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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23 20:44
소릿길을 받쳐준 '고수' 한평생, 김득수 명인
 글쓴이 : 흰두루미
 


“이 쌔려 죽일 놈아, 북 좀 잘 쳐라.”
“그렇지!”
“눈 구녁을 쑥 뺄 놈이 대답은 잘 허는구나.”
“암먼.”
“정신 똑바로 차려, 이 발꼬락을 지질 놈아.”
“좋다!”

누가 들으면 당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멱살을 잡고 덤벼들 욕설에 고수가 “그렇지!”, “좋다!”, “얼씨구!", "암먼!” 하면서 넉살좋게 받아내는 일이 소리판에서는 곧잘 벌어집니다.

욕 잘 하고 음담패설 잘 하고 재담 잘 하는 소리꾼한테는 고수가 곧잘 재담의 희생물이 되는데, 어떤 고수는 소리꾼이 자기에게 욕을 하거나 재담으로 놀리는 것을 싫어하여 대꾸를 안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득수 명인은 소리꾼과 재담을 나누는 것을 즐겨했던 고수입니다. 특히 그의 오랜 벗으로 평생을 소리판에서 함께 지내온 박동진 명창과 소리판을 벌일 때에는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집니다.

“아이구, 저 놈이 발뒤꿈치에 감기가 걸려서 북을 잘 칠랑가 모르겠네.”
“소리만 잘혀 봐, 북이 저절로 쳐지지”
“오냐, 내 아들놈아”
“그렇지!”

이런 재담 덕분에 소리판은 생기가 넘치고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이것은 그가 재담을 꾸미고 받아넘기는 솜씨가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수는 소리꾼을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예술관에 철저한 탓이기도 합니다. 

“북은 장단을 정확하게 짚어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소리를 받쳐주어야 하는 법이여. 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야하는 것 처럼 북이 장단과 추임새로 소릿길을 닦아 주어야 혀.
소리가 나가다가 구렁에 빠질라고 허면 얼씨구 하고 추어주어서 빨리 지나가게 허고, 슬플 때는 북가락도 줄이고 추임새로 슬프게 분위기를 맞춰서 넣어 주고, 소리가 웅장할 때에는 북소리도 크고 추임새도 크게 하게 하고, 바쁘게 주워 섬길 때는 또 그런 분위기를 내주어야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중들이 즐거워하도록 분위기를 잡아 주는 것이 중요혀. 그래서 나는 기회만 있으면 소리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한테 소리를 잘하고 못 하고는 청중들한테 달렸다고 허지. 소리꾼이 소리 잘 하도록 실컷 추어주고 받쳐줘라. 그래서 일고수 이명창이 아니라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란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여.”

위에 소개한 말의 앞부분은 「서편제」에서 유봉이 아들에게 북을 가르치면서 호통을 치는 대사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철저하게 소리꾼을 받쳐주는 고수의 역할을 주장하게 된 데에는 본래 북보다 소리를 먼저 배운 그의 경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서 김행원의 7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1917년 7월 17일에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취미로 말도 기르고 진돗개를 길러 사냥을 즐기던 그의 부친은 정초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북, 장고, 징, 꽹과리로 풍물을 칠 때에나, 모를 심으면서 상사 소리를 할 때에는 언제나 으뜸가는 북잽이로 나설 만큼 북춤 추는 솜씨가 뛰어났고 판소리 북도 곧잘 치던 멋쟁이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집 뒤에는 조선시대 음악인들의 모임 장소라 할 수 있는 '신청(神廳)'이 있어서 노래 소리와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집안과 마을의 음악적인 분위기에 흠씬 젖어서 자란 그는 진도보통학교에 다니던 일곱 살 무렵부터 채두인이라는 진도 소리꾼에게 남도민요와 육자배기와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시골의 명창에게 깊은 판소리를 배우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열세 살 무렵에 집을 떠나 전남 목포에 있는 권번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소리 선생으로 있던 오수암이란 젊은 명창에게 귀동냥으로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광군 법성포에 있는 명월관의 초빙을 받아 그곳의 여자들에게 소리를 가르쳐 주는 강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니까 귀엽고 예쁘고 목이 좋아서 소리도 듣기 좋으닝게 여자들한티 인기가 대단혔지. 그 덕에 한참 동안 요정 소리 선생으로 떠돌아 다닌 세월이 시작됐어.”

그곳에서 3년쯤 지난 뒤에 부산으로 가서 김광월이라는 여자 명창을 수양누이 삼아 그의 집에서 지내다가, 경북 경주군 감포읍의 달성관이라는 요정 주인에게 붙잡혀  그곳에서 2년간 소리선생 노릇을 했습니다.

그 뒤 울산 권번에 6개월쯤 있다가 경주 권번에서 1년쯤 지낼 적에 그곳에서 가야금을 가르치던 박상근의 권유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박상근 씨는 가야금의 인간 문화재이신 성금연의 스승인데 참말로 가야금 잘 타신 명인이었어. 그 박상근 선생님하고 김천에 있는 명월관에 들렀지. 박동진이가 그곳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길래 같이 가자고 해서 셋이 상경을 했어.”

스물을 갓 지난 두 젊은 소리꾼은 ‘조선 성악 연구소’의 대명창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며 명창에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선생님들이 창극 단체를 꾸며 일 년 동안 조선 팔도와 만주 지방을 순회 공연 다닐 때에는 함께 따라다니며 무대 경험과 소리의 기량을 한껏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풍성함은 잠시뿐이었고 곧이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젊은이들은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고, 순사의 검문 검색은 나날이 심해지는 불안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때 징병 안 갈라고 죽을 고생했어. 공연을 해도 작품을 일본말로 해야 돼. <흥보전>을 할 때에는 흥보자식들이 일본에 충성하러 즐겁게 군대에 간다는 내용을 넣어야 했어. 그러다가 창극단에서 나와 연극 단체를 따라 다니기도 했지.”

징병에 끌려 갈 위험이 닥치자 박동진 명창과 함께 경남 도운과 위문단에 끼여서 공연을 다니던 중에 부산에서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쉴 새 없이 팔도를 떠돌아 다니느라 결혼할 엄두조차 못 내다가 해방되기 한 해 전 스물여덟 살에 늦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색시와 신혼 생활의 재미도 채 나누지 않고 해방이 되자마자 목포로 가서 ‘진도 창극단’을 만들어 면면촌촌을 다니며 판소리와 민요와 토막창극을 들려 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김연수 명창이 창극단을 만들자 그곳에 가담했다가 그 단체가 해산된 후 김소희, 박후성 명창과 함께 ‘국극협단’을 창설하여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단체를 따라다니며 정처없이 떠도니 집안을 돌볼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 번번이 아내가 떠났어. 자식이 오 남매가 있는데 다 어미가 달라. 내가 스스로 지은 죄가 있으니 떠난 사람을 원망을 안 혀. 그때에는 아무튼 창극 단체 꾸미고 운영하는 데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응게.”

광주에서 단체를 재조직하려고 뛰어다니다가 실패하여 방황하고 있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김연수 명창과 손을 잡고 단체를 만들어 다시 떠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구서 임춘앵 여성 국극단하고 경합이 붙어 동아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판인데 사람이 수없이 몰려와서 대만원을 이뤘어. 이제 그동안 진 빚을 갚을 수가 있겠다고 좋아하는 판인데 하루 공연하고 나니 그 이튿날 새벽에 6.25가 터져버렸어. 단원들하고 거지 생활이 시작됐지.”

대구에서 김해극장으로 옮겨서 피난민 위안 공연을 할 때, 낙동강 작전으로 함안 지방의 17만 인구가 김해로 피난을 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통해 거처할 방마저 구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비어 있는 어느 장삿집에서 여배우들과 함께 물장사를 하며 어려운 피난 생활을 보낸 그는 전쟁이 끝나자 단원들을 데리고 부산을 거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단체 만들어 다닌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여. 작품을 만드는 일도 어렵고, 극장 잡고 사람 모으는 일도 어렵고, 허가 받고 지방 돌아다니는 일도 어려워. 그 중에서 지방 건달이나 한량들 텃세 막아내는 일이 가장 어려워. 어딜 가나 단체가 가면 괜히 시비 걸고 여배우들 집적거리는 건달들이 있는디 그런 사람들하고 싸움이 벌어지면 으레 내가 도맡아 나섰지.”

그는 한창 때에 양손에 칼을 들고 팬티바람으로 수십 명하고 싸운 전력으로 ‘진도 쌍칼’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건달 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때는 사람 좋고 너그럽다가도 국악인을 천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만 만나면 무섭게 돌변해서 '박치기로 받아 버리고 사정없이 쥐어패는' 통에 국악계에서는 의협심과 인정으로 뭉친 사나이라는 칭송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의협심은 70년대에 국악협회가 뇌물과 공금 횡령과 기생 수출로 벌집 쑤셔 놓은 꼴이 되었을 때 여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자들의 위세에 눌려 바른 말을 못 하던 국악인들의 대변자가 되어 이사장과 간부들을 몰아내고 협회를 혁신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소리꾼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기획이나 고수 노릇을 많이 하고 벌어들인 신망의 덕도 또한 컸습니다.

“난 본래 소리꾼으로 출발했는디 소리꾼으로 대성 못 허고 고수로 돌았지. 그것은 소리공부할 때에 한성준, 정원섭, 김재선 같은 북의 대가들에게 북을 함께 배운 받침이 있어서 단체에서 소리꾼보다 고수 노릇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은 북으로 인간 문화재가 되어 버렸지.”

한성준은 일제시대에 승무와 북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고, 정원섭 역시 판소리와 북에 통달했던 사람이고, 김재선 역시 북의 대가로 일세를 날린 사람입니다. 이들과 함께 공연을 다니며 배운 실력으로 어느덧 그는 북 치는 데에 아무도 따르지 못할 솜씨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소리하는 데에 잘 하고 못 하고 고비가 있듯이 북치는 데에도 잘 치고 못 치는 고비가 있어. 그저 또박또박 장단만 짚어서는 맛이 안 나. 고수는 반주자와 지휘자를 겸해서 소리가 험한 길로 가면 좋은 길로 가게 인도하고, 빠르면 느리게, 느리면 빠르게 음양을 맞추어 줄 줄 아는 데에서 제 솜씨가 나오는 거여.
소리도 마찬가지여. 선생에게 배운 대로 또박또박 박자 음정만 맞추는 건 진열장 소리여. 흉내 소리지. 거기서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없어. 옛날 선생들은 안 그랬어. 자유자재여. 흥이 안 나면 별 거 아니다가도 한번 흥이 나면 손님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어쩔 줄을 모르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떨려서 소리듣고 나면 온몽이 아플 정도여.
똑같은 음식도 간을 맞추는 데 따라 다르듯이 똑같은 선생한테 배운 소리도 제가 간을 넣어야 맛이 나는 거여. 선생을 뛰어 넘고 푹 솟아야 진짜 명창이여. 옛말에도 서당서 공부 잘 헌 놈은 붓장사 허고 공부 못 헌 놈은 영의정 헌다고 했어. 글만 많이 알아서 융통성없는 놈보다 흡글을 됫글로 말글로 섬글로 노적글로 풀어먹을 줄 아는 놈이 성공헌다는 말이지. 말허자면 창의성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여. 그런디 요새는 문화재 보호니 뭐니 해서 그런 창의성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었어.”

획일적인 문화재 전수 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매서우면서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배어 있어 듣는 사람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 장단 하나도 바꾸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예술적 창의력과 개성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을 창작하는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는 우리 국악계 전체가 안고 있는 숙제인 것입니다.

국립국악원 자문위원, 한국 국악협회 이사로서 국악계의 든든한 대들보로 활동하던 그는 제자들과 자식들과 그를 좋아하여 끊임없이 찾아오는 후배들에 둘러싸여 외롭지 않은 말년을 지내다가 1990년 5월 21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출처: https://dreamnet21.tistory.com/344?category=165532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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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9-04-24 10:34
 
누가 들으면 당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멱살을 잡고 덤벼들 욕설에 고수가 “그렇지!”,
“좋다!”, “얼씨구!", "암먼!” 하면서 넉살좋게 받아내는 일이 소리판에서는 곧잘 벌어집니다.
겨울 19-04-24 10:35
 
북은 장단을 정확하게 짚어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소리를 받쳐주어야 하는 법이여.
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야하는 것 처럼 북이 장단과 추임새로 소릿길을 닦아 주어야 혀.
겨울 19-04-24 10:38
 
스물을 갓 지난 두 젊은 소리꾼은 ‘조선 성악 연구소’의 대명창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며 명창에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산백초 19-04-24 13:20
 
김득수 명인은 소리꾼과 재담을 나누는 것을 즐겨했던 고수입니다.
산백초 19-04-24 13:22
 
이러한 집안과 마을의 음악적인 분위기에 흠씬 젖어서 자란 그는 진도보통학교에 다니던 일곱 살
무렵부터 채두인이라는 진도 소리꾼에게 남도민요와 육자배기와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산백초 19-04-24 13:24
 
획일적인 문화재 전수 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매서우면서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배어 있어 듣는 사람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별빛은하수 19-04-24 15:53
 
누가 들으면 당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멱살을 잡고 덤벼들 욕설에 고수가 “그렇지!”, “좋다!”, “얼씨구!", "암먼!” 하면서 넉살좋게 받아내는 일이 소리판에서는 곧잘 벌어집니다.

욕 잘 하고 음담패설 잘 하고 재담 잘 하는 소리꾼한테는 고수가 곧잘 재담의 희생물이 되는데, 어떤 고수는 소리꾼이 자기에게 욕을 하거나 재담으로 놀리는 것을 싫어하여 대꾸를 안 하기도 합니다.
별빛은하수 19-04-24 15:54
 
재담 덕분에 소리판은 생기가 넘치고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이것은 그가 재담을 꾸미고 받아넘기는 솜씨가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수는 소리꾼을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예술관에 철저한 탓이기도 합니다.
별빛은하수 19-04-24 15:55
 
“그때 징병 안 갈라고 죽을 고생했어. 공연을 해도 작품을 일본말로 해야 돼. <흥보전>을 할 때에는 흥보자식들이 일본에 충성하러 즐겁게 군대에 간다는 내용을 넣어야 했어. 그러다가 창극단에서 나와 연극 단체를 따라 다니기도 했지.”
별빛은하수 19-04-24 15:55
 
“단체 만들어 다닌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여. 작품을 만드는 일도 어렵고, 극장 잡고 사람 모으는 일도 어렵고, 허가 받고 지방 돌아다니는 일도 어려워. 그 중에서 지방 건달이나 한량들 텃세 막아내는 일이 가장 어려워. 어딜 가나 단체가 가면 괜히 시비 걸고 여배우들 집적거리는 건달들이 있는디 그런 사람들하고 싸움이 벌어지면 으레 내가 도맡아 나섰지.”
가을단풍 19-04-24 16:13
 
이렇게 단체를 따라다니며 정처없이 떠도니 집안을 돌볼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 번번이 아내가 떠났어. 자식이 오 남매가 있는데 다 어미가 달라. 내가 스스로 지은 죄가 있으니 떠난 사람을 원망을 안 혀. 그때에는 아무튼 창극 단체 꾸미고 운영하는 데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응게.”
가을단풍 19-04-24 16:14
 
그는 한창 때에 양손에 칼을 들고 팬티바람으로 수십 명하고 싸운 전력으로 ‘진도 쌍칼’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건달 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을단풍 19-04-24 16:15
 
“소리하는 데에 잘 하고 못 하고 고비가 있듯이 북치는 데에도 잘 치고 못 치는 고비가 있어. 그저 또박또박 장단만 짚어서는 맛이 안 나. 고수는 반주자와 지휘자를 겸해서 소리가 험한 길로 가면 좋은 길로 가게 인도하고, 빠르면 느리게, 느리면 빠르게 음양을 맞추어 줄 줄 아는 데에서 제 솜씨가 나오는 거여.
가을단풍 19-04-24 16:16
 
소리도 마찬가지여. 선생에게 배운 대로 또박또박 박자 음정만 맞추는 건 진열장 소리여. 흉내 소리지. 거기서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없어. 옛날 선생들은 안 그랬어. 자유자재여. 흥이 안 나면 별 거 아니다가도 한번 흥이 나면 손님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어쩔 줄을 모르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떨려서 소리듣고 나면 온몽이 아플 정도여.
가을단풍 19-04-24 16:17
 
똑같은 음식도 간을 맞추는 데 따라 다르듯이 똑같은 선생한테 배운 소리도 제가 간을 넣어야 맛이 나는 거여. 선생을 뛰어 넘고 푹 솟아야 진짜 명창이여.
가을단풍 19-04-24 16:17
 
글만 많이 알아서 융통성없는 놈보다 흡글을 됫글로 말글로 섬글로 노적글로 풀어먹을 줄 아는 놈이 성공헌다는 말이지. 말허자면 창의성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여. 그런디 요새는 문화재 보호니 뭐니 해서 그런 창의성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었어.”
가을단풍 19-04-24 16:18
 
단어 하나 장단 하나도 바꾸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예술적 창의력과 개성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을 창작하는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는 우리 국악계 전체가 안고 있는 숙제인 것입니다.
사오리 19-04-25 02:00
 
손정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패배에 좌절하
지 않고 다만 묵묵히 단련하고  계속 도
전해 나가는 것, 골Goal 은 아직 저 멀
리에 있다.
늘배움 19-04-25 09:06
 
북은 장단을 정확하게 짚어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소리를 받쳐주어야 하는 법이여.
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야하는 것 처럼 북이 장단과 추임새로 소릿길을 닦아 주어야 혀.
늘배움 19-04-25 09:07
 
주인이 비어 있는 어느 장삿집에서 여배우들과 함께 물장사를 하며 어려운 피난
생활을 보낸 그는 전쟁이 끝나자 단원들을 데리고 부산을 거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늘배움 19-04-25 09:08
 
단어 하나 장단 하나도 바꾸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예술적 창의력과 개성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을 창작하는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는 우리 국악계 전체가 안고 있는 숙제인 것입니다.
현포 19-05-01 23:34
 
“아이구, 저 놈이 발뒤꿈치에 감기가 걸려서 북을 잘 칠랑가 모르겠네.”
 “소리만 잘혀 봐, 북이 저절로 쳐지지”
현포 19-05-01 23:35
 
평소 때는 사람 좋고 너그럽다가도 국악인을 천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만 만나면 무섭게 돌변해서 '박치기로 받아 버리고
사정없이 쥐어패는' 통에 국악계에서는 의협심과 인정으로 뭉친 사나이라는 칭송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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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87 가야금 12줄에 꽃핀 여성 파워, 박귀희 명창 (21) 흰두루미 04-08
9586 <천주집>“이게 나라냐?” 절망에 빠진 백성들. 남인 내분속 채제공 편들다 처남과 원수로 (28) 게리 04-07
9585 The School of Life의《끌림》중에서 * 착한 사람, 선량한 사람 (23) 사오리 04-04
9584 가려움증을 다스리고서 (20) 루나 04-03
9583 대문자 F로 시작하는 물리학자 - <엔리코 페르미 평전> 3 (26) 블루베리농장 04-02
9582 세계 최초의 연쇄반응 - <엔리코 페르미 평전> 2 (20) 블루베리농장 04-02
9581 원자 시대가 시작된 날 - <엔리코 페르미 평전> 1 (19) 블루베리농장 04-01
9580 안전 확인 - 1년 국방비 천조를 쓰는 천조국 (15) 고기먹는땡중 04-01
9579 21세기의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헌화가' (18) 흰두루미 03-30
9578 <천주집>‘제사’ 글제 나오자 백지 답안지 낸 다산.홍낙안의 서학모임 처벌 요구에도... 정조 다산 답안을 2등 올려 (21) 게리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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