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형체라 먈씀하시었는데 석가모니도 깨달은 개구에 중도를 깨달앗다고 하엿다고 한다. 상제님 중화경의 처음에도 중이란 만리를 구비하여 천변만화가 다 중에서 나온다고 하시고 천하의 대본이라 하시어 심법전수는 중도임을 확인하여 주시었다. 이어서 도의 체용은 나의 성정 인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3장은 성인의 마음은 광대허명하여 천하의 대본이라 하시며 마음의 궁극적 깨달음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고 마음은 마치 보감 같이 모든것을 비추어보는 거울 같은것이라는 말씀도 계시다.
이어서 이 마음은 신명의 집이라 하시면서 신명의 근본이라 하시엇고.
5장은 性이란 천명의 전체라고 하시면서 마음의 성에대한 말씀과 30~40편까지~ 귀신은 천리의 지극함으로 모든 변화는, 촌분호리 사홀지중에 출입하는 귀신의 조화임을 드러내시면서 신도를 자세히 가르쳐 주고 계시는것이 중화경 초반의 핵심내용이고 이는 천지공사 상제님 공사의 모든것이 신도라는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신다고 볼수있다.
그뒤로 는 신도는 주역의 법칙~ 음양오행의 법칙으로 변화한다는 대국적이고 곡진하고 자세한 가르침으로 이어지며 천지공사의 큰틀 그리고 선천 유불선 진리의 진액을 소상히 더 자세할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가르쳐주시고 계신다.
불가의 형체인 마음이 전공인 불가에서는 평상심이 도라는 화두같은 깨달음이 마조도일의 스승이엇던 남전으로부터인지 내려오고 있다. 평상심이 도~
평상심이란 무엇인가~ 흔히 평상심이란 평상때의 마음으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라는 것이 다 일상의 평상심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데 이는 평상심 의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당토않은 말로서, 고승이 전한 평상심은 중도를 깨닫는 것이란 말로서 심법전수의 최상심법인데 그것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는 것이라고는 볼수 없다.
중도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선도아니고 악도 아니고 양변의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아 전체를 다 포용하는 전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잇으며 마음에서는 절대 마음이 어떤 경우 선이던 악이던 구애되고 치우치지 않고, 즉 원기가 모손되지 아니하고 영원한 자율성 영원성 을 간직하여 불멸의 영원한 신이 되라는 최상심법의 가르침이 중도의 실상으로 다른말로 평상심이라 한것인데 항상심이라 이해하는게 더욱 이해가 좋다고 보여진다.
주역의 괘사의 가르침도 다 중도를 지향하고 중용도 노골적으로 중도를 가르치고 있는것이며 이 중도가 마음에서는 空이되고 無라는 형용사로 표현되며 중이 正이되고 음양오행으로는 토화작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수있다. 정역의 십오일언 십일일언도 다 중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즉, 평상심은 중도의 다른표현으로 중도는 원리적인 표현이고 마음에서는 평상심을 유지하여 영원의 세계를 유지하라는 구체적인 중도의 심법을 깨달은 고승선사의 가르침중 하나이다.
상제님 께서는 마음에 대하여 시공간도 없고 무량~무량~무량~한 마음, 한도 끝도 없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廣大虛明광대허명 이라고 마음의 형체, 실상에 대하여 정의하여 주시엇다. 더욱 간략하면 中을 잡아라 라고 할것이며 누구나 육체에 끄달리는 마음이 아닌 무한의 광대허명한 마음이 언제나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것이 불교의 깨달음으로 내려온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중이 희노애락을 발할때 중절에 맞아 和를 이루면 인간의 원기는 전혀 모손되지 아니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이루는 것이 바로 태을주 주송으로 토화작용이 끊어지지 않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게끔 하며 천지의 신도와 하나되어 궁극적으로는 천지와 하나 되는경계에 가는것이 불멸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가는 외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