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도미니코회 수도자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었으며 철학자였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연금술로 물질이 변화해서 금이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럽에서 연금술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것은 15세기다. 이 시기 유럽의 모든 궁정에는 연금술사가 고용되거나 후원을 받으며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도서관마다 연금술 서적들을 수집하거나 필사하기 바빴다.
연금술이란 납을 금으로 바꾸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기술만이 아니다. 연금술에 이르는 지식의 근원은 물질과 정신 사이의 교류로부터 비롯하여, 우주와 인간과 물질을 하나의 원리로 보려는 엄청나게 보편적인 사상을 지향하고 있다. 연금술사들은 동물과 식물을 보듯이 광물을 보려고 했으므로, 광물도 고유의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살아있는 것이 그렇듯이 광물 역시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 금속을 가장 완전한 금속인 금으로 변성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데카르트와 같은 계몽주의자들이 나타나고, 근대 화학이 정립되면서, 차츰 연금술의 영역은 위축되어 갔다. 위대한 뉴턴까지도 연금술에 심취해 있기는 했지만, 돌턴 이후 원자의 개념이 화학에 자리 잡으면서 연금술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진짜로 원소를 다른 원소로 변하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최초의 연금술사는 영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다. 러더퍼드는 방사성 토륨이 방사선을 방출하고 나면 다른 원소로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물질의 기본 단위라고 생각했던 원자가 스스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연금술은 자연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성질이었던 셈이다. 몇 년 후 러더퍼드는 알파 방사선을 질소 기체에 쏘아서, 질소가 수소를 내놓으면서 산소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내, 인간의 힘으로 원자를 다른 원자로 변환하는 연금술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교는 핵물리학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1931년 버클리 대학교의 어니스트 로렌스가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하고 오늘날의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1950년대까지 버클리는 세계 최대의 가속기를 보유하고 핵물리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곳이었으며, 1940년에는 맥밀런이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원소인 원자번호 93번 넵투늄을 최초로 만들어냄으로써 인공 원소의 발견을 이끈 곳이기도 하다. 원소를 변성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창조”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연금술의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맥밀런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 관련 연구 때문에 학교를 떠나자, 동료였던 시보그는 맥밀런의 일을 이어받아 94번 원소를 분리해 내는데 성공했다. 우라늄은 천왕성에서, 넵투늄은 해왕성에서 딴 이름이었으므로 시보그는 자연스럽게 새 원소의 이름을 명왕성에서 가져와서 플루토늄이라 명명했다. 이는 또한 이 원소가 합성할 수 있는 마지막 원소일 것이라는 믿음도 담겨있었다.
플루토늄은 아주 특별한 원소임이 곧 밝혀졌다. 플루토늄은 초 우라늄 원소면서도 극히 안정되어 있어서 반감기가 무려 8천만년에 달하고,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플루토늄은 우라늄처럼 핵분열의 원료가 될 수 있다. 1945년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바로 플루토늄 탄이다. 플루토늄의 발견은 소장 학자였던 시보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시보그는 곧 전쟁 연구에 소환되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버클리로 돌아온 시보그는 새로운 원소를 합성시키는 연구를 계속했고, 이 분야에서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시보그와 버클리 연구팀은 95번 아메리슘, 96번 퀴리윰, 97번 버클륨, 98번 캘리포늄, 99번 아인슈타이늄, 100번 페르미윰, 101번 멘델레븀, 102번 노벨륨을 속속 발견해냈으며, 원소에 그들의 나라, 그들의 주, 그들의 도시 이름까지 붙이는 호사를 누렸다. 냉전 중에 러시아의 과학자인 멘델레프의 이름을 101번 원소에 붙인 것은 당시 버클리의 연구진이 얼마나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106번 시보귬을 포함해서 시보그가 발견에 관여한 원소는 무려 10개에 이르니, 시보그야 말로 역사상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할 만하다.
1961년 시보그는 원자력 위원회 의장 일을 맡아서 버클리를 떠나 워싱턴으로 떠났다. 남은 버클리 팀은 그 해 103번 로렌슘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버클리의 독주 시대는 거기까지였다. 1966년, 소련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두브나의 연합 핵 연구소에서 104번 원소를 만들어 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버클리 연구진은 발칵 뒤집혔고, 소련 팀의 결과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다. 버클리 팀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69년 독자적인 방법으로 104번 원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원소의 이름이 문제였다. JINR(구 소련,러시아합동핵연구소)의 연구진은 104번 원소에 소련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할 핵물리학자 쿠차토프의 이름을 붙여서 쿠차토븀이라고 불렀고 버클리에서는 러더퍼드의 이름을 따서 러더퍼듐이라고 명명했다. 이 논란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고, 1997년에야 국제 화학 연맹이 러더퍼듐을 공식 이름으로 선포했다.
한편 버클리에서 104번 원소를 만들기도 전인 1968년, 두브나 팀은 또다시 105번 원소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 원소에는 특히 많은 이름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는 닐스보어륨, 졸리오륨, 하늄 등이 있었다. 결국 IUPAC는 105번 원소는 두브나의 이름을 붙인 두브늄으로 결정한다. 이번에는 소련 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후 1974년 두브나와 버클리에서 거의 동시에 106번 원소를 만들자, 버클리 팀은 여기에 시보그의 이름을 따서 시보귬이라는 이름을 붙일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관철시켰다.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데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는데도 버클리가 시보귬을 고집한 것은 아마도 위기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제 버클리는 더 이상 선두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새로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독일의 과학자들이었다. 독일 다름슈타트의 중이온 연구소에서는 108번 하슘, 109번 마이트너륨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고, 이어서 110번 다름슈타튬, 111번 뢴트게늄, 112번 코페르니슘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이제 버클리는 완전히 밀려난 것으로 보였다.
불가리아 출신의 빅토르 니노프는 독일 다름쉬타트 대학에서 공부해서 199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노프는 GSI 연구팀에 합류해서,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의 전문가로서, 110번, 111번, 112번 원소를 만들어 내는데 참가해서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유명해졌다. 1996년 버클리는 전격적으로 니노프를 스카웃해서 다시금 무거운 원소 만들기 경쟁에 뛰어들 것을 선언했다.
원소번호 108번에서 114번까지의 원소들을 핵 과학자들은 “안정성의 섬”이라고 부른다. 이 원소들은 특별하게도 더 가벼운 원소들보다 오히려 더 안정된 상태로 존재해서 반감기가 더 길기 때문이다. 니노프가 버클리에 합류해서 연구하기로 한 것은 이 “섬”이었다. 니노프와 버클리의 멤버들은 2년에 걸쳐 무거운 원소를 구별해내는 장치를 새로 만들고 도전에 나섰다. 마침 1999년 초 폴란드 출신으로 버클리에 방문 중이던 스몰란처크 가 무거운 핵에 관한 새로운 이론적인 계산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그는 적당한 조건에서 크립톤으로 납 타깃을 때리는 방법으로 113번에서 117번을 건너뛰어 118번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1] 버클리 팀은 스몰란처크의 이론을 시험해 보기로 결정하고, 4월과 5월에 걸쳐 실험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