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이후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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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앞에서 페르미가 겪어낸 과학자로서의 사명,
페르미 역설, 페르미 우주망원경, 페르미 연구소, 페르뮴 …. 엔리코 페르미의 흔적은 과학사 곳곳에 스며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폭탄을 만든 핵심 일원으로 잘 알려진 그는 실상 물리학자로서 독보적인 이력을 써 내려간 인물이다. 이론과 실험 모두를 능숙하게 해내는 만능형 물리학자이자 결코 틀리는 법이 없는 무오류의 존재 그리고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던 페르미, 이처럼 위대한 물리학자가 갈릴레오의 고향을 떠나 미국 땅에서 시대의 흐름을 바꾼 원자폭탄 제작에 개입하기까지 《엔리코 페르미 평전》은 그 파란만장한 여정을 소설처럼 그려낸다.
12월 1일 밤, 페르미는 한 점의 의심 없이 아주 푹 잘 잤다. 그는 다음 날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페르미는 근처에 사는 레오나 우즈에게 들러 함께 스쿼시 코트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영하의 공기를 맞으며 눈 덮인 길을 천천히 터덜터덜 걸어갔다. 바람 많은 도시 시카고의 명성에 걸맞게 미시간호에서 거친 바람이 쉴새 없이 불었다. 차가운 공기에 목소리까지 얼어붙었는지,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둘의 머릿속에는 그날 벌어질 일들에 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스쿼시 코트에서 월터 진을 만났다. 세 사람은 함께 장치들이 모두 제 위치에 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자 아직 잠이 덜 깬 허버트 앤더슨이 나타났다. 밤 근무를 마치고 몇 시간밖에 쉬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진이나 앤더슨이 밤낮으로 조심스럽게 관리를 해서 파일은 한 번도 사람 없이 방치된 적이 없었다. 앤더슨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세 사람은 우즈가 여동생과 함께 지내는 아파트로 간단히 아침을 먹으러 갔다. 우즈가 서둘러 만든 팬케이크를 먹고, 세 사람은 다시 마지막 준비를 위해 코트로 돌아왔다.
시카고대학교 스태그 필드 아래 스쿼시 코트에 세워진 최초의 원자로 스케치. 1942년 12월 2일. |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University of Chicago Library
스쿼시 코트의 한쪽 끝에는 관객들이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된 발코니가 있었다. 12월 2일에 열린 이벤트는 스쿼시 경기가 아니었다. 그날 아침 발코니에서 보이는 것은 민첩하게 움직이는 선수들이 아니라 목재로 지은 구조물 안에 굳건히 자리 잡은 거대한 검은색 달걀 모양 물체였다. 발코니에는 관중 대신 과학자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페르미가 앉아 있었다. 코트 위에서는 믿음직스러운 물리학자 한명이 달걀을 돌보고 있었다.
발코니에는 중성자 계수를 관측하기 위한 다양한 기록 장치들이 있었는데, 장치의 눈금들은 계수율을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었다. 이런 장치들은 파일이 임계 상태까지 갈 거라는 가정하에 설치된 것이었다. 그리고 임계 상태에 대비해 안전 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중성자를 흡수하는 약 4m 길이의 제어봉이 모두 제위치에 장착되어 파일 안팎으로 드나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진은 특별히 묵직한 제어봉이 파일 위에서 평형을 유지하도록 고안했다.
집Zip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어봉은 전자석으로 고정시켜두었고, 전자석은 중성자 활동을 측정하는 이온화 계수기와 연결되어 있다. 만일 중성자의 활동 수준이 미리 지정해놓은 안전 범위를 넘으면 전자석이 자동으로 풀리면서 집이 파일 안으로 내려가게 된다.
발코니에 밧줄로 묶어놓은 제어봉은 특별히 추가한 여분의 안전 장치였다. 그곳에는 콤프턴의 부책임자인 노먼 힐버리가 손에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만일 모든 방편이 실패하면 힐버리가 도끼로 밧줄을 찍게 되어 있었다. 확실히 CP-1에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전부 집약되어 있었다.
이 모든 안전 조치들마저 전부 실패하면, 마지막에는 황산카드뮴 세 양동이가 있었다. 이것은 안전 요원 팀이 들고 있었는데, 만일 파일이 통제를 벗어나면 파일 위로 끼얹기 위한 용도였다. 황산카드뮴은 중성자를 흡수해 실험을 중단시킬 것이었다. 이 역시 값비싼 검정달걀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단이었다.
오전 중에 팀 멤버들과 장비들을 확인하고 난 후, 페르미는 시범작동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각 사람들이 맡은 역할에 대하여 신중한 설명이 오갔다. 총 책임자 페르미는 발코니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페르미와 함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카고로 온 물리학자 조지 웨일이 지시를 실행하는 책임과 코트 아래에서 제어봉을 조작하는 일을 맡았다. 유일한 여성이자 나이가 가장 어린 우즈는 중성자 개수를 큰 소리로 외치는 역할을 맡았다. 관중의 역할은 간단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계속 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웨일이 지휘하는 제어봉 말고 다른 모든 제어봉이 밖으로 꺼내졌다. 안전 조치들이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페르미는 웨일에게 마지막 제어봉도 반 정도 꺼내라고 말했다. 우즈가 읽는 중성자개수가 빠르게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페르미가 예측한 대로 정확히 수평을 유지했다. 우즈의 목소리가 코트 안에서 강하게 울려 퍼졌다.
페르미와 함께 발코니에 있던 볼니 윌슨은 다시 한번 계수기를 확인했고 가장 높은 값을 기록하도록 설정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는 확신이 든 페르미는 웨일에게 마지막 제어봉도 한 번에 15cm씩 서서히 꺼내도록 지시했다. 페르미는 제어봉을 한 번 뽑을 때마다 중성자 수를 확인했고 자신의 계산과 맞는지 확인했다. 세 번째 15cm가 빠져나오는 순간 관중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 파일이 임계 상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30분, 갑자기 쾅 하는 커다란 소리가 실내를 흔들자 사람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집 제어봉이 파일 안으로 떨어지면서 반응이 중단되었다. 조사해보니 안전 범위로 설정한 방사능 계수를 지나치게 낮게 설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페르미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난 배가 고픈데. 다들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그는 팀원들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는 식사가 최고였다. 제어봉을 모두 제 위치에 두고 진과 앤더슨이 잠금장치를 잠갔다.
점심 식사 후 그들은 다시 스쿼시 코트에 모였다. 이번에는 오전에는 없었던 콤프턴도 참석했다. 그는 오전 내내 듀폰사 사람과 그로브스 장군이 지명한 외부 검토 위원회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듀폰사는 아직 실험실에서도 완성되지 못한 과정을 근거로 플루토늄 대량 생산을 위한 장비를 제작해야 한다는 것에 합리적인 의구심을 품고있었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위원회를 결성한 것이었다. 그로브스는 CP-1이 임계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이 계획을 추진했다. 결국 그는 페르미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