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페르미가 중대한 시도를 감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듣고, 콤프턴은 검토 위원회에게 자신 없이 회의를 진행하라고 전했다. 스쿼시 코트 발코니에는 빈자리가 없었지만 콤프턴은 40세의 화공학자 크로포드 그린월트를 데리고 갔다. 그린월트는 듀폰사의 대표단을 이끌고 온 인물이었다.
실험은 오후 2시에 재개되었다. 당시 CP-1 실험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50명가량 되지만, 실제로 파일이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그 자리에는 약 40명 정도가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 실험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를 원했다. 페르미의 농담처럼 언덕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페르미는 오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제어봉을 파일에서 제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중성자 복사 계수가 이전과 정확히 같은 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그는 웨일에게 마지막 제어봉을 서서히 밖으로 빼내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절반 정도, 그런 다음에는 좀 더 천천히 뽑으라고 했다.
페르미의 옆에 있던 앤더슨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더, 좀 더. 계수기의 눈금은 점점 더 증가하는 중성자 강도를 표시하며 계속 바뀌었다. 그때 갑자기 페르미가 손을 올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 파일이 임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페르미가 파일을 계속 가동시키게 하자 사람들의 불안은 커져갔고, 중성자 계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페르미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1분이 지나고, 2분, 3분이 지났다. 4분이 조금 더 지난 후, 사람들의 긴장감이 이제 거의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페르미가 외쳤다. “집을 넣어!” 오후 3시 53분이었다. 제어봉이 즉시 떨어졌다.
중성자 강도가 급속도로 떨어짐과 동시에 방 안의 긴장감도 확 풀어졌다. 모두들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콤프턴은 그 중요한 순간의 페르미를 이렇게 묘사했다. “중요한 일에 몰두한 선장처럼 형형한 눈빛으로 팀원들을 완벽하게 통솔하고 있었다. 이 위대한 성취의 순간에도 그의 얼굴에는 크게 기뻐하는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험은 예상대로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의 페르미는 방금 전 일어난 일의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시급히 진행해야 할 실험의 다음 단계를 계획하고 있었다.”
더 큰 파일을 제작해야 했다. 그 파일들은 지금처럼 단 몇 분이 아닌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가동되어야 했고, 생성된 물질을 추출해야했다. 오늘의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은 원자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파일이 임계 상태를 끝내고 마무리된 후 콤프턴과 그린월트가 스쿼시 코트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그린월트는 서둘러 검토 위원회로 돌아가 소식을 전했다.
콤프턴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기억했다.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는 기적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은 원자 에너지가 우리의 실생활에 얼마나 거대한 의미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들로 온통 들끓고 있었다. 여기에 사람들의 집을 따뜻하게 데우고, 전등을 밝히고, 산업의 바퀴를 돌릴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이 있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목격한 다른 관객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연쇄반응이 시연된 후에도 열띤 환호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이 이벤트는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자발적 연쇄반응의 임계 상태에 도달하는데 성공했으니 마찬가지로 제3제국(독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무슨 짓을 했을까? 쉴 시간이 없었다. 폭탄 제작 작업은 전보다 더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 진행해야 했다. 페르미도, 스쿼시 코트에 모여 있던 다른 이들도 모두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워싱턴에 소식을 전하는 것은 콤프턴의 임무였다. 그는 스쿼시 코트를 나와 사무실에 들러 제임스 코넌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훗날 그는 당시의 대화를 회상했는데, 도청당할 경우에 대비해 애매한 표현으로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콤프턴이 회고한 내용이다.
“짐.” 내가 말했다. “이탈리아 항해사가 방금 신세계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알면 흥미로울 거야.” 그러고 나서 반쯤은 사과하듯 말했다. 파일이 완성되려면 몇 주 정도 더 걸릴 거리고 S-1 위원회에 말했었기 때문이다. “지구는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아서, 그 친구가 예상보다 일찍 신세계에 도착한 것이었네.” 코넌트는 흥분된 반응은 보였다. “그렇다면, 원주민들은 친절한가요?”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안전해. 다들 만족스러워하고 있지.”
그 12월의 오후 시카고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스쿼시 코트에 있던 사람들은 천천히 흩어졌다. 마침내, 끝까지 남은 스무 명 정도가 회색 실험 가운을 벗기 시작하자, 위그너는 스쿼시 코트 바닥에 두었던 가방 안에서 짚으로 덮은 키안티 피아스코 와인 병과 종이컵을 꺼냈다. 페르미가 마개를 따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와인을 조금씩 따라주었다. 누군가가 페르미에게 와인 병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와인 병을 차례로 돌리며 그 위에 일일이 사인을 해 나갔다.
그날 아침 파일에서 페르미를 처음 만난 진이 그날 밤 마지막으로 코트를 나섰다. 그는 모든 장비들을 이중으로 확인했고, 제어봉들도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침내 진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경비원 중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박사님, 저 안에서 뭔 일이 있는 겁니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다. 그날 오후 스쿼시 코트에 있던 사람들은 파일이 임계 상태에 도달했을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파일의 최대 출력 중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고 손전등 배터리를 밝히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었다. 그러나 만일 출력을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증가시켰다면, 스쿼시 코트에 있던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카고 전체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