誰家畵棟(수가화동)에 鶯啼而羅幕猶垂(앵제이라막유수)하며,
어느 단청기둥한 집에서는 꾀꼬리 노래하여도 비단장막 여전히 드리우고 있고
幾處華堂(기처화당)에 夢覺而珠簾未捲(몽각이주렴미권)고
어느 곳인가 덩그런 집에는 꿈에서 깨어도 주렴을 말아 올리지 않고
蒼茫千里(창망천리)에 朦朧八紘(몽롱팔굉)이라
천리 멀리 창망하게 동 터니 팔방에서 햇살 비추기 시작하느니라.
고운집에서는 “이날 밤 전 세계가 맑게 개어 온 천지가 쾌청한데(是夜寰縈 天地晴) 천리 멀리 아스라이 동이 트면서(蒼茫千里) 팔방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나니(曈曨八紘)”라고 하여, 이날 밤 전 세계가 맑게 개어 온 천지가 쾌청하다는 구절이 더 있는데, 옥루곡에서는 이 구절을 취하지 않았다. 이는 천지개벽을 연상하는 이 구절을 여기에 둘 수 없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芙蓉帳暖度春宵)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고(春宵苦短日高起)”라는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날이 밝아 오는데도 주렴을 걷지 않고 춘정에 듬뿍 취해 조회조차 게을렀던 당명황의 사정과 흡사한 이런 난법의 상황은 천리를 비추는 동이 트면서 팔방에서 비추는 햇살인 혁명의 단계를 거치면서 혁파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여 볼 수 있다.
療水泛紅霞之影(요수범홍하지영)하고, 疎鍾傳紫金之聲(소종전자금지성)이라.
홍수로 땅에 고인 물에는 붉은 하늘 그림자가 떠있고, 종소리 들리니 궁문을 여는 오경이니라.
홍수로 땅에 연못(호수)이 생겼는데 구름 그림자가 연못에 비추는데, 궁전의 문을 여는 오경의 때이다. 이 구절은 비온 뒤에 땅에 물이 고여 거기에 하늘구름이 보이는 것을 말함일 수도 있고, 대홍수로 인하여 상전벽해가 일어나서 큰 호수가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런 때가 장안의 도성문이 열리는 오경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옥루곡에서 오경이라는 시각의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 곧 후천의 새 아침으로 가기위한 어떤 중요한 단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置思婦於深閨(치사부어심규)에 沙窓漸白(사창점백)하고
깊숙한 규방에 사랑하는 아내 홀로 두었는데 사창은 점차 밝아오는구나.
沙窓 : 모래로 바른 창. 창호지에 풀과 모래를 섞어 바른 창
님을 그리워 하는 아낙이 홀로 지새우는 규방의 사창도 밝아온다는 것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다소 의역을 한다면 규방 깊숙이 님을 그리워하는 아낙(아내)을 홀로 남겨두었는데 사창이 점차 밝아온다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어떤 중요한 인사의 핵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깊숙한 규방에 홀로 있는 아내’라는 구절의 의미이다. 피란동 안씨재실 공사에서 ‘재실을 지키는 재직이의 아내’와도 같은 의미로 해석하여 볼 수도 있다.
臥幽人於古屋(와유인어고옥)에 暗牖纔明(암유재명)이라.
고옥에 속세를 등지고 누웠는데 어두운 창이 밝아오는구나.
已而曙色微分(이이서색미분)이 數行南去之雁(수행남거지안)이오
어렴풋이 좀 더 밝아져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무리 지었고
晨光欲發(신광욕발)에 一片西傾之月(일편서경지월)이라
아침이 밝아오니 한조각 서쪽으로 기운달 보이는구나.
깊숙한 규방의 아내와 대비하여 이 구절은 고옥에서 속세를 등지고 누운 또 다른 정황으로 이해된다.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는 속세를 등진 한 나그네의 정체의 무엇일까? 남행하는 기러기와 관련이 있는 특정한 주체로서의 의미로 보인다. 그래서 마냥 속세의 바깥에만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지도 모른다.
動商路獨行之子(동상로독행지자)는 旅館猶扃(여관유경)이요
상로에는 홀로 행상가는 발걸음이 들리는데 객사에는 문이 아직 닫혀 있고,
* ‘動商路獨行之子’에서 之子는 행상가는 사람을 말한다. 긴 밤 지새우다 홀로 행상가는 아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泣孤城百戰之師(읍고성백전지사)는 胡茄未歇(호가미헐)이라.
외로운 성을 걱정하는 백전의 군사는 호가소리 아직도 그치지 않는구나.
砧杵聲盡(침저성진)에 斷恐音於古壁(단공음어고벽)하고,
다듬돌 두드리는 소리도 사라지고, 옛 성벽에서 위협소리가 끊어지니,
林巒影流(임만영유)에 肅霜華於遺墟(숙상화어유허)라.
수풀 속 산 그림자 흘러내려 된 서리로 옛 터전에 꽃이 피느니라.
두보는 사천성 성도에서 기주(夔州:중경)로 와서 쓸쓸한 삶을 보내면서 추흥8수를 짓는다.
秋興1(추흥1) / 杜甫(두보)
玉露凋傷楓樹林 (옥로조상풍수림) 옥 같은 이슬 맞아 단풍나무 숲 시들고
巫山巫峽氣蕭森 (무산무협기소삼) 무산의 무협에는 가을 기운 쓸쓸하다
江間波浪兼天湧 (강간파랑겸천용) 강의 물결은 하늘로 솟구치고
塞上風雲接地陰 (새상풍운접지음) 변방의 바람과 구름은 땅을 덮어 음산하다
叢菊兩開他日淚 (총국양개타일루) 국화 떨기 두 차례 피어나니 지난날이 눈물겨워
孤舟一繫故園心 (고주일계고원심) 외로운 배는 고향 생각에 묶여있다
寒衣處處催刀尺 (한의처처최도척) 겨울옷 준비에 곳곳에서 가위질과 자질을 재촉하고
白帝城高急暮砧 (백제성고급모침) 백제성은 높고 저물녘 다듬이질 소리 바쁘기만 하구나
‘秋興2’에서 두보는 “기주의 외로운 성에는 저녁 해 기울고 언제나 북두성 보며 서울을 그린다......산의 누의 성곽에는 애달픈 피리소리 은은하다” 夔府孤城落日斜 (기부고성낙일사) 每依北斗望京華 (매의북두망경화) .....山樓粉堞隱悲笳 (산루분첩은비가)라고 하였다.
강남 중경에서의 기주의 외로운 성곽과 민가의 애잔한 정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내고 있다. 이러한 두시 추흥에서의 정경과 비교하여 볼 때, 옥루곡에서의 다듬돌 소리가 사라지고 성벽에서는 위협하는 소리가 사라지고 그리고 옛 터전에서는 된 서리꽃이 내리는 정경이다. 이것은 아직 변방에서는 전란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홀로 집을 지키면서 행상으로 살아가는 강남아낙의 일상에 대비하여 남편은 전쟁에 나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다듬질할 빨래감조차 없어 다듬돌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또는 다듬질할 아낙조차 없이 쓸쓸히 몰락해 가는 옛 성에 대한 묘사로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편과 아내가 전란으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사는 것과 대비하여 아내는 옛 터전에서 늘상 해오던 생업으로 분주하고, 남편은 속세를 등진 사람마냥 한적한 고옥에서 은일하고 있지만 애타는 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