 다 병 나서 죽었어. 그러니 내가 무서운 놈은 무서운 놈이여.”

무서운 오기로 아편을 끊은 뒤 그는 보성에 살던 정응민 명창 집에 몇 년 간 기거하면서 북을 치다가 쉰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방에서 떠돌아다니기만 하다가는 영영 잊혀버린 사람이 될 것 같아 어찌됐든 서울의 국악계에서 인정을 받을 결심이었습니다.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지내 던 중, 판소리와 가야금산조의 명인인 함동정월을 만나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썩은 나무토막도 불붙일 만큼’ 예술적 열정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그는 그녀의 음악성에 탄복하여 하루종일 북을 치며 가야금 산조를 연습시켰습니다. 예술을 통해 두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곤궁한 현실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새까만 후배들이 ‘철조망’을 쳐 놓고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아 한동안은 국악계 주변을 서성거리며 지내야 했습니다.

“같은 광대 출신이 아니라 ‘한량북’이라며 무시를 했어. 참 설움 많이 받았고만. 그런디 돌아가신 박녹주 명창허고 김여란 명창이 내 북을 지지혔지. 내 북 아니면 소리헐 맛이 안 난다고 말여. 그때부터 뚫고 들어갔지.”

그처럼 남다른 고통과 남모르는 설움을 겪으면서 ‘뚫고 들어 간’ 북이기에 그의 북에는 다른 고수들의 북과 달리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국민학생 소리를 허면 북도 국민학생 북이 나오고 대학원생 소리를 허면 북도 대학원생 북이 나오는 법이여. 나는 대학원 북을 쳐야 것는디 국민학생 소리를 허면 북칠 기분이 나것능가? 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와야 추임새도 나와. 그래서 추임새를 여간해서 안했더니 소리꾼들이 싫어해. 그리서 안 좋아도 ‘좋다!’ 허고 추임새를 해 주지. 돈을 받아야 헝게. 그래도 속으로는 즐겁지가 않지. 어쨌든 북 치는 사람은 언제 적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허고 정신무장을 단단히 허고 적을 봐야 혀.”

소리꾼을 적으로 딱 정해놓고 북을 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몸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고, 소리꾼을 쏘아보는 그의 눈초리는 독수리 눈처럼 매서웁습니다.

마치 소리꾼하고 자기하고 둘만 있다는 듯이, 둘이서 생사를 건 한 판 싸움을 벌여 보자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북을 칩니다. 그처럼 서슬이 시퍼런 북 앞에서는 아무나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와 죽이 맞는 소리꾼은 한정되어 있고, 그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꾼의 북만 치려고 했습니다.

‘강한 자 한티는 적이 많은 법잉게 그런 것을 두려워허지는 않어. 다만 욕을 허는 만큼 실력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가 나왔으면 좋겠어. 누가 나를 이겨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무릎을 꿇고 배우지. 정말 좋은 소리 좀 들어 봤으면 좋겠어. 그런디 인제는 그런 소리 듣기는 틀렸어. 인제 판소리는 죽었어.“

그렇듯 딱 잘라 말하는 성격 때문에 인심 잃고 따돌림 받으며 사방팔방에서 비난의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내가 한동안 소리 평론가 노릇을 하는 통에 미움을 많이 받았지. 그래도 헐 말은 해야 되는 성질인디 어쩔 것인가? 예전 선생님들의 소리에 비하면 요새 소리는 소리라고 할 수도 없어. 내가 이런 말 허면 소리꾼들이 전부 나를 죽일라고 헐 것이지만 사실인디 어쩔 것이여. 북도 마찬가지여. 요즘 북치네 허는 사람치고 '음양(陰陽)' 알고 북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북이란 것이 자세, 수법, 음양, 강약에 모두 법도와 이치가 있는 법인디 예전 선생님들은 그걸 맞게 쳤는디 지금은 그저 아무렇게나 치고는 다 명고수래. 이런 말을 자꾸 하고 사교술이 없어서 인심을 못 얻지만 그런 나를 왜 문화재시켜주나. 다 실력 때문이지.”

1978년에 판소리 고법문화재가 된 것이 오로지 실력 때문이었음을 주장하던 그의 실력 제일주의에는 실력 있는 사람의 자부심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놈이지만 아직도 북만 잡으면 나도 모를 힘이 난단 말이여. 그래도 한 가지 걱정은 있어. 내가 이러다 죽어버리면 내 뱃속에 있는 가락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 아니냐? 장지 종이에 들기름 쩔 듯이 꽉 쩔어 있는 이 북가락을 어느 놈한티 전해주고 죽느냐? 요새는 이것이 한 가지 근심이여.”

그는 오로지 북가락을 이어 줄 제자 근심을 하다가 결국 그 근심을 풀지 못한 채 1989년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출처: https://dreamnet21.tistory.com/350?category=165532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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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9-05-21 07:37
 
고수 김명환 명인은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닌 양반 집안 출신의 광대입니다.
겨울 19-05-21 07:40
 
소리꾼들을 따라다니면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름난 소리꾼들은 초보 고수한테 여간해서 소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식 대접하고 돈을 주어 가면서 소리를 청하고 그 대가로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겨울 19-05-21 07:43
 
그처럼 남다른 고통과 남모르는 설움을 겪으면서 ‘뚫고 들어 간’ 북이기에
그의 북에는 다른 고수들의 북과 달리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산백초 19-05-21 13:24
 
그러다가 17살이 되었을 때 능주에 사는 조금안이란 색시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처갓집에 놀러 갔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일이 북을 배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산백초 19-05-21 13:27
 
무서운 오기로 아편을 끊은 뒤 그는 보성에 살던 정응민 명창 집에 몇 년 간 기거하면서 북을 치다가 쉰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방에서 떠돌아다니기만 하다가는 영영 잊혀버린 사람이
될 것 같아 어찌됐든 서울의 국악계에서 인정을 받을 결심이었습니다.
산백초 19-05-21 13:29
 
그는 오로지 북가락을 이어 줄 제자 근심을 하다가 결국 그 근심을 풀지 못한 채 1989년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늘배움 19-05-21 19:21
 
부잣집 서방님이었기에 가능했던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는 고흥의 오성삼, 곡성의 신찬문, 능주의 주봉현과 같은
이름 높은 고수들을 만나 북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혼자서 연습을 할 수 있지만 북은 소리 없이 혼자서 연습이 안 됩니다.
늘배움 19-05-21 19:23
 
“내가 스스로 북에 미쳐서 그 고생을 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지. 그래서 뼈저린 지난 날을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불이 일어나. 해방되고 마누라가 병으로 죽으면서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지.”
늘배움 19-05-21 19:25
 
1978년에 판소리 고법문화재가 된 것이 오로지 실력 때문이었음을 주장하던
그의 실력 제일주의에는 실력 있는 사람의 자부심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수양버들 19-05-26 00:21
 
“난 바둑도 못 두고 장기도 못 두고 화투도 못 허고 마작도 못혀. 돈 있는 집 자식들이 대개 술과 노름과 계집질에 가산을 탕진허는디 나는 오로지 북 때문에 탕진헌 사람이여. 내 평생에 죄라면 북 친다고 자식 노릇 못 허고 부모 노릇 못 허고 재산 다 날린 죄밖에 없네. 내가 죄인은 큰 죄인이지.”
수양버들 19-05-26 00:25
 
요즘 북치네 허는 사람치고 '음양(陰陽)' 알고 북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북이란 것이 자세, 수법, 음양, 강약에 모두 법도와 이치가 있는 법인디 예전 선생님들은 그걸 맞게 쳤는디 지금은 그저 아무렇게나 치고는 다 명고수래. 이런 말을 자꾸 하고 사교술이 없어서 인심을 못 얻지만 그런 나를 왜 문화재시켜주나. 다 실력 때문이지.”
수양버들 19-05-26 00:25
 
1978년에 판소리 고법문화재가 된 것이 오로지 실력 때문이었음을 주장하던 그의 실력 제일주의에는 실력 있는 사람의 자부심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수양버들 19-05-26 00:26
 
그래도 한 가지 걱정은 있어. 내가 이러다 죽어버리면 내 뱃속에 있는 가락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 아니냐? 장지 종이에 들기름 쩔 듯이 꽉 쩔어 있는 이 북가락을 어느 놈한티 전해주고 죽느냐? 요새는 이것이 한 가지 근심이여.”



그는 오로지 북가락을 이어 줄 제자 근심을 하다가 결국 그 근심을 풀지 못한 채 1989년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선유도 19-05-29 04:48
 
<<고수 김명환 명인>>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닌 양반 집안 출신의 광대
선유도 19-05-29 04:58
 
...허고 선생을 찾아서 북을 배운 게

평생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
선유도 19-05-29 05:05
 
예전 선생님들의 소리에 비하면 요새 소리는 소리라고 할 수도 없어
사오리 19-06-10 05:09
 
지혜는 어리숙한 확률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흔들리는 이성과
섣부른 판단력에 의해서 잘못된 길로 빠져 드는 사람은 탐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기꾼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도 마
치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 아주 짧은 행복에 스스로 전율을 느낀
다. 그리곤 사기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탐욕을
합리화 한다. 그른 판단력이 만든 불행의 덫은 결국 스스로 만든
비극의 무덤이 된다. 어리석은 판단이 내린 방종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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