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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30 08:38
21세기의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헌화가'
 글쓴이 : 흰두루미
 


신라 성덕왕 시절에 '수로(水路)'라는 이름의 절세미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순정공의 부인이었는데,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러 가던 중 홀연히 용이 나타나 부인을 납치해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태수는 허둥지둥 발을 구르며 야단을 쳤으나 아무런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사람의 말에 여러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하니,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들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바닷가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뺏아간 죄
그 얼마나 클까?
네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사로잡아
구워 먹고 말테다.

노인이 일러준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쳤더니 용은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순정공이 부인에게 바닷속의 일들을 물어 보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곱 가지 보배로 지은 궁전이 있고, 그 음식은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요리와는 전혀 달랐어요."

부인의 옷에도 인간 세상에서 맡아볼 수 없었던 이상한 향내가 스며 있었습니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라서 깊은 산골이나 못을 지날 때마다 이처럼 여러 번 신들에게 납치되곤 했답니다.

'동해 용왕 납치 사건'이 있기 이틀 전,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을 때 일입니다. 

옆에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선 절벽이 있었는데 높이가 천길이나 되고, 위에는 철쭉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무등산_056.jpg


수로부인은 그 꽃을 갖고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 주겠어요?"

하인들은 그 절벽 위는 도저히 사람이 오르지 못할 곳이라며 난색을 지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암소를 탄 노인이 나타나더니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검붉은 바위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노인은 이 <꽃 바치는 노래 : 헌화가(獻花歌)>를 부른 뒤에 꽃을 꺾어 바쳤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삼국유사」를 읽다가 이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수로부인에게 반한 적이 있습니다. 

절벽과 미인과 꽃과 노인과 노래와 암소....이러한 단어들이 주는 연상 작용은 무척 예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한 송이 철쭉꽃을 들고 미소를 짓는 수로 부인은  제 마음 속에 우리 민족 최고의 미인이며 예술의 수호신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 년 전,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한 바다용왕과 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여인의 욕망은 음악을 탄생시켰고, 그 음악은 우리나라 고대 예술의 몇 안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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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화가의 <수로부인 영접도> 출처 : http://img_34_564_5?1259578940.jpg 

오늘날에도 꽃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여성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해 노래를 부르고 꽃을 꺾어 주는 남성들의 눈물겨운 모습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변한게  있다면 꽃을 원하는 여성과 꽃을 주는 남성이 입는 옷과 머리 모양과 치장한 모습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남성이 부르는 노래는 향가가 아니라 팝송이나 발라드나 힙합일 것이고, 그가 타고 오는 것은 암소가 아니라 택시나 자가용일 것입니다. 또 오늘날의 여성들이 꽃을 원하는 장소는 산속의 절벽이 아니라 경치좋은 유원지나 레스토랑일 것이며, 그 여성이 원하는 꽃은 철쭉꽃이나 야생화가 아니라 장미나 백합일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나 표현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또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합니다. 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장차 그이가 꾸려나갈 한 가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또 개개 가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장차 그 사회 또는 그 민족의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태도가 됩니다. 

그러니 한 여성이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떤 춤을 추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구를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먹는가 하는 이 자잘한 생활의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가 그 가정의 문화, 나아가서 그 사회의 문화에 대해 크나큰 변수로 작용한다고 생각할 때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오늘날 이 땅의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낡아빠진 옛날 것들이 아니라 멋지고 새로운 것들입니다. TV, 영화, 패션잡지, 쇼, 비디오, 아이폰, MP3 등등 수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이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져 나와 그들을 유혹합니다.

그들이 한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얼굴은 둥글넙적하고 눈은 가늘고 코는 납작하며 손과 발이 오동통한 몽골계의 어린이가 탄생하겠지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자라면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코를 높이겠지요. 그리고 바이엘이나 체르니를 옆에 끼고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이어폰을 귀에 꽃고 영어를 배우게 되겠지요. 그리고 <알프스의 소녀>나 <신데렐라> 이야기가 쓰인 동화책을 읽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백설공주>의 이야기가 담긴 에니메이션을 보며 자라겠지요.

조금 더 자라서는 팝송을 부르고,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으면서 친구들과 떠들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 가는 꿈을 꾸고, 팔등신의 절세미인이 되어 뭇 남성들의 구애를 받는 꿈을 꾸겠지요. 이러한 꿈들은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이 한 번 씩은 남모르게 꾸어 본 꿈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의 위력은 너무도 대단하여 지신이 어쩔 수 없이 둥글넙적하고 손과 발이 오동통한 몽골계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느 때는 평생토록 그 꿈을 깨지 못하고 사는 여성도 많은 듯합니다. 

저는 그 꿈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저의 아내와 딸도 그 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 꿈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몰라보는 비극만은 막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탓인지 몽골계 여인들이 어느 종족의 여인보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제 눈에는 제 아내와 딸과 제가 아는 수많은 여인들이 어느 할리우드의 여배우보다 아름답습니다. 그 가늘한 눈은 흑진주 같이 반짝이고, 입술은 꽃잎처럼 어여쁘고, 피부는 백옥처럼 깨끗합니다. 그들 모두 어렸을 때는 엉덩이에 푸르스름한 '몽골반점'이 신비스럽게 새겨져 있었겠지요. 
   
저는 그 아름다운 여인들이 절벽 위의 꽃을 원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꽃을 꺾어 주는 상상을 해 봅니다. 장미가 아니라 야생화를 원하고, 삐까번쩍 승용차가 아니라 암소를 원하고,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라 피리 소리를 원하는 수로부인들이 이 땅에 수없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서구의 문물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오는 21세기의 바닷가 절벽 위에 외롭게 핀 '전통의 야생화'를 원하는 수로부인이 나타난다면 이 늙은 저도 기쁜 마음으로 <헌화가>를 부르며 천길 절벽이라도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치고 싶습니다.  


출처: https://dreamnet21.tistory.com/category/신화이야기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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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일상 19-03-30 16:56
 
천 년 전,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한 바다용왕과 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여인의 욕망은 음악을 탄생시켰고, 그 음악은 우리나라 고대 예술의 몇 안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소소한일상 19-03-30 16:57
 
오늘날의 여성들이 꽃을 원하는 장소는 산속의 절벽이 아니라 경치좋은 유원지나 레스토랑일 것이며, 그 여성이 원하는 꽃은 철쭉꽃이나 야생화가 아니라 장미나 백합일 것입니다.
소소한일상 19-03-30 16:58
 
아름다움에 대한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나 표현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또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합니다.
소소한일상 19-03-30 16:59
 
꿈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몰라보는 비극만은 막고 싶은 것입니다.
소소한일상 19-03-30 17:00
 
서구의 문물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오는 21세기의 바닷가 절벽 위에 외롭게 핀 '전통의 야생화'를 원하는 수로부인이 나타난다면 이 늙은 저도 기쁜 마음으로 <헌화가>를 부르며 천길 절벽이라도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치고 싶습니다.
겨울 19-04-01 08:24
 
옛 사람의 말에 여러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하니,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들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겨울 19-04-01 08:25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라서 깊은 산골이나 못을 지날 때마다 이처럼 여러 번 신들에게 납치되곤 했답니다.
겨울 19-04-01 08:27
 
그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해 노래를 부르고 꽃을 꺾어 주는 남성들의 눈물겨운 모습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변한게 
있다면 꽃을 원하는 여성과 꽃을 주는 남성이 입는 옷과 머리 모양과 치장한 모습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산백초 19-04-01 11:06
 
네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사로잡아
구워 먹고 말테다.
산백초 19-04-01 11:07
 
노인은 이 <꽃 바치는 노래 : 헌화가(獻花歌)>를 부른 뒤에 꽃을 꺾어 바쳤습니다.
산백초 19-04-01 11:08
 
저는 그 꿈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저의 아내와 딸도 그 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 꿈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몰라보는 비극만은 막고 싶은 것입니다.
늘배움 19-04-01 14:16
 
"일곱 가지 보배로 지은 궁전이 있고, 그 음식은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요리와는 전혀 달랐어요."
늘배움 19-04-01 14:17
 
절벽과 미인과 꽃과 노인과 노래와 암소....이러한 단어들이 주는 연상 작용은 무척 예술적인 것이었습니다.
늘배움 19-04-01 14:18
 
저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탓인지 몽골계 여인들이 어느 종족의 여인보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오리 19-04-04 01:24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약하다고 세상속에서 그저 모든사람들이 그사람들을
당연히 위해주고 이해해줘야하는 세상이 아니다. 더이상 약함에 대한 오
해로 거짓으로 세상속에 이해받으려 하지 말아야함을 안락하고 강한자 뒤
에 숨어서 사는 삶에서 벗어나라. 세상은 착한 가면을 쓴 약한 인간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벗어나라
게리 19-04-07 12:22
 
오늘날의 남성이 부르는 노래는 향가가 아니라 팝송이나 발라드나 힙합일 것이고,
그가 타고 오는 것은 암소가 아니라 택시나 자가용일 것입니다;;;.
게리 19-04-07 12:23
 
아름다움에 대한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나 표현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또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합니다;;;.
게리 19-04-07 12:26
 
꿈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몰라보는 비극만은
막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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