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촉에 대한 소고]
6. 촉에 얽힌 지리적 연원
- 사마씨, 제나라, 순임금의 뇌택과 지리명 견(甄, 진, 켄, 킨)
사마씨는 원래 제나라 전(田)씨였고, 제나라는 지리적으로 촉과 관련이 있다.
사기 사마양저열전 [卷六十四. 司馬穰苴列傳]에 ‘사마양저의 무리는 전완의 후예이다. 제 경공(齊景公) 때에 진(晉)나라가 아견(阿甄)을 공략하고 연(燕)나라가 하상(河上)을 침범했는데, 제나라 군사들이 크게 패하자 경공은 매우 근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司馬穣苴者 田完之苗裔也. 斉景公時, 晉伐阿甄, 而燕侵河上, 斉師敗績. 景公患之)
사마(司馬)씨는 전(田)씨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제나라 주류였던 전(田)씨에 대한 사기 사마양저열전에서 아견(阿甄)이라는 지명의 기록은 참고할 만하다. 사기 색은에서 아와 견은 모두 제읍(斉邑)이라 했고, 또 아(阿)는 동아(東阿)이고 견성은 제음(済陰)에 속한다고 한다. (索隠按:阿、甄皆斉邑. 晉太康地記曰「阿即東阿也」. 地理志云甄城県屬済陰也.)
참고로 전(田)씨는 진(晉) 14대 려공(厲公)의 아들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가서 사용한 성씨로 알려져 있으며, 강태공의 후손(呂氏)이 이어오던 제나라를 이어간 성씨이다. 이것이 전국칠웅의 하나인 전씨의 제나라이다. 전씨에서 나온 성씨들이 왕(王)씨, 손(孫)씨, 설(薛)씨 외 문(文)씨나 육(陸)씨 등도 전씨계 성씨이고, 시조를 완(完)으로 진(陳)씨도 전씨와 같은 계로 보아 진씨와 전씨를 합쳐서 중화 1대성씨라고 한다. 당시의 진(晉) 나라의 국성은 규(嬀) 성(姓)이었는데, 주무왕(周武王)이 순임금의 34세손 호공(胡公) 만(滿)에게 규(嬀) 성(姓)을 하사하여 순,우,탕 임금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나라 이름을 진(陳)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들 규(嬀)성은 아무래도 규수(嬀水)와 관련될 수 밖에 없는데, 규수는 아무 다리야이다. 중앙아시아가 태생지라는 것이다. 규성(嬀姓) 진씨(陳氏), 규성(嬀姓) 전씨(田氏)라고 하는 이들 성씨의 개념이 혼동되어 있는 오늘날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은 변할 수 없고 씨는 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고대의 성씨에서 성이 같으면 같은 혈족이다.
이 규성(嬀姓) 계열의 대표성씨인 전씨와 진씨가 중화 1대성이라면 이는 전세계 1대성이란 말과 같다. 사마씨도 이에서 나온 성씨이고, 원 태생지가 중앙아시아 아무다리야 규수를 기원으로 하는 성씨에 근거를 둔다는 점과 순 우 탕의 제사를 받드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라 상나라 정통을 지켜왔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두산백과에서 견[甄]을 찾아보면 ‘본관이 황간(黃磵)·전주(全州) 2본인 성씨로 황간견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의 사불성( 沙弗城:尙州)의 호족 아자개(阿慈介)이고, 전주견씨의 시조는 아자개의 아들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이다.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의 후손으로 본성이 이씨(李氏)였으나 견훤이 15세 때 성을 견으로 바꾸었다. 견훤은 그후 900년(효공왕 4)에 완산주(完山州:全州)를 점령하고 후백제를 세웠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불성沙弗城, 견甄, 아자개阿慈介라는 중심 키워드의 관련성인데, 견은 켄 혹은 진으로도 음가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고 위 사기에서 보듯이 아견(阿甄)과 아자개, 견이란 서로 다른 소리가 아닌 같이 통용될 수 있는 소리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沙弗은 사비로도 통하고, 沙는 서역지방으로 가면 바트로, 박달, 배달, 웅(수컷, 수), 아무(아모), 쿰 등으로 지역마다 다른 음가로 대치되고 弗은 佛, 不, 阿의 음가로 대치된다. 사불, 사비는 곰아, 개마, 웅진 등으로도 대치될 수 있는 소리이다. 웅(雄)이 서역지방에서 ‘아무’라는 점에서 견씨 성도 결국 어디서 시작되었건 ‘아무’ 다리야 규수와 어떻게든 관련이 된다는 것이 특이하다 할 것이다.
그러면, 견(켄, 진, 甄)이란 글자와 음가가 촉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에 대한 논증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강희자전에서 견(甄)을 찾아서 이와 관련된 것을 풀어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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