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한
방법론과 더불어 명확한 추진력을 갖춘 사람은 혁명가님밖에 없습니다.
춘치자명, 봄꿩이 스스로 울어 죽음을 재촉한다. 이 말은 방탕지기의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봄꿩이, 자기 주변의 상황에 아랑곳없이 철저히 자기주관적이며 유아기 본능적인 성질로 울어버림에 사냥꾼에게 노출되어 죽는다라는 말이다.
너도 나도 단주도 되고 싶고, 진인도 되고 싶고, 대두목이라 사기치는 교만과 사기가 판치는 요지경의 세상에 우리가 세상을 안다는것 즉, 매년 365일의 중첩적인 경험을 통해 철이 든다는것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때, 주변상황을 파악하여 내 자신이 언제 움직이고 멈추어 할지를 판단하는 고도의 인내심과 절제하는 지혜를 터득하는것이 곧 철이 드는것이며, 그것이 세상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의 첩경이다.
삶에 대한 이 지혜의 처세술이 어떻게 발휘되었는가에 따라 고대로부터 수많은 제왕영웅은 물론 수많은 범부의 인생을 살다 간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때로는 가슴속에 영원히 돌이키지 못할 회한을 남기고 죽어갔다. 사냥꾼이 돌아다니는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는 산마루에 어린 꿩이 주변의 음산한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고, 여지껏 해오던 습성으로 울어제끼면, 장차 닥칠 화액을 어떻게 피하겠으며 누굴 원망하겠는가.
교만과 혹세무민의 사기는 무지에서, 철부지에서 싹이 트는것이다. 인생도 이와 같다. 예로부터 흐르는 세월에 속절없이 도태되는 사람들이 제각각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려 온갖 몽상과 공상으로 천년을 살것처럼 자의에 의하던 타의에 의하던 부푼 희망과 이상에 도취되어 살아간다. 무한히 살것처럼 마음과 신경의 에너지를 쏟으며 정작 행동은 주어진 삶조차도 단축시키려 달려가는 모순의 삶은 어쩌면 타고난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뚜렷한 한계의 물리적 환경의 육체와 사방팔방 다차원의 몽상과 상상을 할수있는 영혼의 조합 자체가 영원히 경계를 가를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마냥, 인간의 운명을 숙명과도 같은 망망대해에 떠다니게 하는 조물주의 제1법칙인지도 모른다. 천지는 오직 시간이라는 재판관에 모든 것을 위임한채, 옳고 그름에 말이 없고, 그 누가 불편부당을 호소해도 말없이 지켜만 볼뿐이다.
문득 태어났다고 인생을 덤벙 덤벙, 혹은 뜬구름 걷듯 살지 말아야 하며 그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모두 제각각 제 인생의 제1주인은 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할 공명과 허명 욕망과 아집에 근거한 분별의 에너지를 쏟지 말고, 오직 절제된 이성과 나아가고 물러설줄 아는 지혜로, 오직 이타심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절규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촌각과도 같은 길고 짧음은 있을지라도 우리들보다 앞서 살다 간 인간들처럼 언젠가는 죽는다.
상제님 신앙사를 되돌아볼때 인간에게 있어 상제님의 진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것일까
개벽! 도통! 대두목! 상제님신앙인이 되면 왜 모두 다 근시안적이 되는가?
지금의 시대뿐 아니라, 백년전 상제님을 모신 성도님들도 그랬다. 상제님신앙사를 되돌아보건대 공든 탑도 개미 구멍에 무너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은 10년정성기간의 9년을 잘 보내고도 마지막 10년차에 평정심을 잃어 일을 그르치는 식으로 모두가 교만과 방심의 나태함으로 망하는게 인간지사이다. 그 교만과 방심, 나태함의 중심에 개벽이 있고, 도통이 있고 어설픈 대두목놀음이 있는 것이다.
天下紛?하여 自作死黨하니, 세상이 어지러운데 스스로 죽음의 무리를 지으니...(증산도 道典 6:98)
인간이 星霜의 세월을 넘기고 넘겨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망라하고 이 대우주 천체의 물리적 공간의 범위마저 관통하는 생명과 만물이 존재하는 원리와 변화의 이치를 터득하려는것인데 무엇 때문에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인류의 발걸음을 멈추고 현실적 욕망과 아둔함에 근거한 개벽, 도통, 대두목놀음에 열광하는가!
이 집단최면, 집단광기와 같은 신앙행태는 작게는 자신이 속한 상제님신앙조직을 병들게 하고 크게는 인류문명역사의 진보를 퇴보시키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무능력, 무책임, 무절제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의 극치일뿐이다.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께서 민중의 소박한 언어로 가리키는 지고지순한 방향을 향해 눈은 향하고 있지만, 손가락 발가락은 개벽시간이나 꼼지락거리고 언감생심 왕후장상이라는 젯밥과 대두목이라는 줄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실은 모두가 신앙의 사팔뜨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온통 개벽, 언제 개벽이 온다. 망둥이 꼴뚜기조차 내가 진인이다. 언제 개벽이 온다고 세상을 미혹하니, 역시 개벽에 솔깃한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자작사당을 이루는것이다. 물론 개벽현상은 상제님진리이지만 개벽이 없으면 신앙을 안할 태세인가?
언제까지 누가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것을 먹기보다 내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고 신앙을 해야 하는것이다. 개벽은 그런것이다. 내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무슨 개벽을 말하는가! 지금이 개벽이나 도통 대두목놀음을 논할 시기인가? 인간이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 고작, 개벽 도통 대두목에 관한 초미의 관심을 두는것밖에 없을까! 상제님진리의 이데올로기가 그것밖에 없는가!
이순신장군이 풍전등화의 운명 앞에서 오늘날의 상제님신앙인들처럼 환상과 몽상에 미쳐 아무리 왜군이 처들어와도 그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무조건 승리한다고 혹세무민으로 연전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는가?
이순신장군은 왜군의 침입을 대비해 모든 민관군을 규합하고 모든 가용자원을 활용하는 평상시 경제와 경영의 대비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후에 전쟁에서 승리했다.
서나동은 이순신장군의 12척의 배는 커녕, 고깃배 한척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전쟁의 승리를 각오하듯 개벽을 이야기하는가!
모두가 개벽에만 정점을 두고 있는 오합지졸의 신앙관으로 개벽에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개벽에 도통에 대두목에 미쳐있는 광란의 시대이다. 신앙인의 신경세포가 온통 개벽, 누가 대두목인가에만 쏠려있으니 너도 나도 진인이라고 급한대로 입던 난닝구 찢어 깃발을 들고 혹세무민의 분탕질을 쳐도 무엇이 먼저 해야 할 일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모두가 춘치자명이다. 숨죽여 몸을 낮추어야 함에 오히려 한껏 목젖을 쳐들어 하늘을 보고 울어제낌에 죽음을 자초하는 춘치자명이다.
도시교민화민(都是敎民化民)의 선천종교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새하늘 새땅을 이야기하고 내세의 영생을 강조하는 등, 이천년동안 맹신과 광신의 광풍이 비바람치듯 인류역사를 강타했고, 지금도 그 맹신의 독향기는 은밀히 인간의 역사속에 스며들어 자취를 가려내기조차 힘든데, 증산도진리를 신앙하는 상제님의 일꾼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상제님진리에 대한 숙고도 없이 개벽몰이, 어설픈 대두목논리에 휘둘린다면 그것은 선천종교의 맹신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기인생의 배반자, 신앙의 노예만 될뿐이다.
인간의 역사가 철없는 인간의 염원처럼 온전히 순리적이고 행복한 인생으로만 펼쳐지지 않고, 온갖 처절한 비극과 웃지 못할 희극으로만 점철되어, 인연과 업의 고리가 솟아나는 샘물처럼 얽히고 섥히는 이유는 아직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성숙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각기 인간의 욕구와 자유행동을 먼저 존중하고 후에 그 결과를 심판하겠다는 천지의 이치 때문이다.
과거를 살다 간 수많은 성현들과 철인, 그리고 깨달은 사람들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아니 그보다 더 살갑게 다가오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에서 배울수 있는 진리에 눈 떠야 한다. 거친 피부 거친 숨결, 끝내는 힘겨운 호흡을 고르며 스러져 간 그들이 우리 자손들에게 전해주는 진리가 있다. 그 진리에 눈뜨려고 노력하는 것이, 緣由,연유(일이 되는 까닭, 근거와 원인)도 없는 개벽에 올인하는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고 가치있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지나고 보면 이 억세고 황량한 대지 위에서 지독하게 처절했거나 혹은 숭고한 숙명의 삶을 살았던 그들이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이 지금은 힘겹고 방탕하거나 혹은 나르시즘에 빠져 있을지라도, 무지막지 앞뒤 다 끊어먹고 오직 공포와 욕망에 근거한 연원도 없고 연유도 없는 개벽에만 올인하지 않는다면, 그런 지혜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우리들 인생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인생이 되고도 남는 것이며, 먼 훗날 우리의 숨결을 이어받아 역사를 걸어갈 미래 지구인들에게 그 발자취는 숭고하고 장엄했던 역사로 기억될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이다. 아주 오래 전 이 지구 위를 걸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렇게 전해져 왔고, 그리고 현재 우리들의 삶을 통해 경험이라는 역사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마지막 인고의 열매를 가다듬고 있는것이다.
생명은 연원이 바로 서야 유지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緣由,연유(일이 되는 까닭, 근거와 원인)가 있어야만 그 일이 발전하고 발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서나동의 개벽올인은 아무런 근거와 원인도 없는 까닭없는 개벽만 찾고 있는 형국이다. 오호라! 아무리 발버둥쳐야 자가당착, 몽상속의 개벽을 부르짖고 있는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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